작가에게 스타일이란 문체이며 자기 자신을 내미는 명함 같은 것이다. 이 명함은 이 직업을 택한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할 필수적인 것이며, 자신의 목표점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레이먼드 카버의 전기를 읽으면서 계속 들은 생각은 스토리보다 스타일에 관한 것이다
화살자체가 아니라 화살이 가르치는 방향
어떤 사건에 대한 관점과 태도 그리고 자기 정체성.
글에서 자신이 드러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우면서 흔치 않은 일인가. 작년 내 주변 지인은 구직 중이었고 자신이 얼마나 취직하기 위해 힘든지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이력서를 읽어 봤는데 이력서에서 어떤 목표점이나 본인의 개성을 소개하는지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인은 나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불러만 주면 가고 싶다고 답 아닌 답을 했다. (물론 지인은 후에 '좋은 곳'에 취직했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그의 말은 카버의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살아났다. 우리는 진짜 어디서나 팔리는 이것저것인가
가족의 생계문제 앞에서 개인성 이란건 단순한 사치인가.
평범한 이들의 고민이 결국 이력서 한 줄인 것처럼
나도 여행가방이 작다면 꼭 필요한 것만 챙긴다
카버에게는 그게 스타일이었고 단편에 대한
고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순위에
들지 못한 건 정말 유감이지만
결론적으로 작가의 가방에는 처지가 빈곤하든 아니든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평균적인, 하지만 자기 자신에 기반한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건 물만 마셔도 이빨을 쑤셨다는 정도의 도도함과는 거리가 멀다. 본인에게 어울리는 것이랄까) 쉽사리 따라가는 유행은 그 유행이 꺼지면 언젠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게 되어있다.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화려한 수식과 넘쳐나는 표현의 양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글을 잘 쓴다는 게 화려한 문장과 표현의 구구절절함 만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그래서 문장을 되도록 짧고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 이런 결벽증과 자신감이 지나쳐서 정말로 신문의 단신 기사 같은 정도의 글만 쓴 적도 있었다. 이것도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는 바보 같은 짓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시기에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정말로 잘 쓰는 작가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담백하게 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단편이라 해도 작품 수가 적은 건 아니다. 레이먼드 카버는 쓸 수 있는 한 가장 담백하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단편이라는여러 단위로 나뉘었을 뿐 그의 노력이 적은 건 아니었다.
그의 전기를 읽다 보면 이건 마치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에나 등장할법한 과한 패션이 유행이던 시절 후줄근한 체크무늬 셔츠와 노인들이나 입는 검은 바지를 입고 다녔던 10대 시절 레이먼드 카버의 ' 비현실적'인 사연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어울리기를 멈추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늘 그곳에 있으며 타인에 대한 시선을 멈추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카버처럼 스타일에 대한 자신의 고집이 남아있다면 유명작가와 아닌 작가의 차이는 대체 무엇인가. 책을 못 판 작가도 스타일이 있고 베스트셀러 작가도 스타일이 있다. 나는 이 둘의 차이가 없으며 사실 본질적으로는 같다. 카버식의 표현에 따르면 누군가는 내놓기만 하면 누구나 먹고 싶어 하는 스테이크인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먹히기 힘든, 아직 덜 가공된 상태로 존재한다. 카버는 자신을 스테이크가 아닌 로스트비프라고 했으며 자신의 고된 인생을 육즙으로 만든 그레이비소스에 비유했다.
본질적으론 차이가 없지만 과정은 다른 것. 테이블 위에 스테이크와 로스트비프는 누가 더 빨리 먹히냐의 차이다. 부드러운 스테이크는 입에 넣으면 부드럽게 사라지지만 질기고 먹기 힘든 스테이크는 접시에 그대로 있다. 부드럽기 위해선 아직도 거쳐야 할 과정이 더 존재한다.
그건 이 존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된다
이것이 좋은지 혹은 나쁜지에 대한 평가와 결론
무슨 스타일이 될 것인가는 결국 무엇이 될 것인가와 결합되어 있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신이 수용되고 싶어 하는 그곳은 결국 자신을 받아줄 어떤 사람, 어떤 조직, 어떤 공간인가?
팔리는 것, 취직하는 것, 누군가와 결혼하고, 조직의 일원이 되는 것. 그것 자체가 목적인가?
그러나 그 반대선상에 있는 것이 독서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화살의 반대방향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이다. 화살의 주인은
대체 누구인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게 목적인가? 녹지도 부서지지도 않은 채 남아있는 건 자기 자신의 일부인가? 답이 어느 쪽이든 당신은 결국 원하는 것에 사로 잡히는 순간 (자신을 놓아주게 되는 순간) 풀어주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껏 묶여있었던 자기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