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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Aug 30. 2023

'미루기'를 치우기로 했다

-<진짜 게으른 사람이 쓴 게으름 탈출법> 리뷰

나에게는 오랜 친구 같은 그러나 치유가 어려운 병이 꾸준히 존재했다. 그건 '미루기'라는 병이다.


(첫 문장은 그 유명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처럼 멋있게 시작하고 싶었다.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처럼. 웃지 마시라)

사실 이 병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생활이 불편한 건 있어도 망가질 정도가

안 될 정도로 조절은 한다. 그러나 딱히 전적으로 고쳐야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힘들다. 돈키호테가

마음먹고 창을 들고 뛰어가다가도 '아 조금만 쉬어갈까'라는 마음에 주저앉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정말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우리 집에는 곳곳에 미완성 작품의 흔적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읽다만 책, 먹다만 음식, 요리하다 망친 그러나 버리기 아까운 식재료들, 사다 놓고 완성을

못한 뜨개질 재료들, 운동기구들, 그리고 사놓고 딱히 마음에 들지 않은 옷들 그리고 아이들 물건(현재와 과거 둘 다 ), 쓰다만 일기공책 그런 것들. 심지어 스마트 폰에도 열린 창이 너무 많아서 99번을 채운 적이 있고 이메일은 쌓아놓고 있다가 1000이 넘어서 통째로 삭제한다. 카톡에서도 연락하는 친한 친구는 3명 정도. 나머지는 미안하지만 지난 1년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 밖에 가입만 하고 안 하는 서비스들 눈팅만 하는 카페와 광고. 이런 것까지 합치면 더 복잡하다


 

최근에 중고시장에 서랍장을 내놓고 팔기까지도 상당한 결심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런 나에게도 신조가 있다면 첫째,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것'

아이들이 아무리 졸라도 나는 이 신조를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유기 동물이 불쌍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해야 할 필수적인 구석구석 치우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안다. 반려동물은 어쨌든 사람을 집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외출의 번거로움과 심리적 무게까지 지워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거북이나 햄스터 금붕어 종류도 한 번도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작  시도해 본 것은 달팽이 정도. 나름 정성으로 돌보았다만 돈을 주고 옮겨준 케이지에서 적응 못한 채로 죽는 걸 본 이후로 나의 반려동물 키우기는 끝이 났다. 나의 시간과 그들의 시간은 너무 다르다는 게 변명이었다. (그래도 애를 둘이나 키운 것은 정말 노력 끝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외부에서 가져온 물건을 많이 들이지 않는 것. 공짜라고 막 받아오지 말 것. 몇 번인가 결심은 흩트려졌지만 적어도 지키려고 노력하는 철칙 중에 하나가 되었다. 불쌍하다고 공짜라고 아깝다고 받아오는 그 무엇이 결국 집에 머물러 있다가 버려진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 거기다 저렴하다고 해서 들여놓은 물건의 수명 은은 왜 그리 짧은지! 아마도 이 모든 걸로 글을 써도 아마 하루 종일은 풀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원래부터 말이 많은 편이고 논리적인 걸 따지는 사람이기에 이 생활패턴과 남아도는 물건 말고도 할 말이 엄청 많은 사람이다. 다만 들어줄 사람이 없고 받아 적는 게 귀찮을 뿐. 내가 제일 못하는 것 하나가 북 엔드를 만들듯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었던 가. 그걸 빼면 사실 나름 부지런했고 나름 바쁘기도 하고 하루가 끝나면 진 빠질 만큼 피곤하기도 해서 쓰러져 자기도 바빴다.

 책의 저자인 프로 게으르며 지이 씨와의 차이는 결정적으로 내가 일을 안 하면 밥을 굶는 사람이 둘 아니 셋 넷이라는 것.  아이들 두 명은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하루종일 굶을 수밖에 없는 수준이고 그 아이들에게 뭔가를 요구할 처지도 안되니, 나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본성을 거스르면서 까지도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 그러나 그렇다고 가족과 생계를 뺀 그 나머지 부분에서는 프로 게으르며 지이 씨의 인생과 크게 다르지 못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내 생활은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아이 둘을 키우며 내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는 하나 그래도 다른 사람의 노력에는 미치지 못할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팬클럽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해 본다거나 종교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러기엔 에너지와 믿음 그리고 자본 그리고 시간이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어떤 모임에서 내 열정이 다른 사람의 것을 넘어버렸을 때 그분들의 싫어하는 표정 역시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모임 찾기를 그만두었다)    

 

나는 저자인 지이 씨가 게으르머의 본질을 단편적인 수준이 아니라 솔직하면서도 적나라하게 잘 파악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그 세계에 있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출 수는 있어도 없어지지는 않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만 사는  '초절전 상태'로 사는 사람만이 아는 귀차니즘의 뿌리 같은 것이다.

회사에서 집에 들어오는 순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사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자기 비하를 당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심리상태가 깔려있다. 이렇게 힘들게 노력해도 욕을 먹고 힘들지 않게 노력하지 않아도 욕을 하는 주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면 더 이상 움직일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은 거야. 뭘 시끄럽게 떠들어. 조용히 있어.

부끄럽게 굴지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 있다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공부 좀 더 해라. 인터넷과 게시판에는 이런 말들로 넘쳐난다. 가족이 하는 말도 뭐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니 마치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배처럼 활동하고 싶은 마음은 점점 더 가라앉는다. 반면에 세상이 요구하는 수준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간다. 나 말고는 다들 잘 나가는 것 같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그 상태. 어느 매체를 봐도 말을 던지는 쪽과 가만히 있으라는 방어적인 태도가 지배적인 대한민국 분위기 속에서, 어느 한쪽에 서서 입장과 소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보다 그냥 숨죽여 사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어떻게 살아서 칭찬받고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지 제시해 줄 수 있는 기준이 예전처럼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지금 사회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정신적으로는 더 일관성 있게 살기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단계를 통과해 지이 씨처럼 새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스스로를

유치원 생  의지력임을 인정해야 한다. 아침 시간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집에 돌아오면 가방부터 털고, 출판사에 제안서 메일을 보내고, 싸구려 음식 대신 제대로 된 한 끼를 챙겨 먹고 제시간에 잠드는 루틴. 지이 씨의 말처럼 유치원생의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그분이나 나나 알기에 아주 기초적으로 시작해 보자는 거. 그래서 우리 달라진 모습으로 만나자고. 하고 싶다. 나중에라는 말 대신 꼭 반드시. 그래.


그렇게 자기 비하를 많이 해봤던 제가 단호하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게으름에서 정말 탈출하고 싶다면, 뿌리 깊이 박힌 자기 비하라는 습관을 의식적으로 끊어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자기 비하를 하면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존감이 떨어지기 때문도 아니고, 소중한 나를 아껴줘야 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물론 그것들 또한 중요한 요소이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중략)
자기 비하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자기 비하가 발전에 전혀 도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자기 비하를 했을 때 내 기분이 나빠도, 그를 바탕으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됐다면 이렇게까지 뜯어말리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자기 비하는 발전에 기여하지 못합니다. 타인이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정확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효율적인 개선 책을 눈에 들이밀어도 우리는 변화할까 말까입니다. 그러니 스스로가 흐리멍덩하게 자신을 지켜보고, 할 일을 못했다는 이유로 막연한 부정적 감정을 품으며 자기 비하를 하는 것은 발전에 어떤 식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겠죠.
물론 부정적인 감정이 동력이 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우리는 아닙니다. 만약 그간의 수많은 자기 비하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면 이 책을 읽고 계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비하는 도움이 안 되는 수준을 넘어서 긍정적인 변화에 해악을 끼치기까지 합니다. 자기 비하는 '나는 원래 성실해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단단히 굳히는 주범 중 하나입니다. '나는 원래 안돼'라는 마음의 소리가 쌓여갈수록 새롭게 행동할 동력이나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자기 비하를 하면 잘못 보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가?
자기 비하를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되는가?
나는 자기 비하를 하며 멈춰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마지막으로 이 책의 추천자인 아버지의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그 어떤 추천사보다도 감동적이니 말이다.

손가락이 긴 엄마와 게으르머의 유전자를 가진 아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 아버지는 이 모든 원작자로서의 책임(!)을 전혀 부정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매번 집에 올 때마다 현관에서 신발을 발로 차듯 날리는 딸을 보면서, 방에 물건을 쌓아놓는 딸을 보며 살았다

놀랍게도 아버지가 이야기하시는 것은 성현이 했다는 네 가지 교육법이다. 첫째, 심교(부모가 먼저 밝은 마음을 갖는 것), 다음이 행교 (부모부터 모범을 보이는 것), 다음이 언교 (말로 잘 타이르고 이끌어주는 것), 마지막이 엄교 (엄하게 가르치는 것)라고.

저자의 아버지에 따르면 이 가운데 교와 교는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저자가 발로 차버렸다는 고백을 들을 때 마음 한편이 찡해왔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가 할 수 있는 것은 교와 심교 밖에 없었노라고. 저자의 게으름의 뿌리가 사실은 엄마와 아빠였음을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그것에 벗어나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밝은 마음으로 흐뭇하게 봐주는 것뿐이라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심정이란.

(대부분의 부모님이 저 애는 나를 안 닮았는데 누굴 닮아서. 우리 집안에 너 같은 애는 없다. 하는 말을 던지는 것과 비교해 얼마나 감동적인가)

추천사를 미루다가 너무 늦게 써서 미안하다는 아빠의 그 말처럼. 저자의 마음속에 일어났던 그 일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나도 이 책을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권해주고 싶다. 게으른 자식을 둔 부모와 그 자신들에게.


*와 2021년 초판 6쇄까지!


책 정보

제목: <이 모든 것은 인생이 망할 것 같다는 위기감에서 시작됐다. 진짜 게으른 사람이 쓴 게으름 탈출법>

출판사 : 마인드빌딩

지은이: 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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