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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Jan 27. 2022

매혹의 지점

고인물이 되려면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새해에 '독서시간을 늘리겠다는 결심'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는지에 관한 전문가의 조언을 듣게 되었다.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의 한 명이니까,

사실 지금까지 이런 결심을 잘해본 적이 없긴

하지만, 이 전문가 분의 조언은 단순히 독서시간을 늘리는 것을 넘어 좋은 습관을 어떻게

형성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포인트는 의지만으로는 결심을 이어가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의지는 일단 도서관이든

체육관이든 결심한 곳으로 발길을 처음으로 내디디는 첫걸음에 분명히 힘이 된다.

하지만 그다음이 중요하다. 전문가는 일단 끌리는 대로 골라 앞 30페이지까지만 읽어보라고 한다.

작가의 모든 능력은 일단 그 앞부분에 달려있으니까, 만약 그 30페이지가 별 감흥이 없으면 덮고 다른 책을 또 고른다. 그렇게 해서 페이지가 좀 넘어간다 싶은 걸로 십여 권을 빌려서

집에 온다. 그렇게 해서 단 한 권이라도 좋으니 나에게 맞는 책을 찾아 정독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해보라고 조언했다. 단 한 권을 정독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독서력에 훌륭한 기초가

된다. 전문가는 단 한 번이라도 책에 홀려 끝까지 읽어보는 경험을 해보라고 조언했다.

이 조언은 나에게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 역시도 솔직히 의지만 가지고

5권짜리 레미제라블 장편을 읽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읽다 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1권을 읽고. 2권을 읽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 긴 소설을 다 읽을 수 있었다.(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남는 건 몇 장면뿐)

가평의 쁘티 프랑스를 갔을 때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코제트에게 주었던 큰 귀부인 인형이 생각이났다 코제트가 난생 처음으로 받았던 인형도 이런 종류 였을 것이다 뭐눈엔 뭐만보인다고

 반면 유명한 책이라는 이름을 듣고 도전했지만, 도저히 페이지가 넘어가지를 않아서 포기한 책도 꽤 있었다.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힘든 책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나에게는 도리스 레싱의

<19호실을 가다> <황금 노트북>이 그랬다. <다섯 번째 아이>를 하도 흡입력 있게 읽어서

기대했었는데, 페이지 넘기기가 힘들었다. 중국 작가인 위화의 몇 작품이 그랬고, 가장 난공불락이었던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책.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읽다가 포기하다가 읽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특히 한국 소설들은 나에게 맞는 책을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다.(영원한 숙제)

생각을 해보니, 지금까지 내가 끝까지 읽었던 책들은 모두 비슷한 지점을 갖고 있었다.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때, 몇 분 내에 작가의 세계로 초대되는 경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서는

그렇게 홀리는 경험의 누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그 세계의 고인물이 되어서

책과 책이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떤 흐름이 있으며, 그 흐름에는 원조를

찾아 강의 원류가 무엇인가까지 따지는 지점까지 가게 되었다.

또 다른 경우, 운동에도 비슷한 과정이 있다고 한다. 운동선수라고 모든 운동 종목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운동 종목 중에서 우연히 자기와 맞는 운동을 찾은 선수는 특정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신체가 변하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일단 운동의 맛을 본 선수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성취의 기록을 쌓아가는 것이다.

반면에 자기에게 맞는 종목을 찾지 못하거나, 신체의 변화가 더디거나 즐거움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운동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잘못하면 상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의지만으로 모든 걸 소화하기에는 넘어야 할 과정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즐기지 않고서는

그 긴 시간을 견뎌나가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운동을 오래 한 사람 치고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고, 영어를 10년 넘게 공부한 사람은 영드나 미드를 좋아하는 사람을 넘어서질 못한다. 심지어 공자도 어느 순간엔 공부가 재미있었다고 하지 않은가. 평범한 사람으로는 이해하기 쉽지는 않지만.

또 하나는, 지속성의 관점이다. 은 양이나 긴 기간을 지속한 다는 것은, 역으로 짧은 성취의 순간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는 의미도 된다. 나의 경우는 한동안 퍼즐에 재미를 붙이면서 점점 피스의 수를 늘려가는 중이다.

맨 처음으로 끝까지 맞춘 퍼즐. 예전에 선이 흐린 명화퍼즐은 도저히 못하겠다 했는데 어느날 밤에 홀린듯이 피스가 맞춰지는 경험을 한 뒤로 명화 퍼즐 고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 취미는 성취의 목표에 홀려 한번에 끝내려 할수록 포기하기 쉬운 면이 있었다. 나는 그래서 몇 달을 두고 아주 적은 양이라도 꾸준히 하려고 애를 썼다. 최근에는 500피스를 5개월 만에 끝내기도 했다. 한동안은 아무리 안 풀릴 것 같던 작은 조각들도 그다음 날, 그다음 날 계속해서 몇 개씩 시도하면 의외로 풀리는 경우가 있었다. 1000피스를 맞추기 위한 관건은, 맨 처음에 틀을 잡을 것, 둘째는 한 번에 많은 양을 하지 말 것, 일정 시간이 되면

끝낼 것. 그리고 안 되는 것을 잡고 애쓰지 말 것. 셋째는 포기하지 말 것. 이런 정도의 원칙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언제나 남은 30개 정도의 퍼즐은 대부분 마지막 날 한두 시간 내에 맞춰진다.

죽어도 안 맞던 것들도 결국 자리가 있었다. 맨 처음에 힘들게 시작했던 것에 비하면 뒤로 갈수록

가속도가 붙어서 앞의 시간을 상쇄해주기도 했다.

퍼즐이나 책이 나에게 주는 기쁨은 사실

 '언제나 이 안에 답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답은 비록 인생의 답이지 못할 때가 많아, 결국 자기만족으로 끝나긴 하지만. 항상 성취의 경험을

맛보게 한다 . 이런 성취가 부디 브런치를 포함해 다른 습관에도 이어졌으면 좋겠다.  일단 30페이지까지 가보자

안되면 다른 걸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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