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분석은 없었다. 이것은 리뷰인가 강의인가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며칠 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을 보고 왔습니다.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첫 장면이 나오는 순간부터 제 심장의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작품이 끝나고도 가슴 속 여운은 불길처럼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애니가 아니라 제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덕왕의 숨겨왔던 또 하나의 덕을 꺼내어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제가 만화를 좋아하게 된 건 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노량진에서 눈물의 컵라면을 먹으며 공부하던 시절, 한O학원 앞 지하에는 만화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처음 가본 그 곳은 아침부터 계속된 수련에 지친 덕왕의 마음에 단비를 뿌려주었고 그 후 하루 2시간씩 만화책을 보곤 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은 중요하니까요.
TMI: 당시 노량진 학원가에는 "당구장 vs 만화방" 이라는 영원한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당구장은 시간당 2,000원, 만화방은 1시간에 1,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저의 투자 관점에서는 만화방의 ROI(투자수익률)가 훨씬 높았습니다. 당구장에서는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고 뻥카에 당할 수도 있으며 패배하면 상대의 게임비까지 내야 하는 리스크가 있던 반면에 만화방에서는 노력한만큼(?) 확실한 힐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만화방에서는 ‘권수’요금과 ‘시간제’ 요금이 있었는데 남들보다 훨씬 책을 빨리 보던 제게 시간제 요금은 남는 장사였습니다. 2시간 요금을 지불하고 라면 한 그릇 때리며 여유있게 봐도 보통15권 정도의 만화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만화를 보고 있는데 만화방 사장님이 인기척을 내시곤 저를 노려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자네... 한 만화 하는 것 같은데?"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달까. 그의 매서운 눈매에서 만화방 주인다운 푹 쩔은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네. 제가 좀 합니다."
호기롭게 던진 말에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같이 와서 수십 권을 보고 가던데... 나랑 내기 하나 하지..."
"내기? 무슨 내기요?"
만화책을 집어든 채 소파에 가로로 누워 담배를 뻐끔 피어대며 올려다보는 저의 눈빛 너머 사장님은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나랑 장편 만화를 누가 빨리 보는지 내기 하지. 내가 이기면 자넨 앞으로 권수 요금제로 바꿔."
"제가 이기면요...?"
"훗... 자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콜”
곧 양보할 수 없는 세기의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는 <보스의 두 얼굴>이라는 만화책이었고 다른 하나도 그와 비슷한 장르의 만화책이었는데 카지노 칩처럼 서로 수십 권을 앞에 쌓아 두고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습니다. 만화방의 수많은 덕후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그 중 한 사람이 심판이 되어 시작을 알리자 저와 사장님은 읽기 시작했습니다. 만화방 안은 고요한 채 오직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들렸고 하우스는 담배연기로 가득찼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3시간이 넘어서는 순간 제가 먼저 완독을 선언했습니다.
사장님은 만화책에 잠겼던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들어올렸고
"다 읽었나.... 내가 졌네...." 라며 쿨하게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에 오히려 되물었습니다.
"제가.... 다 읽지도 않았는데 거짓말한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장님은 그 물음에 너털웃음을 짓고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씀하셨습니다.
"후우... 그렇게 거짓말할 친구로는 보이지 않아."
그 말에 저의 교만함이 오히려 부끄러웠습니다. 무엇을 원하냐는 사당님의 질문에 저는 그저 일주일에 한 번만 공짜 라면을 먹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시험 전까지 계속 시간요금제를 지불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공짜 라면을 얻어먹으며 신나는 만화라이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만화의 덕인지, 운 좋게 과거시험을 통과한 후 그간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코자 위스키 한 병을 사 갖고 찾아뵈었을때 사장님은 놀라셨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같이 말린 오징어마냥 소파에 누워 줄담배를 피워대며 만화만 쳐보던 저를 보며 사장님은 당연히 시험에 실패했을거라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만화가 있었기에 오늘의 영광이 있었다며 그 깊은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이 후에도 가끔씩 찾아뵈다가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느라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했고 몇 년 후 다시 찾아갔을 때는 그 만화방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사장님의 말씀이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저는 지금도 만화와 애니를 사랑하는 덕중의 최고, 덕왕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만화를 보고 계시겠지요? 언젠가 다시 만나서 승부를 겨룰 수 있기를!
본격적으로 귀멸의 칼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귀멸의 칼날은 2020년 5월까지 작가 '고토케 코요하루'에 의해 일본의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되었던 작품입니다. 작가의 신상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으며 다만 여러 정황상으로 여자분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워낙 낯가림이 심해서 편집부 내에서도 담당 편집자 말고는 만나본 사람이 없을 정도고, 소년 점프를 출판하는 슈에이샤 사장조차도 만나지 못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귀멸의 칼날은 4년 3개월 동안의 연재기간 동안 인기 있던 작품이었지만 진정한 인기는 애니메이션화 된 후부터입니다. 1기부터 어마무시한 작화와 액션씬에 작가가 애니메이션 제작사 유포터블이 있는 방향으로 절을 했다는 루머가 있었을 정도로 귀멸의 칼날은 애니 전후로 나뉩니다.
귀멸의 칼날은 왕도물이지만, 기존의 소년만화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기존의 소년만화의 성공 공식에서는 선악이 분명했다면 귀멸의 칼날에서는 '악인'인 혈귀들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가족을 살리려다 길을 잘못 든 자, 가난과 차별에 무너진 자 등, 그들의 과거는 단순한 악이 아니라 비극으로 다가옵니다.
혈귀들의 비극적 배경 설정은 사실 매우 현대적인 세련된 스토리텔링 기법입니다. 이는 선악구조가 아닌 '상황의 피해자'라는 관점을 제시하는데, 마치 경제위기 때 대출을 못 갚는 사람들을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덕분에 독자와 시청자는 괴물과 싸우면서도 연민을 느끼며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고 이것이 귀멸의 칼날의 인기를 더 크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1979년 방영된 <기동전사 건담>도 기존의 선악구도가 확실했던 로봇물과는 달리 각자의 납득할만한 서사가 있는, 지구연방과 지온공국의 대결구도를 그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실제로 건담의 탑승자는 주인공 ‘아무로 레이’였지만 지온공국의 에이스 ‘샤아 아즈나블’의 인기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봐도 굉장히 흥미로운 점들이 많습니다. 특히 '선악구조의 해체'는 현대 투자 환경과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에는 '좋은 기업 vs 나쁜 기업'으로 단순하게 나누어 투자했다면, 이제는 훨씬 복잡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석유회사가 환경을 파괴한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투자처는 아닙니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친환경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친환경적 이미지를 가진 기업이 원재료를 생산하며 환경을 파괴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귀멸을 만든 스튜디오 유포터블(Ufortable)은 이미 <공의 경계>, <Fate/Zero> 등의 작품을 통해 오타쿠들 사이에선 품질로 소위 '작붕'(작화 붕괴:作画崩壊)이 없습니다. 작붕이란 애니메이션에서 그림의 품질이 불안정해지거나 원본과 다르게 망가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인물의 비율이 맞지 않거나, 눈이나 손발의 위치가 어긋나고 그림이나 색채의 퀄리티가 갑자기 떨어져 작화가 무너진 상태가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이런 현상은 보통 촉박한 제작 일정 때문에 원청 회사가 하청을 주면서 자주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유포터블은 원화·동화·3D·합성 등의 과정을 모두 내부에서 처리하는 체계 덕분에 팬들로부터 "작붕을 모르는 스튜디오"라는 찬사를 들었고 귀멸에서는 한 단계 더 올라섰습니다.
이미 될성싶은 떡잎이었던 유포터블이 떡상한 계기는 2020년 <무한열차>편이었습니다. 당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컨텐츠 수요는 폭발했는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해졌고 신규 영화에 대한 투자 또한 급감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다르지 않아 2019년 하루 평균 4~50만 명이던 영화의 관객 수는 2020년 3월 24일 기준 하루 총 2만 명대로 떨어졌는데, 이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 시작 이후 역대 하루 최저치였습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OTT혁명이었습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OTT 이용률은 2019년 41.0%에서 2020년 72.2%로 급증했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신규 제작이 급감하며 컨텐츠 부족은 계속되었습니다.
(독자들의 예상반응: 아 이때 넷플릭스 주식을 사놨어야 했는데!!)
이런 와중에서 2020년 유포터블은 엄청난 퀄러티를 자랑하는 무한열차편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사실 이 작품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코로나19로 업무가 원활하지 않았음에도 유포터블은 체계화된 시스템 안에서 믿을 수 없을만큼 훌륭한 퀄리티의 작품을 완성해냈던 것입니다. 거기에 희망을 잃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서사까지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그전까지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일부 매니아만이 즐기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무한열차는 8개월 동안 아무런 경쟁작 없이 극장에 상영되었고 극장에 상영된지 6개월만에 전세계 OTT에 소개되었습니다. 이는 즉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게 되었고 유포터블은 일약 글로벌 탑티어 제작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무한열차 이전에는 여러 스폰서들이 모인 ‘제작위원회(製作委員会)’ 형태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습니다. 리스크를 분산한만큼 각 투자 기업들의 위험은 제한되었으나 이로 인해 작품의 내용이 간섭받고 작화 퀄리티가 떨어지는 등 여러 병폐가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해외 진출하려면 스폰서의 이익을 위한 수많은 유통 단계를 거쳐야 했으며 막상 제작사의 이익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폰서들은 일본 내수시장에서만 팔아도 매니아층의 존재로 인해 그런대로 이익을 거둘 수 있었기에 해외 진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무한열차가 상업용 OTT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되면서 기존의 판이 뒤짚어지게 된 것입니다. 전세계에서 글로벌 팬덤이 형성되었고 이 후 유포터블을 대표하는 1티어 제작사들은 먼저 투자를 받고 안정적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계약과정에서 방영에 대한 수익은 OTT회사들이 더 많이 가져갔지만 유포터블은 글로벌 팬들에게 굿즈 등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한열차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5억 달러 수익으로 2020년 전세계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영국과 미국 외 국가 영화로는 1915년 집계 시작 이후 최초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총 218만 명을 동원해 국내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중 역대 5위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당시 코로나로 극장가가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나온 성과라 더욱 놀라웠습니다. 또한 일본 영화사상 최단시간 100억엔을 달성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총 7,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유포터블의 핵심 정체성은 "사내 일원화"입니다. 배경 3D팀을 포함한 디지털·합성 부문을 내부에 두고 섹션 간 경계를 낮춰, 컷·샷 단위에서 감독·원화·3D·합성이 서로의 의도에 맞춰 즉시 조율되는 구조를 구축했습니다. 이 구조는 Fate/Zero 시기부터 지향해 온 로드맵으로, 2016년 내부 3D(BG) 아트팀 창설 같은 조직적 정비를 통해 결속을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무한성편은 원래 3년에 1편 정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만큼 업계에서는 상당히 복잡한 작업으로 평가했지만, 유포터블은 1년 반만에 첫번째 작품을 놀라운 퀄러티로 완성했습니다.
유포터블은 샷 설계를 3D 프리비주얼로 먼저 잡고(카메라 이동·공간계획), 여기에 2D 캐릭터 작화와 이펙트를 정밀하게 맞물리며 최종 합성에서 색·광·심도를 통합 조정합니다. 이 순서는 컷 간 질감 편차나 작화 난이도 급등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합니다.
또한 제작전부터 정밀하게 설계된 가이드는 특히 촬영(합성) 단계에서 광원, 대기층, DOF·모션블러·색보정·글로우·입자 등을 처리하는 여러 팀들의 결과물을 일관된 표현으로 유지하여 일부 외주작업이나 팀 분할에 따른 작업물간의 차이에 의한 흔들림 없이 에피소드 간 '같은 작품 같은 공간'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합니다.
특히 유포터블은 2D와 3D의 경계가 눈에 띄지 않도록 컬러 매칭·엣지 처리·노이즈/그레인·미세 블러를 활용해 이질감을 낮추는 기술로 유명합니다.
유포터블은 무한성편의 방대한 CG를 렌더링하기 위해 자체 렌더 팜(render farm)을 대폭 확장했습니다.
TMI: 렌더 팜(render farm)이란 컴퓨터 그래픽(CG) 작업을 할 때 필요한 대규모의 렌더링 전용 컴퓨터 클러스터를 의미합니다.
렌더 팜 확장은 마치 배달의 민족에서 주문이 폭증하자 치킨집 사장이 튀김기를 10배로 늘리고, 알바생도 대거 충원하며, 배달 오토바이까지 추가로 구매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대의 컴퓨터로 수년이 걸릴 작업을 몇 시간 또는 며칠 만에 끝낼 수 있도록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기존에도 2D와 3D를 혼합하며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왔던 유포터블이지만, 무한성처럼 복잡하고 방대한 공간을 3D CG로 구현하려면 기존과는 다른 막대한 연산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유포터블 자체 분석 결과, 기존 자원만으로는 무한성편의 렌더링에만 3년 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측될 정도였으니까요.
이에 유포터블은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무한성이 총 3부작인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한 번 구축해놓으면 향후 모든 프로젝트에 활용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선택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유포터블은 고성능 장비들을 도입하고 환경을 개선했습니다.
보통 유포터블을 비롯한 최상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은 3D CG 및 렌더링 작업용으로 NVIDIA Quadro 또는 RTX 시리즈 등을 주로 사용하는데, 무한성편 제작을 위해 시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까지 고성능 컴퓨터와 그래픽 카드를 대량으로 사들여 렌더링에 필요한 연산 자원을 폭발적으로 늘렸습니다. 또한 장비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을 관리하기 위해 서버룸의 냉각 시스템을 개선하여 더 많은 장비를 오랫동안 효율적으로 가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회사의 3D 모델러들을 갈아넣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애니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저보다 덕력이 깊으신 분들께서 이미 마르고 닳도록 다루셨기 때문에 저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겠습니다.
귀멸의 칼날의 배경이 되는 다이쇼 시대(大正: たいしょう, 1912~1926년)는 일본에서 다이쇼 데모크라시'라 불리며 비교적 자유롭고 문화가 꽃피운 시대로 회자되곤 합니다. 다이쇼 시대 이전은 유명한 메이지 시대였으며 다이쇼 시대의 다음은 쇼와시대로, 2차세계대전의 전범 ‘히로히토 천황’의 재위시기였습니다.
다이쇼 시대는 일본에게 있어서는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였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의 기술과 문화가 유입되었고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자신감이 넘쳐흘렀습니다. 자유주의가 확산되고 정당정치가 발전했으며 의무교육의 보급으로 대중의 수준이 향상되었고, 상공업의 발전으로 중산층이 증가하면서 도시가 발달했습니다.
특히 서양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일본의 전통문화와 혼합되는 독특한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당시는 '다이쇼 로망(大正浪漫)'이라고 불리며, 낭만적이고 향수 어린 분위기로 묘사되곤 합니다. 남성들은 중절모에 양복을 입거나 전통 기모노 위에 서양식 코트를 걸치는 '화양절충(和洋折衷)' 스타일이 유행했고 여성들 사이에서는 기모노 위에 하카마를 입고 구두를 신는 '하이칼라' 스타일이 유행했습니다. 중절모를 쓴 무잔의 모습은 당시 멋쟁이들의 대표적인 패션스타일이었습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길거리 음식 문화도 크게 발달했습니다. 우동은 저렴하고 따뜻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가게는 물론 포장마차(야타이)에서도 인기 있는 메뉴였습니다.
귀멸의 칼날 1기에서 탄지로가 도쿄에 갔을 때 노점에서 우동을 사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야마카케 우동’인데 찐득하게 간 참마(마)와 짭짤한 육수, 그리고 쫄깃한 우동면을 함께 먹는 일본식 우동 요리입니다.
야마(山)는 “산”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산에서 캐는 뿌리채소, 특히 ‘참마’를 가리킵니다. 일본에서는 참마를 ‘야마노 사시미(산의 사시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날것 그대로 갈아 먹는 희귀한 식재료라 붙은 별명입니다. 그리고 카케(かけ)는 우동에 국물을 부어 낸 기본 스타일을 뜻합니다. 토로로(とろろ)는 일본 음식에서 자주 등장하는 재료인데, 간단히 말하면 참마를 갈아서 걸쭉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베이스는 젓가락으로 집으면 늘어질 정도로 점성이 좋다고 합니다. 은근히 단맛이 있고, 흙내음과 청량감이 어우러지는데 특히 소화효소(디아스타제)가 많아서 소화 잘되는 보양식으로 유명하며 여름철 원기 회복 음식의 재료로 많이 쓰입니다. 토로로 베이스는 밥에 부어 먹거나 스프나 된장국에 넣어 풍미는 더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는데 그 중 야마카케 우동은 이러한 토로로 베이스에 우동 면을 올리고, 계란 노른자, 김, 파, 와사비 등의 고명을 얹어 먹는 서민 음식입니다.
탄지로는 첫 임무를 끝내고 다시 명령을 받아 급히 도쿄로 이동한 후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고자 걸쭉한 ‘토로로(とろろ)’ 국물을 얹은 든든한 야마카케 우동 한 그릇을 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탄지로는 갑자기 풍겨온 혈귀의 피냄새에 몇 젓가락 뜨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다이쇼 시대의 분위기는 관동 대지진과 치안유지법 제정 등 사회적 불안과 맞물리며 막을 내리고, 군국주의로 향하는 쇼와 시대(昭和: しょうわ, 1926~1989년)로 이어지게 됩니다. 특히 쇼와 시대는 우리에게는 식민통치의 아픔과 전쟁의 상처가 깊이 남게 된 시기였습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1910년대 혹독한 무단통치기를 거쳐 1920년대의 기만적인 문화통치가 시행되었으며, 1930년대는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는 민족말살통치가 자행되었습니다. 1919년 3.1 운동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으로 이어지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목숨이 지는 등 쇼와 시대는 우리에게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특히 백두산 최고봉인 병사봉이 대정봉으로 개명당하고, 친일파들이 '대정실업친목회'라는 친일단체를 만들어 활개쳤습니다.
애니를 보며 다이쇼 시대의 아름다운 기모노와 전통 가옥에 감탄할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시기 우리 조상들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애니를 보지 않을 필요까진 없겠지요.)
탄지로의 귀걸이는 욱일기를 닮아 논란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전통 문양·풍어 기원의 깃발 등 다양한 맥락으로 쓰였지만, 한국과 중국에서는 전범기로 인식됩니다. 애니가 처음 개봉했던 당시 이에 대해 항의가 거셌습니다. 다행히 국제판은 디자인이 수정되었는데 만약 항의에도 불구하고 바꾸지 않았다면 저 역시 시청을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도 본래는 인도·중앙아시아에서 '행운'과 '평안'을 뜻하던 스와스티카였습니다. 그러나 나치가 이를 살짝 기울여 하켄크로이츠로 사용하며 절대악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은 독일에서 언급하는 것조차 범죄로 간주됩니다.
일본정부는 오래전부터 풍어 등 좋은 의미로 욱일문양을 사용했기 때문에 전범기로 보는 시각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스와스티카도 수천 년간 평화와 행운의 상징이었지만 단 십여 년의 나치 시대 때문에 영원히 금기가 된 것처럼, 욱일기도 일제강점기와 태평양전쟁이라는 역사적 비극 때문에 전범기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전쟁범죄의 상징을 독일은 철저히 금지하는데 반해 일본은 계속 사용하는 이유는 역사적 맥락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일본은 미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은 원래 전범들을 모두 단죄하고 일본을 농업국가로 회귀시킬 생각이었지만 곧바로 시작된 한국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놓게 됩니다. 군수지원기지로서 일본의 역할이 중요해지자 일본에서의 체계적인 군수지원이 필요해졌고 이에 일본 내 A급 전범들은 거의 모두가 풀려났습니다. 아베 신조 전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도 이 당시 석방됩니다. 이를 통해 일본은 과거를 청산하고 반성하지 못한 채 전쟁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나쁜 가르침을 체득하게 되었고 반성은 역사교과서에서 사라집니다.
이 후 경제호황기를 거치며 세계사람들이 일본 문화에 대해 호의적으로 변하게 되면서 욱일기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급속히 희석되었고 급기야 자위대의 공식 깃발로 지정되기에 이릅니다. 이 상징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일본인들과 세계인들은 적극적으로 욱일문양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2000년을 전후해서는 스포츠 경기에서 응원의 도구로 얼굴을 비추기에 이릅니다.
상징은 원래 의미보다 최근의 역사적 경험이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일본의 보통사람들이 전통을 지키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더라도 "전통문양이므로 문제없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정당화될 수도 없는 궤변이며,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결코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귀살대의 제복에서도 우리는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시청에 큰 방해요소가 되진 않습니다.) 귀살대원복과 같은 교복 스타일은 일본의 근대화와 군국주의가 맞물리면서 등장했으며,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가쿠란(学ラン)'으로 불리는 검은색 교복은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을 거치면서 서양의 군복을 모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일본은 부국강병을 목표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국가적 통제력을 높이고자 했는데, 학생들에게 군복과 비슷한 교복을 입힘으로써 규율, 복종, 그리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려 한 것입니다.
서양 군복처럼 목이 높게 올라오는 깃은 단정한 외모를 유지하고, 학생들에게 엄격한 규율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검은색은 때가 잘 타지 않아 실용적인 측면이 있었으며 단정함, 진중함, 그리고 권위를 상징했으며 당시 물자의 부족에 의한 실용적 선택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또한 '귀멸의 칼날'에서는 밤에 활동하는 귀살대의 특성상 어둠에 잘 녹아드는 색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등에 써있는 '滅'(멸할 멸)자는 귀살대의 사명을 압축한 상징입니다.
탄지로, 젠이츠, 쿄주로 등 주요 캐릭터들이 제복 위에 입는 겉옷은 '하오리(羽織, はおり)'라고 부르며 각 캐릭터의 상징성을 담았습니다. 탄지로의 체크무늬(이치마츠)는 숯가마 집안임을 나타내며, '화염주' 렌고쿠 쿄주로의 불꽃무늬 하오리는 아카자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쿄주로의 극적 서사를 고조시킵니다. 젠이츠의 삼각형 무늬(우로코)는 과거의 자신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최강의 검사들인 '주(柱:하시라)'들을 지휘하던 모든 대원들로부터 존경받던 귀살대 최고 수장인 ‘우부야시키 카가야’는 '오야카타사마(お館様: 큰어르신)'라고 불립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어르신이나 주군을 의미하는 호칭을 넘어 수백 년간 혈귀와 싸워온 우부야시키 가문에 대한 깊은 존경이 내포되어 있으며, 대대로 귀살대를 이끌며 희생해 온 고결한 사명을 대변하는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에서 약간의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전투 능력이 없어도, 뛰어난 통찰력과 카리스마로 귀살대를 통솔하며 대를 이어 목숨을 바친 가문의 수장에게 붙여진 이 표현은,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력이 아닌 정신적, 도덕적 권위에 의해 성립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멸의 서사구조에 있어서 중요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귀멸의 칼날' 속 '꺾쇠 까마귀'는 귀살대원들의 주요 통신수단이었습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다이쇼 시대(1912년~1926년)에는 이미 전신, 전화, 라디오 등의 근대적인 통신 기술이 도입되고 보급되던 시기였으나 임무의 특성상 산지나 오지에서 전투를 치뤄야 했던 귀멸대원들에게 이러한 통신 수단은 적합치 않았으며 오히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꺽쇠 까마귀가 더욱 편리했습니다.
인류는 예전부터 새를 통신수단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서구(傳書鳩)'라고 불리는 통신용 비둘기입니다. 전서구를 이용한 통신은 고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아랍인들이 통신용으로 사용하던 것이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제1차, 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 때까지도 중요한 군사 통신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원리는 비둘기의 강력한 귀소 본능을 이용한 것입니다. 발에 메시지를 매달아 보내면, 비둘기는 자신이 길들여진 장소나 둥지로 돌아가는 본능을 이용해 소식을 전달합니다. 이 때문에 주로 한 방향으로만 통신이 가능했고, 양방향 통신을 위해서는 비둘기들을 훈련시키는 등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까마귀는 비둘기보다 지능이 높고 훈련이 가능하지만 귀소 본능이 비둘기만큼 강하지 않아 현실에서 통신에 활용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참고로 젠이츠의 전서구는 참새였는데 너무 귀엽습니다.
뇌를 빼고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기니 까마귀에 대한 생각은 삼족오에 다다르게 됩니다. 삼족오는 세 개의 다리를 가진 상상의 까마귀로, 고대 동아시아에서 태양의 정기(精氣)를 상징하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고구려의 상징과 일본축구협회의 엠블럼 또한 같은 삼족오입니다. 이는 우연한 일치일까요, 아니면 동북아시아의 문화의 공통적 요소일까요?
이에 대한 힌트는 중국의 고대 문헌인 <산해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의 ‘상제'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한 명은 태양신 ‘희화’였고 다른 한 명은 달의 신인 ‘상희’였습니다. 이 두명의 부인들은 각각 10개의 태양과 12개의 달을 낳았고(많이도 낳았네요) 10개의 태양과 달은 1개씩 순차적으로 뜨고 지면서 세상을 비추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스템의 오류로 10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서 세상이 뜨거워지자, 백성들은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태양은 계속 머리에 있었기에, 지상의 왕이었던 요임금은 제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제준은 ‘예’(羿)라는 인물에게 활과 화살을 주어 땅으로 내려가 재난으로부터 백성들을 구원하라고 명하였습니다.
활 솜씨가 대한민국 양궁대표팀 뺨치게 뛰어났던 예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태양을 향해 화살을 쏘았고 화살을 맞은 태양은 커다란 소리를 내며 지상으로 떨어졌는데, 떨어진 곳을 가보니 발이 세개 달린 금빛 까마귀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박레어템에 흥분한 예가 다시 8개의 화살로 8개의 태양을 떨어뜨리고 마지막 10번째 태양도 떨어뜨리려고 하였으나, 요임금이 지상의 ‘밸붕’(밸런스 붕괴)을 염려해 만류하여 다행히도 하나의 태양은 그대로 하늘에 남았다고 합니다.
이 기원설화는 동아시아의 고대 기마민족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됩니다. 고대 기마민족들은 태양, 새(까마귀, 불사조), 화살을 조합하여 왕이나 신은 묘사했으며 자신들의 기원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삼족오 문양이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5천년에서 3천년 사이 중국 황하 중류에 존재했던 양사오 문화입니다.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한 양사오 문화 유적지에서 삼족오가 새겨진 수천 점의 토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삼족오가 많이 그려져 있으며 다른 여러 전설에도 등장합니다.
신라의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에서도 삼족오가 등장하는데, 연오랑(燕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이름을 살펴보면 둘 다 이름에 까마귀 오(烏)자가 붙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TMI: 연오랑과 세오녀
신라 8대 아달라왕 4년에 연오랑, 세오녀 부부가 동해안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연오가 해초를 따는데 바위가 움직이더니 그를 실은 채 일본으로 직배송했고, 이에 일본인들은 비범한 사람이라며 그들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한편 세오녀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찾다가 바위 앞에 남편이 고이 벗어놓은 나이키 에어포스를 보고 바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바위는 또다시 움직여 세오녀를 일본으로 로켓배송했고(이쯤되면 납치에 목적이…) 세오녀는 연오랑과 재회하여 왕비가 되었습니다.
한편 그 이후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습니다. 신라 아달라왕이 점술가는 불러 “요즘날씨 왜!? 아! 달라!?"라고 묻자 점술자는 우리나라의 해와 달의 정기를 품은 이들이 일본으로 갔기(=납치되었기)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신라 왕이 사신을 보내 연오랑과 세오녀에게 돌아오도록 설득했으나 이미 따뜻한 쌀밥과 푹신한 이부자리가 보장된 권력의 맛에 취한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고 대신 세오녀는 직접 짠 한정판 비단을 보냈습니다.
왕이 그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비로소 해와 달이 빛을 되찾았습니다. 그 후 비단을 국보로 보관한 창고를 귀비고(貴妃庫),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던 곳은 훗날 도기야(都祈野) 혹은 영일현(迎日縣)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그나저나 연오랑과 세오녀는 벼락출세의 끝판왕이군요. (feat. 부럽습니다)
고구려의 삼족오 외에 일본신화에서도 야타가라스(八咫烏)라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등장합니다. 일본 건국 신화에서 야타가라스는 진무 천황(神武天皇)를 도와 승리로 이끄는 수호신 역할을 합니다. 이 때문에 일본 축구협회는 야타가라스를 상징으로 사용하여 승리와 인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삼족오 문화는 태양을 신성시했던 고대 동아시아 문화의 공통적인 흔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삼족오에 부여한 구체적 의미와 역할은 조금씩 다르지만, 태양과 까마귀를 연결하여 신성함, 힘, 인도자와 같은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공통된 문화코드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귀멸의 칼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전집중 호흡'입니다. 탄지로는 초반 물의 호흡을 사용하여 혈귀들을 제압하고 다른 ‘주'들도 각자의 호흡으로 혈귀들을 상대합니다. 전집중 호흡은 단순히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통해 모든 정신력을 한 점에 모아 신체와 정신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고도의 집중 상태를 의미합니다.
덕왕은 이에 대해 연구하다가 투자의 대가들도 전집중 호흡을 익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이를 세계최초로 공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감춰진 비기를 꺼내는 느낌으로 대표적인 대가들의 기술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워런 버핏의 뛰어난 투자실적은 그의 오랜 경험과 수련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오랜 전집중 호흡에서 그 실력을 더욱 갈고 닦은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입니다. 덕왕의 오랜 연구를 통해 알게된, 해의 호흡에 견줄만한 투자의 모든 호흡의 꼭대기에 있는 그의 '전집중 투자의 호흡'을 분석해보겠습니다.
투자의 호흡 1형 – 가득한 활자
하루 500페이지, 책에 파묻혀 모든 정보를 스캔합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통해 뇌의 연산능력을 폭발적으로 향상시켜 연차보고서부터 경제 신문까지, 마치 물이 스며드는 것처럼 정보를 흡수하고 걸러냅니다.
투자의 호흡 2형 - 무한의 통찰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불패. 하루 80% 이상을 읽기와 생각하기에 할애합니다. 회의나 미팅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오직 시장 분석과 기업 연구에만 집중합니다. 이 기술을 통해 버핏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장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투자의 호흡 3형 – 불어나는 복리
버핏은 절대적으로 원금을 사수하며 장기 투자 원칙을 고수합니다. 좋은 기업의 매수를 통해 시세차익은 물론 복리의 배당금을 통해 오랜 싸움에서 체력을 보전하며 장기전에서 승리를 가져가는 수성의 기술입니다.
투자의 호흡 4형 – 바닥의 포효
버핏은 남들이 두려워하는 폭락의 순간에 큰 기술을 구사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시장이 공포에 떨 때 과감하게 움직이는 것이 바로 이 기술의 정수입니다. 이 기술은 시장이 공포에 떨 때만 펼칠 수 있는 제한 조건이 있습니다.
투자의 호흡 7형 - 견고한 해자
버핏은 금강불괴급의 방어력 강화를 통해 강한 공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비록 공격력은 하락하지만 방어력 강화와 지속적인 HP 회복 버프를 통해 상대의 공격의지를 꺽고 승리를 가져가는 기술은 수성의 극치입니다.
버핏이 여러 형의 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번개의 호흡 1형 ‘벽력일섬’ 하나를 갈고 닦았던 젠이츠처럼 하나의 기술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대가들도 있습니다. 젠이츠는 무한성편에서 번개의 호흡 1형 '벽력일섬'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응용한, 제 7형 ‘화뢰신’(火雷神: 호노이카즈치노카미)으로 상현인 카이가쿠를 쓰러뜨렸습니다.
조지 소로스: '전집중 매도의 호흡’ 의 대가입니다. 조지 소로스는 제2형 ‘어긋남의 골짜기’ 기술을 통해 시장 참여자들의 인식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찾아냈고 이 기술 하나로 영국 파운드를 공매도하여 영국 중앙은행을 무너뜨려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제시 리버모어: '추세추종'이라는 단순한 원칙 하나에만 집중한 트레이딩의 대가이며 "추세는 친구다"라는 철학으로 1929년 대공황에서도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추세추종 트레이딩의 대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전집중 추세의 호흡' 제4형 ‘상승하는 바람’'의 대가입니다.
폴 튜더 존스: '매크로 경제 분석'과 '리스크 관리' 두 기둥을 바탕으로 하여 평생 ‘전집중 나무의 호흡’ 제1형 ‘홀로 솟은 나무'를 연마했습니다. 이 기술을 통해 거시경제의 변화를 탁월하게 예측한 그는 1987년 블랙먼데이를 예측해 200% 수익을 올렸습니다.
에드 소프: 그는 '수학적 모델링'과 '통계적 차익거래' 하나에만 매달려 마침내 수학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증명한 사람입니다. ‘전집중 숫자의 호흡’ 제1형 ‘수리만점'(秀利萬点)을 갈고 닦아 퀀트 투자의 시초의 거인이 되었습니다.
투자에 있어서도 모든 도를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국 모든 길은 하나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가치투자든, 기술적 분석이든, 거시경제 분석이든, 모두 ‘집중과 노력’이라는 동일한 연료를 소모하며 성공이라는 동일한 목적지를 향하기에 우리 또한 자신만의 전집중 호흡 수련을 통해 투자의 긴 여정을 이어나가길 소망합니다.
혈귀의 목을 벨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일륜도는 태양의 힘을 머금은 옥철로 만든 칼입니다. 일륜도에 새겨진 무늬는 실제 일본도의 재료 타마하가네 [사철(沙鐵, Magnetic Sand)]를 담금질(야키이레·燒入)하는 과정에서 부위별로 냉각속도가 달라 생기는 무늬인 '하몬(刃文: はもん)'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귀살대 시험 통과 후 지급받은 일륜도의 색이 바뀌는 변화는 철의 산화 현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의 경우 표면적이 넓은 사철을 가열해 덩어리지게 만든 불순물이 많은 타마하가네(玉鋼)를 이용한 단조방식이 일반적입니다. 타마하가네 한 근을 뽑아내는데 사철 열 근이 드는데, 그 과정에서 무지막지한 양의 땔감이 필요하여 무기를 만드느라 숲이 없어진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몬은 비록 칼의 예리함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급스러운 요소로 평가받는 동시에 대장장이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방식이었기에 상당한 열정을 쏟았습니다.
탄지로가 칼을 부러뜨릴 때마다 탄지로의 칼을 만든 대장장이 하가네즈카가 죽일 듯이 달려들었던 장면이 이제야 이해갑니다.
탄지로와 귀살대에게 키부츠지 무잔은 해치워야할 대상일 뿐이지만 CEO로써의 무잔의 전략을 분석해보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는 극도로 보수적이고 리스크를 회피하는 성향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물론 그가 절대악이라는 점은 변함없지만, 순수하게 경영 전략 관점에서 보면 리스크 관리 능력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회사명: 키부츠지 무잔 유한회사
핵심사업: 혈귀 제조 및 유통업, 부동산업, 프랜차이즈, 바이오신약개발
시장점유율: 일본 내 100% 독점
경쟁사: 귀살대 (무잔 유한회사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
무형자산: 희소자원인 무잔의 혈액을 이용한 혈귀 제조술, 브랜드 파워, 심야를 이용한 탁월한 유통망
비지니스모델:
1. 혈귀 제조업 및 유통업
2. 부동산 임대 (REITs)
3. 프랜차이즈 (혈귀에게 지점 임대)
4. 바이오 신약개발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이 거셈)
5. 적대적 M&A를 통한 성장 (귀살대로부터 적대적 M&A 공격을 받는 동시에 타마요 제약 인수 시도)
조직구조: 기획부터 생산 관리까지 모두 내재화, 수직계열화된 피라미드 구조
임직원 규모: 수백명으로 추정
매출 및 영업이익: 비상장이며 알 수 없음
종합평가:
1. CEO개인의 능력은 매우 탁월하지만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좌우되며 이를 견제할 수단이 전혀 없기 때문에 매우 큰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이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임직원들의 근무환경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임원급으로 갈수록 근속년수가 몇 백년 이상으로 매우 긴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를 통해 임원급에 대한 처우는 매우 좋은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이는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는 자율권과 상당한 스톡옵션의 지급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임원급인 십이귀월은 정기적으로 본사(무한성)에 모여 회의를 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단 일반 직원들의 처우는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기본적으로 재택근무형태지만 사무실이 없으며 자체적으로 매출을 올려야하고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것도 허용되는 등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4. 회사의 운영과 매출이 심야에만 이루어지는데 청소업이 가지는 해자(moat)와 비슷합니다. 큰 매출을 올리고 있으나 영업 시간의 분명한 한계는 ESG경영의 걸림돌인 동시에 회사 발전에 있어서 상방이 닫혀있음을 뜻합니다.
5. 일부 임직원들의 통제불가 우려가 있습니다. 실제로 전직원이었던 ‘타마요'는 무잔의 지배에서 벗어나 ‘타마요 제약'을 설립한 후 바이오시밀러(복제약)를 통해 유시로를 자신처럼 무잔의 저주가 통하지 않는 혈귀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차후에 다른 혈귀들도 무잔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유전자조작(크리스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무잔에게 큰 위험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투자의견: 견고한 매출이지만 다양한 위험과 변동성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음. 매도 추천
작성자: VK investment 수석 애널리스트 V I R T U E K I N G
본 분석은 매수매도추천이 아니며 본 기관과 담당 애널리스트는 해당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귀멸의 칼날"의 설정에 따르면, 키부츠지 무잔은 1000년 이상을 산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무잔이 서기 794년부터 1185년까지 약 400년 동안 이어진 헤이안 시대에 태어났음을 의미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그는 결국 죽음에 이르렀고, 한 의사가 '푸른 피안화'를 주원료로 개발한 약을 투여받은 후 일본 최초의 혈귀가 되었습니다. 약을 투여받은 직후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무잔은 분노하여 의사를 살해했으나, 의사를 죽인 직후 그제서야 자신의 몸이 강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역시 섣부른 판단은 나쁜 결과를 초래합니다.
아...잠깐 이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무잔이 태어났을 당시, 한반도는 통일신라와 발해가 공존하던 남북국 시대였습니다. 무잔이 130살쯤 되었을 때 고려가 건국되고 500살쯤 되었을 때는 조선이 건국되었습니다. 그 후 일본의 전국시대와 임진왜란, 그리고 세키가하라 전투를 거쳐 막부시대가 열리고 한일합방과 청일전쟁등의 큰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기술은 발전하고 일본의 국력을 커져가고 있던 시기에는 어느 때보다도 해외 진출이 용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에 가까운 생명과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잔이 일본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이쇼 시대(1912~1926년)는 근대화가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해외 여행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주된 이동 수단은 증기선이었으며, 태평양을 횡단하는 데는 몇 주가 걸렸습니다. 이는 무잔과 혈귀들에게, 치명적인 약점인 햇빛을 피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밤에만 활동해야 하는 혈귀의 특성상, 바다 한가운데서 숨을 곳이 없는 배를 타고 장기간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무잔이 해외 진출을 하지 않은 것은 탁월한 리스크 관리였습니다. 자신의 핵심 약점(햇빛)을 고려할 때, 장거리 해상 운송은 통제 불가능한 리스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대 기업들이 진출하려는 시장의 규제 환경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며 무잔이 내린 부정적 결론은 합리적 선택이었습니다.
무잔의 혈액은 혈귀를 만드는 유일한 자원이자, 그 자체로 막대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강력한 혈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잔 자신의 혈액을 상당량 주어야 하는데, 이는 자신의 힘을 희생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 혈액을 많이 주입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몸이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되며 적게 주입하여 만들어진 약한 혈귀는 귀살대에 의해 쉽게 처단될 수 있습니다. 즉, 혈귀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낮은 수율을 가진 최신 반도체처럼 높은 실패율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현대 기업으로 치면 무잔의 혈액은 핵심 기술력과 같고 혈귀가 주는 공포감은 브랜드 파워와 같습니다. 무잔은 아래와 같은 사항들을 검토했을 것입니다.
높은 실패율: 혈귀 제조 성공률이 낮음 → R&D 투자의 불확실성
품질 관리: 강한 혈귀를 만들려면 많은 혈액 필요 → 실패에 의한 매몰비용 및 높은 고정비 발생
규모의 경제: 대량 생산보다는 소수 정예가 유리 → 상현/하현의 엘리트 전략
한편 무잔의 신체정보는 179cm, 75kg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인 남성의 혈액량은 체중의 약 8% 정도로, 계산해보면 약 6L정도인데 이 중 20%의 혈액(약 1,000~1,200mL)을 잃으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무잔의 경우 죽지는 않겠으나 실패율도 높은 혈귀를 대량으로 만들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며 많은 피의 소모로 인해 귀살대에 의해 공격받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 또한 염려했을 것입니다.
더불어 자신보다 강한 혈귀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자신도 약에 의해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혈귀라는 존재가 되었듯이 많은 혈귀 중에 통제를 벗어난 돌연변이가 태어나거나 무잔의 힘을 뛰어넘는 강력한 혈귀가 탄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타마요'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들이 세력을 규합하여 대항할 수 있는 위험을 무잔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소수정예를 만들어 통제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임을 무잔은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무잔은 자신의 피를 받은 혈귀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 '저주'를 걸어두었습니다. 이는 현대의 독점 계약이나 경업금지 조항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이 저주는 혈귀가 무잔에게 반역하거나 멀리 떨어지면 발동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타마요'가 저주에서 벗어나며 무잔의 통제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블랙스완'의 발생 이후 이 리스크는 무잔에게 있어서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혈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무잔의 혈액은 희소 자원입니다.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생산 후 관리 비용 역시 상당합니다.
상현과 하현으로 이루어진 엘리트집단인 십이귀월은 일반 혈귀 수백 마리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력과 정보 수집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대규모의 불안정한 군대를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효율적인 전략입니다.
무잔의 목표가 세계 정복이나 인류 멸종이 아니었던 것도 무잔이 일본에만 머문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는 푸른 피안화를 찾아 햇빛을 극복하고 불멸을 얻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는데, 당시 정보에 의하면 푸른 피안화는 일본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굳이 해외로 나가는 것은 무잔에게 있어 자칫 매몰비용만 발생시킬 수 있는 리스크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본 내에서 소수의 엘리트 혈귀들을 통해 수색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해외로 진출한다면 앞서 말했듯이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혈귀들이 생겨날 위험이 커집니다.
더욱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무잔도 들었을 것이기에 자신의 통제영역 밖으로 혈귀를 보내는 것을 더욱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무잔이 일본 전역에 수많은 혈귀를 풀어놓았다면, 인간이라는 먹이 자원은 순식간에 고갈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결국 혈귀들 사이의 극심한 경쟁과 자멸을 초래합니다. 무잔은 혈귀의 존재를 비밀스럽게 유지하고, 인간 사회에 은밀하게 숨어들게 함으로써 지속적인 먹이 공급원을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포식자(혈귀)와 피식자(인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생태학적 접근으로, 무잔이 자신의 종족을 장기적으로 존속시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무잔의 이러한 생각은 1798년 멜서스의 <인구론>과 비슷한데,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히 유입된 서양의 지식을 통해 무잔이 이 책을 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잔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는 것이었습니다. 대량의 혈귀가 활동한다면 인간 사회에 큰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나 다른 세력이 조직적으로 혈귀 토벌에 나설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무잔은 소수의 혈귀들만을 이용하여 '밤의 공포'를 유지하되, 그 존재는 도시 전설처럼 신비롭고 은밀하게 남겨두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는 서양의 뱀파이어처럼 대놓고 사회를 지배하려 하기보다, 일본 요괴 설화처럼 사람들 몰래 존재하며 두려움을 주는 존재라는 문화적 배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소수의 혈귀는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도, 공포와 혼란을 야기하기에 충분했고, 이는 무잔이 인간 세계에서 조용히 활동하며 푸른 피안화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었습니다.
혈귀에 맞서는 유일한 대항 세력인 '귀살대'는 일본 정부와 무관한 비밀 조직으로, 그들의 활동 범위는 일본 국내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만약 무잔이 다른 나라에 혈귀를 퍼뜨렸다면, 그 나라들에도 귀살대와 같은 대항 조직이 생겨나거나,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토벌이 시작될 위험이 있습니다.
무잔은 이미 일본 내에서 귀살대의 존재만으로도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에, 굳이 다른 나라에 불필요한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무잔은 햇빛을 극복한다는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통제 가능하고 언어가 통하는 안전한, 일본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합리적 방식을 택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 통치 하에 있었으므로 일본에서 조선으로의 진출은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잔이 조선에 진출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시기는 무잔이 가장 은밀하게 활동하던 때와 겹칩니다. 당시 조선은 식민지배와 독립운동이라는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으며,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통해 강력한 무력과 경찰 제도로 사회를 통제했습니다. 무잔이 일본에서 유지했던 '존재의 은닉' 전략은 무력이 지배하는 식민지 조선에서는 효과적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군대와 경찰은 귀살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조직적이고 막강한 물리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들이 야간 순찰이나 치안 유지를 위해 광범위한 감시를 펼치는 상황에서 혈귀들이 비밀리에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무잔이 한반도에 진출하지 않은 이유를 모두 설명하기는 부족합니다.
무잔은 1000년 넘게 살아오며 머리도 좋은 만큼 한반도의 정세 파악에도 능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 같은 큰 전쟁이나 한일합방 등 당시의 상황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잔은 굴복하지 않고 계속 저항한 조선의 의병이나 독립운동가들이 귀살대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절망과 고독을 양분으로 삼아 혈귀로 만들어야 하는데, 강한 정신력과 단결력을 가진 민족은 혈귀로 만들기도 어렵고 귀살대보다도 위험한 상대가 될 수 있으므로 리스크대비 수익률이 낮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더욱 주목할 점은 한반도와 만주에는 무잔의 힘을 뛰어넘는 신화적 존재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네이버웹툰 <호랑이형님>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에는 '호환(虎患)'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난히 호랑이가 많았는데, 오죽하면 조선시대때는 '착호갑사(捉虎甲士)' 같은 근력만랩 전투 전문가를 육성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무잔은 무한한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신체를 자유자재로 변형하고, 자신의 혈액을 통해 혈귀를 만들어내며, 충격파와 같은 혈귀술을 사용하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그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의 유일한 약점은 태양빛과 특별히 제작된 일륜도에 의한 목 절단뿐이므로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아무리 몸을 부수고 목을 베도 즉시 재생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힘만으로는 그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호랑이형님' 세계관 최강자들은 목을 베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소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탑티어 강자들(압카, 완달, 아린)은 무잔에게 없는 '영혼을 파괴하는 힘'이나 '상대를 소멸시키는 술법'을 가지고 있어, 무잔을 상대로 손쉽게 승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잔의 재생력은 생명체의 범주에 속하는 반면, 이들의 힘은 태양빛에 비견될 만큼 절대적이며 존재 자체를 소멸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압카는 상대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으며, 완달의 힘은 용을 잡을 수 있을만큼 파괴력이 높습니다. 이런 능력 앞에서는 생물로서의 무잔의 재생력은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이런 탑티어급 최강자들 말고도 한반도에는 잔뼈가 굵은 터줏대감 경쟁자들도 있었습니다. 무잔을 비롯한 혈귀들은 오직 인간을 먹이로 삼아 생명을 유지합니다. 이는 한반도 진출 시 원래 활동하던 다른 초자연적 존재들과의 직접적인 자원 경쟁을 의미합니다.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인간의 간을 빼먹으며 살아온 구미호는 인간을 두고 혈귀들과 직접적인 영역다툼을 벌였을 것입니다.
도깨비는 인간을 해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장난을 치거나 인간과 같이 노는 등 예측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무잔처럼 철저한 통제를 추구하는 존재는 이런 프리한 영혼을 가진 존재들과 피할 수 없는 갈등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무잔이 하는 게임 <문명, 한반도>DLC는 본편과는 수준이 다른 지옥의 난이도에 예측 불가능한 랜덤 이벤트로 가득차 있음은 ‘저장’과 ‘불러오기’조차 안되는 캐삭(캐릭터 삭제)의 위험마저 존재하는 위험한 시나리오였던 것입니다.
보스급들만 위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야수가 아닌, 영물이자 산신(山神)으로까지 여겨지던 호랑이 역시 강력한 존재입니다. 대다수의 호랑이들은 무잔의 상대가 되지 않겠으나 ‘산군’이나 ‘무커’와 같은 일부 호랑이들은 혈귀들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무리를 이끌고 전략적으로 싸우는 지능을 가졌습니다.
이는 글로벌 기업들이 신흥 시장에 진출했다가 예상치 못한 규제나 문화적 장벽, 그리고 로컬 기업들의 카르텔에 부딪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좌초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에 더해 물의 호흡 극한 마스터 이순신 장군님의 미친 존재감과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의병들도 한반도 진출의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명량대첩에서 13척으로 133척을 궤멸시킨, 만화에서라도 욕먹을 법한 말도 안되는 사실에 대해 무잔은 와카자키 야스하루 등이 남긴 기록 등을 통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조선 진출 시도가 임진왜란처럼 다시 실패하게 된다면 퇴각 시 반도의 물의 호흡 계승자에 의해 또다시 공격받는다면 잘린 신체는 재생할 수 있어도 물귀신을 피할 도리는 없기에 값비싼 혈귀들을 모두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생산수율이 형편없고 자원수급도 용이하지 않은 혈귀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무잔으로 하여금 "이 나라는 건드리면 안 되겠다"라며 단념케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안정적인 고립은 무잔만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 일본사회를 관통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일본(Japan)과 갈라파고스(Galapagos)의 합성어로서 일본이 마치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전 세계적 흐름에 뒤쳐져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갇혀 살고 있다는 자조적인 뜻이 섞여있는 말입니다.
일본의 수많은 가전제품과 자동차에서도 그 예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아직도 팩스를 주요통신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유난히 국제규격과 다른 특이한 형태의 제품이나 자체규격이 많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의 경차들과 달리 유난히 차체가 작고 높은 오직 일본에서만 팔리는, ‘내수용’ 경차들도 많습니다. 일본은 혁신보다는 기존의 것을 개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외부의 시선으로 볼때 오히려 비효율과 퇴행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업들은 내수시장이 튼튼하여 굳이 수출하지 않아도 돈을 버는데 아무 문제가 없기에 국제규격을 도입하는데 인색하며 사람들도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않습니다.
일본 여행을 가보신 분이라면 거의 다 느껴보셨겠지만 욕실이 마치 한번에 찍어낸 듯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 호텔의 욕실은 여러 별도의 시설들을 함께 배치한 ‘시공'된 모습이라면, 일본은 욕실로 된 컨테이너가 따로 붙은 듯한 이질감을 느끼게 합니다.
아무튼 극도로 리스크를 싫어하며 효율성을 추구하는 무잔에게 여러모로 반도 진출은 매우 위험한 시도였을 것입니다. 안전한 일본 시장을 지키는 것이 한반도로 확장하는 것보다 높은 위험대비수익률을 갖기에 무잔은 경영자로서 당연한 선택을 했습니다.
이제 왜 한반도에 혈귀가 없었는지 이해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귀멸의 칼날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가는대로 써봤습니다.
만화방 사장님과의 추억부터 유포터블의 기술적 혁신, 귀칼의 배경이 된 다이쇼 시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무잔 CEO의 경영 전략까지, 저로서는 꽤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뇌 빼고 쓴 글에 여러분도 즐거우셨길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역사와 시대의 흐름과 함께해 온 명작들에 대해서 들여다보겠습니다.
벌써부터 두 번째 시간을 소개할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아직 귀멸의 칼날을 접하지 못한 분이라면 이번 기회에 정주행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실제로 저도 귀살대를 키우는 우부야시키의 마음으로 후배 김프로를 강하게 단련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왠지 만화방 사장님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사장님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는 지금입니다.
오늘 밤 자기 전에 애니 한 편 어떠신지요?
오늘도 같이 공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