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지 않다. 이런 날은 집에서 일을 해도 뭔가 신통찮다. 마음속 밑바닥에 있는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서 가끔은 그 무엇도 하기 힘들 때가 있다. 특히 외부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의
면접이나 취업 같은 일들의 성과는 너무 낮아서 집에 있는 동안의 시간조차 편하지 않게 만들곤 한다.
그럴 때는 밀린 청소를 한다. 집안 청소 같은 것은 사실 미루기도 쉽고 생각보다 힘이 들어서 튀는 구정물과 더불어 늘 공포를 준다. 결과적 보상은 적지만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드는 일이 바로 집안일이며 어차피 부분적으로 노력을 해도 집안 전체를 바꿀 수는 없다는 약간의 허무감과 곧 있으면 다시 원상태로 복구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세제와 솔을 손에 들고도 망설이게 되는 이유다. 사실 얼마간 이 상태로 있었던 덕분에 집안에 먼지는 쌓이고 화장실은 물때가 생기고 거울은 더러워지고 쓰레기는 쌓이긴 했다. 하지만 이 귀찮은 집안일을 지켜만 보는 것보다는 해방이 필요했다. 적어도 집에서 화장실에 앉아있을 때 분홍색 물 때를 바라보는 상태로 있는 것보다는 더 나았다. 적어도 집에 한 구석만큼은 청소된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쉬면 되니까. 마치 엄마가 청소한 방마다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퀘렌시아를 만드는 아이들처럼 나도 일부를 치우고 그곳에서 쉬어본다.
멍하니 아무것도 안 하고 핸드폰으로 검색만 하는 시간이 있다. 가끔은 그것이 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어떤 것도 자세히 보는 법이 없다. 뉴스는 제목만 보고 쇼핑은 이미지만 보고 넘어간다. 창은많이 열리는데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계속 가상의 공간을 방황하기만 한다. 지난 주말 남편과 옷을사러 가면서 말했었다. "두 시간 동안 인터넷으로 애들 옷을 뒤졌는데, 찾을 수가 없었어. 그러다 결국 결정을 했지 하지만 직접 옷을 사러 오는 게 오히려 그것보다 더 빨라"
검색하는 시간 동안 나는 정말로 쉬고 있었던 걸까. 나는 우리의 두뇌가 육체가 쉬고 있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걸 느낀다. 두뇌는 계속해서 묻고 걱정하고 예측하고. 단 한 번도 평온한 적이 없다.이런 정신적인 방황과 육체적 무기력이 결합되어 있는 날은 하루종일 나가지 않아도 피곤하다. 심지어뭔가를 해서 망한 날보다도 더 힘든 날도 있다. 결과 없이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정말로 사람의 건강을 좀먹고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정신적인 불안과 방황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빛이나는 것
작가가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김영하나 하루키처럼 스타성을 갖고 방송출연도 하고 음악도 잘하며 독자와의 만남도 수시로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근본적으로 작가는 내부적인 작업자이다. 그래서 자기 안의 수많은 불안과 마주한다. 혼자일 때가 많다. 작가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실질적인 생활고뿐 아니라 내부 안의 불안과 우울도 있다.( 안에는 항상 재판관 몇 명이 지켜보고 있다.) 작가가 책을 쓰기 전까지 작업물은 보이지 않으며 세상의 수많은 물건들을 만드는 기술과 기술자가 있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아주 간단한 단순노동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잘난 척이 아니며 특성에 관한 것이다. 그들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신 가만히 있는 것은 단지 게으르고 무기력해서만은 아니라고 하고 싶다. 관찰이란 사실 활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요소가 더 많으니.
나는 외부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작의 요소들을 다루는 것이 자신 내부에서 작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회사에서 일을 할 때 내 멘털은 복잡하다. 항상 그랬지만 서툰 솜씨로 살아가는 이 세상은 자존감을 많이도 갉아먹었다. 나는 현실에서 만난 적이 없는 나와 같은 류의 작가들을 책을 통해 만난다. 캐나다의 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에 따르면 작가가 된 이유 중 하나가 글쓰기 말고는 다른 일을 딱히 잘하는 게 없어서라고 했다.
겨울에 광명 고척돔에서 만난 어느 미술가의 메시지
최근 읽는 레이먼드 카버역시 임시로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적응한 일은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에서 교사직을 한다고 말만 하고 출근을 하지 않아서 시에 고발당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집안의 생계비를 벌으려고 장난감 조립 같은 일도 했지만 도넛만 훔쳐먹는다는 얼토당토 안 하는 이유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래도 카버는 그 상태로 머물러 살지만은 않았다. 알코올중독과 마약 건강 악화등의 여러 좌절의 요소에도 싸우면서 글을 써냈던 것이 그의 삶이었다. 나는 그의 작품과 인생에서 링 위에서 공이 울리기 전까지 쓰러지지 않으려는 비틀거리는 복서의 모습을 본다. 이미 절반은 무너지고
경기 시간은 끝나가지만 그는 계속해서 일어나려고 한다. 아마도 대부분은 포기할 테지만 끝까지 싸운 결과물이 그의 책이다. 그의 노력에는 아무런 가치판단도 내릴 수 없다. 작가가 위대한 건 좌절 너머에 비치는 어떤 투명성 때문이다.
초보작가들을 위한 지침서에는 어디에도 알코올이 작품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말은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싸울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 싸운 채로 그렇게 죽는 것. 삶의 진실과 마주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단언컨대 이것은 자기 위로가 아니다. 그래서 작가로 태어난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려고 한다. 삶의 강풍과 추위에 낭만적인 꽃들은 다 떨어졌지만. 어설프게 진실한 척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