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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Jan 21. 2022

집에 진심인 사람입니다

건설현장에서 애쓰시는 모든 분을 존경합니다

만들기의 끝판왕


7살쯤 큰 아이랑 교보문고를 갔을 때

전시되어있던

미니어처 하우스를 사달라고 졸랐다.


완성본이 아니고 만들기 세트

나는 거절했다.

큰아이가 제법 만들기를 잘한다 해도

감당하기에 어려워 보였고

왠지 내가 만들 것이 뻔히 보이는데

나는 만들기에는 소질이 없다.


그러다가 9살 겨울 방학을 맞아

할 일 없이 노는 아이에게

미니어처 집 만들기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인터넷에서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더니 자기 눈에 제일 예뻐 보이는

핑크색 2층 복층 하우스를 찍더니

이거야 이거 하며 들고 왔다.


최대한 자세히 검색해보려고 이것저것

찾아보니 14살 이상 이란다.

이 부분이 좀 걸렸다.

복잡해 보이는데 할 수 있겠어?

라고 묻자 걱정 말란다.

그리고 쿠*배송이 빠르게 배송해주셨다.

심지어 주문 후 나는 며칠 동안 잊고 있었는데

택배가 왔다는 문자 알리미가

뜨자마자 딸은 맨발로 뛰어나가서 상자를

들고 왔다.

별 거겠냐는 생각에 아이들이

이미 뜯어놓은 상자를 찬찬히 살펴보던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정교함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미니어처 하우스의 세계는 아이들의

인형놀이집 수준이 아니라는 걸.

그때부터 나는 속으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생각했다. 영어로 쓰여있는 작은

글씨의 설명서에는 전기 작업까지

적혀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를 애가

읽을 리는 없고 결국 내가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니어처 집 제작이란

'작업자가 편하게 만드는

것과는 상관없다 는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티커로 만들었으면 편하게

붙일 수 있는 종이 하나도

일일이 핀셋으로 잡아서

풀을 발라야 하는

수고란..

유튜브에 나오듯 목공용 풀이 척척 붙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헤매는 사이 아이는 제법 식탁 하나를

만들어냈다 뭐 어른의 솜씨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9살 수준에서는 고도의 집중력과

손재주가 필요한 부분인데

제법 해내고 있었다

오~

그렇게 화요일부터 사흘 동안 큰아이와

공부상에 마주 앉아 집 만들기에 돌입했다.

아이가 나보다 손재주가 좋아

나는 주문하고 제작은 아이가 하고

협력팀이 되었다.

그런데 만들다 보니 문득 내가 왜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다.

딸은 의자 모양이 삐뚤어졌다며 불평한다.

네가 만든 테이블도 기울었거든?

그래도 우리는 만들기에 진심이니까

포기하지 않을 거야 이러면서

바락바락 작업을 이어간.

막상 작업을 마치고 보니 마감이나

풀이 엉망이다. 마치 막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집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왠지 웃겼다

완성된 집에 사는 우리가

집에 얼마나 많은 것이 들어있는지

잊고 사는 걸 다시 일깨워주는 느낌

부엌 거실 화장실 방..

살림은 왜 그렇게 많고 설비는 왜 그렇게

복잡한 지

부엌 싱크대의 수전 하나를 풀로 붙이다가

중얼거렸다 몰딩 하나 벽지 하나에도

오만 잡생각이 난다.


남편과 내가 처음 집을 구할 때  얻었던

LH 아파트부터

신도시 분양을 받으려고 뛰어다녔던 일

결혼 5년 차에 둘째 아이를 출산하기

일주일 전 지금 사는 곳에 정착했던 일

하자와 싸우면서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달랬던 일

그래도 6년 차에는 어느 정도 집과 우리가

친해졌는지 완벽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생활을 이어갈 만큼이 되었다


그런데 문득 우리가 만든

이 허술한 미니어처 집을

보고 있으니 아파트 하자에 대해서

약간 누그러진 느낌이 든다. 

'역시 만들기의 끝판왕은 집이었어'이러면서

그리고 (거품을 빼고라도) 집 가격이

비싼 것에는 이유가 있는 거라고

한 겨울에도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창문과 벽 보일러 그리고 따뜻한 물과

전기 그리고 부엌 설비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공이 들어갔을까 싶다.

정확하게는 가격을 부풀리는 건설회사 말고

작업자들의 노고 말이다


지난주 뉴스에 나왔던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사고 현장의 뉴스를 아침에

다시 보았다.

인터넷 뉴스의 썸네일로만으로는

피해상황에 대한 짐작조차도

할 수 없어 동영상 뉴스를 찾아보니

그 처참함에 할 말을 잊는다.

나 역시 집에 진심인 사람 입장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에 입은

상처에 더해 실물인 아파트가

짓는 과정에서 무너진 걸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어쩔 것이

입주의 꿈을 갖고 기대했을

그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조차도

할 수가 없다.


무너진 것은 아파트지만

복합적이기에 여러 사회의

각 요소가 얽혀있어 마음이 더 쓰리다

코로나로 인한 공사 지연

다가오는 입주날짜

줄어드는 노동인력

근로시간과 안전문제

금리

부동산 시장

날씨


사실 주변에 너무나 많은 재건축이

있어서 신도시가 있어서

고층아파트가 몇 개 올라가는지

얼마나 빨리 올라가는지

그것조차도 잊고 살았다.

그리고 다 그게 돈으로만

이야기되었다. 이걸 팔면 얼마 식의

집값에 대한 이야기만 했었다.

그러나 정작 집이 가진 진짜

가치는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시멘트와 철근에 갇힌

누군가가 만든 가치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오늘

모형 집 하나도 못 만드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내 집을 만든 이름 없는 '건설 노동자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바람이 좀 새면 어떠랴

부디 그분들이 안전하길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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