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분석은 없었다. 이것은 리뷰인가 강의인가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개봉을 기념하여 귀멸의 칼날에 얽힌 이야기들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일본 애니 산업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어린 시절에 합체로봇을 가지고 놀며 그 설계의 정밀성에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의 합체장면이야 그림으로 때운다 쳐도 실제 완구로서의 구현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합체로봇의 정밀함 뒤에는 일본의 “메커니즘”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카라쿠리(からくり)의 유산
무로마치 막부시대(1336~1573년)에 접어들어 서양에서 총과 함께 시계 등의 기계류가 유입되었고, 17세기경 에도시대부터 시계 등에 사용되었던 톱니바퀴 기술을 인형의 동작장치로 응용해 만든 ‘카라쿠리 인형’이 등장했습니다. 일본어로 ‘실을 잡아당겨 움직이게 함’을 뜻하는 동사인 ‘카라쿠루(からくる)’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오늘날에는 기계적 ‘장치/속임수’라는 일반적 의미로도 확장되어 쓰입니다. 스스로 동작하는 자동인형을 영어로는 ‘오토마타(automata)’라고 하는데 카라쿠리는 ‘일본의 오토마타’인 셈이며 외부 조종 없이 동작하는 점에서 꼭두각시와는 다릅니다.
일본 카라쿠리는 주로 극장 공연에서 사용된 ‘부타이 카라쿠리(舞台 からくり)’, 실내에서 갖고 노는 ‘자시키 카라쿠리(座敷 からくり)’와 전통적인 종교 및 축제 행사에서 사용된 ‘다시 카라쿠리(山車 からくり)’ 등 크게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자시키 카라쿠리 중 하나인 ‘차 나르는 인형’(차하코미 닌교)입니다. 찻잔을 올리면 스스로 전진해 손님에게 전달하고, 손님이 찻잔을 받으면 멈추는 태엽·캠·기어 기반의 자동제어 시스템이었는데 현대의 AI 로봇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활을 쏘거나 붓글씨를 쓰는 초정밀 카라쿠리도 있는데, 이러한 메커니즘은 현대의 산업용 로봇 팔과 본질적으로 같은 원리이며 그 옛날부터 이런 수준 높은 기계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일본이 세계적인 로봇강국으로 올라선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카라쿠니의 핵심 메커니즘과 기술적 특징
카라쿠리의 핵심은 태엽, 캠, 톱니, 실, 중력·탄성 등을 활용한 구동 메커니즘이었습니다. 초기에는 고탄소강 스프링 제작이 어려워 고래수염을 아교로 처리하여 탄성 부품을 대체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카라쿠리는 “숨겨진 구동”을 기계미학으로 승화시킨 공학 예술이었습니다. 설계의 핵심은 동력-기능을 분리·매개하는 캠-링크-탄성 체인의 서사적 구성입니다. 이런 ‘메커니즘’은 현대 로봇 애니메이션의 변형·합체 철학에도 그대로 이어지며 독특한 메카닉 설계에서도 그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건담의 변신 시퀀스나 마징가 Z의 합체 과정이 바로 카라쿠리의 DNA입니다.
카라쿠니의 현대적 확장
현대에 와서는 로봇 기술에서 전기나 유압장치를 최소화하고 레버, 중력, 스프링을 활용하는 것에서 ‘카라쿠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화콘텐츠에서 ‘카라쿠리’는 자동인형/기계적 트릭을 상징하는 모티프로 활용되며, 관객 참여형 인터랙티브 설계(트리거-피드백-정지 논리)로 경험 디자인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혼다 아시모처럼 일본이 로봇에 진심인 이유도 카라쿠리의 역사를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망가(manga)란 일본 만화책이나 그래픽 소설의 스타일을 나타내며 ‘변덕스러운’ 또는 '즉흥적인’을 의미하는 ‘漫’(man)과 ‘그림’을 의미하는 ‘画’(ga)이라는 두 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기발한 그림” 또는 “즉흥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쿠사이의 목판화
망가(manga)라는 단어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건 19세기 초 일본 에도시대 시기의 유명한 목판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에 의해서였습니다.
호쿠사이는 1814년에 풍경, 동물, 사람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의 스케치 모음이 포함된 '호쿠사이 만화(北斎漫画)’라는 일련의 그림책을 출판했는데, 비록 이것들이 현대적인 의미의 '만화'는 아니었지만, 현대의 만화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잘 그려진 그림첩이었습니다.
물론 호쿠사이가 그 말을 만들어 사용하기 천 년 전에도 일본에서는 '만화적인(Cartoonish)' 그림들이 발견되었지만, 윌 아이즈너(Will Eisner)가 만화(Comic)의 정의로서 말한 "연속적 예술(Sequential Art)"을 기준으로 봤을 때 호쿠사이의 만화부터 진정한 '만화'(망가)가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쿠사이가 *데포르메한 인물 기법을 보면 다른 우키요에 작가들과는 달리 현재의 만화와 유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데포르메: 미술, 특히 주로 회화에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일부 변형, 과장, 축소, 왜곡하여 표현하는 기법
1910년대 중반, 일본의 영화 제작자들은 미국과 유럽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됩니다. 이들은 '움직이는 그림'에 매료되어 서구의 기술을 모방하고 연구했습니다.
1917년, 일본 애니메이션의 출발
흥미롭게도 초기 기법은 칠판에 분필로 그리는 것에서 시작되었고 점차 기초적인 페이퍼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발전했는데,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필름과 스튜디오가 대거 소실되며 초기역사가 단절되기도 했습니다.
칠판에 그리는 기법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깝게는 슬램덩크의 다케히코 이노우에 작가가 ‘슬램덩크 그로부터 10일 후’란 짧은 작품을 칠판에 그린 적도 있으며 카페의 메뉴판서도 볼 수 있듯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모카와 오텐, 고치 준이치, 기타야마 세이타로. 이 세 명의 개척자가 각각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제작했습니다. 1917년은 이 들 모두가 서로 다른 스튜디오에서 초창기 애니메이션을 잇따라 내놓았던 시기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1917년 고치 준이치가 감독한 <나마쿠라카타나>(なまくら刀: 무딘 칼)입니다.
<나마쿠라카타나>는 2008년 오사카의 한 골동품 상점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시아 애니메이션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래 사이트를 클릭하면 시청도 가능한데 100년 전 애니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퀄리티가 좋습니다.
1953년 2월 1일 NHK가 TV 방송을 공식 개시하고, 같은 해 8월 28일 니혼TV가 상업방송을 시작했습니다. 1953년 TV 보급률은 3,000대에 불과했으나, 1958년 14인치 흑백TV가 6만 엔(월급 2.5개월분)으로 하락하며 대중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결정적 계기는 1959년 아키히토 황태자 결혼식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TV 보급이 폭증하여 1,200만 대를 달성했고, 1960년대 말까지 3,000만 가구가 TV를 보유하게 되어 완전한 대중매체로 정착했습니다.
컬러 TV 시대와 TV 애니메이션 확립
1960년 9월 10일, 일본은 1953년 미국의 컬러방송표준으로 공식 채택된 NTSC방식을 도입하여 미국, 쿠바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컬러TV 방송을 개시했습니다. 컬러TV는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확산이 가속화되어 1970년에는 640만 대를 달성했습니다. 1973년에는 컬러TV가 흑백TV 보급률을 넘어섰고, 1977년 NHK 교육방송이 완전 컬러화되면서 일본 방송 전체에 걸쳐 컬러화가 완성되었습니다.
1963년 데즈카 오사무의 혁명: 철완 아톰
TV 컬러화와 함께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이 후지TV를 통해 방영된 것입니다. 일본 최초의 연속 TV 애니메이션으로, 최고 시청률 40.7%를 기록하며 대박을 쳤습니다.
데즈카 오사무는 전체 프레임을 모두 새로 그리지 않고 일부 프레임 사이에서 공통되는 부분을 재사용해 만드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을 도입해 제작비와 시간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장난감, 문구, 과자의 판매를 통해 수익을 냈습니다.
이후 이 ‘미디어믹스’(Mediamix) 모델은 일본 애니의 기본 문법이 되었습니다. 또한 저녁 6-7시 골든타임 이전 시간대가 아동 프로그램 전용으로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철완 아톰>은 단순한 어린이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1945년 패전 후 일본은 원자폭탄 트라우마와 과학기술을 통한 재건의 희망을 동시에 품게 되었는데, 1963년 '철완 아톰'의 등장은 원자력을 평화적 에너지로 전환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50년 당시 최고의 발행 부수를 기록하고 있던 대형 오락잡지 월간 <소년>으로부터 연재 제의를 받은 데즈카 오사무는 그 무렵 크리스마스 섬에서 있었던 미국의 원자폭탄 실험을 뉴스로 접한 이후 아톰의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원자력 에너지를 전쟁과 살생의 도구로서가 아닌 평화적 과학 기술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일깨워 보고자 원자를 뜻하는 ‘아톰’(Atom)을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과학의 시대"로 일컬어지며, 과학기술이 번영과 행복의 길이라는 대중적 믿음이 확산되었는데, 원자력의 "이중성" - 파괴(히로시마)와 재생(평화적 이용)이라는 모순적 감정이 로봇 서사의 선악 이원론에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로봇의 유래
로봇'이라는 말은 1920년대 체코슬로바키아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Čapek)가 1921년 희곡 <R.U.R. (Rossum's Universal Robots, 로섬의 만능 로봇)>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는 체코어 'robota'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노역’ 또는 ‘고된 노동’을 뜻합니다.
작품에서 로봇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존재로 등장하며, 결국 인조인간(로봇)들이 인간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디스토피아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도 AI가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경계론이 유튜브와 지면을 장식하지만 로봇이 태어나던 당시부터도 이미 그 위기의식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robot’은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동 기계나 인조인간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로봇공학 3원칙
아이작 아시모프는 1942년 단편소설 『Runaround』에서 최초로 등장시킨 로봇의 행동 규칙인 로봇공학 3원칙(Three Laws of Robotics)을 제시했습니다. 이 3원칙은 로봇이 인간과 안전하게 상호작용하도록 만드는 윤리적 지침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거나, 인간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방관해서는 안 된다.
2.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단,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
3. 로봇은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이 원칙들은 로봇이 인간 안전과 명령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으며, 현대 인공지능 윤리정립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왜 하필 힘이 솟으려면 원자력 에너지인가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을 보면 유독 원자력 혹은 그에 준하는 에너지(ex: 겟타선)를 동력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역시 일본의 트라우마와 관계있습니다.
1945년 패전 후 1950년대 한국전쟁 특수로 인한 발전으로 인해 경제규모는 급속하게 커졌고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해짐에 따라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일본정부는 대중들에게 원자력의 긍정적 이미지를 설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로봇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정부의 "원자력 개념의 전환"의도에 완벽하게 부합했기에, 많은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원자력을 평화적인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긍정적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투사하여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대한 수용성을 높였고 이는 1966년 일본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도카이발전소’(東海発電所) 건설로 이어졌습니다.
점령기 트라우마와 대리 만족
경제규모의 성장만이 로봇 애니메이션 등장의 배경은 아니었습니다. 미군 점령(1945-1952) 경험은 일본인들에게 자주성 상실과 굴욕감을 안겨주었고, 이는 강력한 기계적 존재(로봇)를 통한 대리 만족의 욕구로 나타났습니다. 즉 로봇 애니메이션의 등장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패전 후 일본사회의 "기술적 재무장"에 대한 욕망의 문화적 표출이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 자신도 미군에게 구타당한 경험이 있었으며, 이러한 트라우마가 아톰의 창조에 투영되기도 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재무장할 수 없었던 만큼 과학기술을 통해 "강력함"을 회복하려는 일본인들의 집단의식이 거대로봇이라는 형태로 구현된 것입니다.
고도경제성장과 소비사회의 형성
1955-1973년간 일본은 연평균 9% 이상의 경제성장을 기록하며 제조업과 건설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1950년에서 1960년까지의 10년 동안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사회 불안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1960년 ‘이케다 하야토’ 총리대신은 10년 안에 국민소득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소득배증계획"을 발표하며 1961년부터 10년 동안 연평균 7% 이상의 고성장 달성을 천명했는데 실제로 이 정책을 통해 냉장고·세탁기·TV가 "3종 신기"로 불리며 대중소비문화가 확산되었습니다. 또한 소득성장을 통해 성장한 경제적 여유는 완구·캐릭터 상품에 대한 구매력을 제공하여 로봇 애니메이션의 상업적 기반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도시화와 기계문명에 대한 동경
1960년대 고도성장기에 도쿄는 급속히 콘크리트 도시로 변모했고, 신칸센·고속도로·고층빌딩이 ‘로봇적 속도’로 건설되었습니다. 이 당시 로봇 캐릭터들이 매끄럽고 빛나는 몸체로 디자인된 것은 애니메이터들이 주변의 새로운 도로, 신칸센, 빛나는 고층빌딩 등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통적 목조주택에서 콘크리트 아파트로의 거주 환경 변화는 아이들에게 이질적인 표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했으며 "기계적 미래"에 대한 동경을 심어줬습니다.
냉전과 우주개발 경쟁과 로봇 애니메이션 붐
1960년대 미-소 우주개발 경쟁이 절정에 달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증했고, 로봇은 "첨단 과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64년 도쿄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엑스포는 일본의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하는 무대였으며, "21세기의 꿈"을 구현하는 로봇 애니메이션과 시너지를 이뤘습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거대로봇물은 1970~80년대에만 수백 편의 작품이 제작되었으며, 2010년대 중반까지 거대로봇 관련 애니메이션만 총 226 작품에 이를 정도로 많았습니다.
1960년대: 메카닉 애니메이션의 시작
철완 아톰이 최초의 로봇 애니메이션이었다면 <철인 28호>는 흑백으로 방영된 최초의 거대로봇물 애니메이션으로써 일본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TMI: 왜 28호인가?
철인 28호는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 육군이 극비리에 개발한 거대로봇 시리즈 중 28번째 모델로써, 연구소가 미군의 폭격으로 소실되어 개발이 중단된 상태에서 종전 이후 등장하게 됩니다. 원래는 악역이었으나, 인기 상승과 함께 주인공의 조종기로 설정이 바뀌면서 완전히 정의의 로봇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여기서도 과거의 반성이 없는 것은 똑같습니다. (feat. 신분세탁) 이야기 속에서는 기존의 철인 시리즈가 27호까지 존재했고, 28호가 등장해 악의 로봇을 파괴합니다.
1970년대: 슈퍼로봇의 황금기와 마징가 Z를 통한 장르의 완성
1972년 드디어 최초의 컬러 로봇 애니메이션 <아스트로강가>가 방영되었습니다.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 이름을 바꿔 방영된 <짱가>의 주제곡이었습니다. 당시 어른들의 사정상 일본문화를 직수입할 수 없었기에 마치 국내산인 것처럼 ‘택갈이’를 하여 방영되었는데, 막상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전원주 할머니가 백텀블링을 하던 ‘국제전화 터치터치 001’의 광고에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았습니다.
아스트로 강가는 아무 무기도 없이 오직 격투로만 적을 제압했는데 이는 그 당시 인기탑이었던 울트라맨을 쏙 빼닮은 구조였습니다. 이름만 다를 뿐 울트라맨 외전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아랍권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전설의 등장 마징가 Z
아스트로 강가의 방영이 시작된 지 두 달 후, 로봇 애니메이션물의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작품, <마징가 Z>가 나왔습니다.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은 여러 측면에서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로봇물의 공식완성: 거대·탑승·변형/합체라는 장르의 규칙을 완성했으며 그 공식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 폭발적인 시청률: 마징가 Z는 첫 화부터 16%라는 높은 시청률로 시작하여, 평균 20%대, 최고 시청률은 30%를 넘나들며 국민적 인기를 누렸습니다.
3. 완구 산업의 혁명: ’'초합금'이라는 브랜드로 출시된 마징가 Z 완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이를 통해 캐릭터 완구 시장을 거대 산업으로 성장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4. 애니메이션 OST 앨범의 시초: 당시로서는 드물게 애니메이션 주제가와 삽입곡을 담은 OST 앨범이 발매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이는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5. 놀라운 스토리: 기존의 애니메이션의 서사는 장르에 구분 없이 영웅이 모진 고초 끝에 악을 물리친다는 공통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가차 없이 깬 작품이 마징가 Z였습니다. 마징가 Z는 최종화에서 새로운 적에게 처참하게 패배하게 되는데, 당시 어린이 대상 애니메이션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팔다리가 잘리고 걸레짝처럼 파괴되는 충격적인 결말을 선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적이 막타를 날리려던 절체절명의 순간, 새로운 로봇인 '그레이트 마징가'가 나타나 괴수들을 순식간에 해치우며 끝나는데, 이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마징가 Z의 패배에 대한 충격과 함께 새로운 영웅에 대한 엄청난 기대감을 심어주며 후속작 '그레이트 마징가'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뒤 이어 나온 마징가 가문의 사촌인인 <우주의 왕자 그렌다이저>와 메카닉의 정수를 보여준 <기동전사 건담>역시 후속작의 공식을 충실히 따랐으며 더 나아가서 애니메이션의 시청자층을 어린이에서 청소년과 성인으로까지 확대시키며 애니메이션의 저변확대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로봇 애니메이션의 연이은 성공으로 자본이 유입되었고 거대로봇물 애니메이션의 규모와 표현기법은 점점 고도화되었습니다. 컬러TV는 로봇의 역동적 액션과 화려한 변형 시퀀스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기술적 기반을 제공했고 국민소득의 성장은 애니메이션 외의 수익을 거두는 것을 가능케 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은 당당히 산업의 한 축을 차지합니다.
1980년대: 변신 합체로봇과 버블경제 시대
1980년대는 일본의 버블경제가 정점으로 달려가던 시기로써 애니메이션에서도 매우 큰 예산을 들인 작품들과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백수왕 골라이온 (미국방영판 제목: 볼트론)은 다섯 마리 사자가 합체하는 대표적인 변신합체로봇입니다. 일본에서는 큰 히트를 치지 못했지만 미국에서 볼트론으로 이름을 바꿔 방영하며 개떡상하게 됩니다.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는 전투기에서 로봇으로 3단 변신하는 발키리 메카 등장하는 작품이며 OST로 더욱 유명합니다. <愛・おぼえていますか>는 마크로스 시리즈를 대표하는 명곡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이후 애니메이션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한층 더 부각하게 됩니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건담에 밀려 지금은 초라한 팬덤이지만 여전히 골수팬들은 존재합니다. 마크로스 팬들 사이에서는 “음악을 듣기 위해 애니를 본다”는 웃픈 말이 있습니다.
기동전사 건담은 리얼로봇 장르의 개척자로서, '건프라'라는 프라모델 문화를 형성한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감독인 ‘토미노’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기억에 남을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반전의 메시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남을 작품을 만든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많은 후속작품들은 ‘우주세기’와 ‘비우주세기’로 구분되는데, 팬들 사이에서는 우주세기만을 정사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비우주세기도 평행우주로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1980년대에는 가정용 비디오와 OVA 확산으로 방송 제약을 벗어난 실험·성인향 작품이 급증하여 <아키라>, <왕립우주군>, <기동경찰 패트레이버>와 같은 엄청난 인력과 예산을 들인 작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용자 시리즈와 버블 붕괴
1990년대 초 버블의 꼭대기에서는 소위 ‘용자’ 물이 많이 나왔습니다. <전설의 용자 다간>은 순찰차에서 로봇으로 변신하며, 자연환경보호를 위해 싸우다는 명목으로 어린이들의 지갑을 털었고 <사자왕 가오가이가>는 특이하게도 TOOL이라는 공구형 무기를 사용하여(정말 공사장비처럼 생겼음) 거대한 우주괴물을 무찌르며 인건비 명목으로 삥을 뜯었고 <용자특급 마이트가인> 또한 빛의 속도로 돈을 털어갔습니다.
그러나 1990년 말 버블경제 붕괴로 애니메이션 산업도 급변하게 됩니다. 경기 침체로 시장은 위축되었고 더 이상 대규모 자본을 들여 작품을 제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리스크 분산을 하기 위한 ‘제작위원회’ 구조가 보편화되고 제작사들의 수익이 급격히 줄어들게 됩니다.
만(萬) 가지 고민을 다룬 작품, 에반게리온
버블경제 붕괴에 대한 성찰적 작품도 나왔는데 이때 나온 것이 바로 <에반게리온>입니다. 이 작품은 경제 침체와 사회적 불안이 만연했던 당대 일본의 분위기를 반영하여 인간 심리의 복잡성, 존재론적 고민, 사회적 소외 등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는 명작입니다.
2000년대 이후: 새로운 장르의 등장
1997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에서 디지털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으로 점차 전환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제작 효율성 향상과 더 세련된 시각효과 구현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제작사 수도 1960년대 9개에서 2000년대 200개 이상으로 급증했고 슈퍼 로봇물 일변도에서 벗어나 장르와 스타일이 다양화되었습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라이트노벨과 인터넷 소설에서 ‘이(異)세계물’이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의 정체현상과 청년들의 현실도피와 관계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초라하지만 새로운 세계에서는 막강한 권능을 행사하는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었기에, 존재의 의문을 품으며 괴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노이타미나의 등장
2005년, 후지 TV에서 심야 시간대에 애니메이션 방영하는 '노이타미나(noitaminA)'가 등장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애니메이션 방송 시간대가 하나 생긴 것을 넘어, 애니메이션의 타겟 시청층과 작품의 스펙트럼을 의식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노이타미나'라는 이름 자체가 'ANIMATION'을 거꾸로 쓴 것으로, 기존 애니메이션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 애니메이션은 주로 아동이나 특정 팬(오타쿠) 층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노이타미나는 이러한 인식을 깨고 "평소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타겟 시청층의 혁신적 확장: F1층 공략
노이타미나는 기존 심야 애니메이션의 주 시청층이었던 남성 팬뿐만 아니라, 20~34세 여성(F1층)을 핵심 타겟으로 설정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그 시작을 알린 작품이 바로 여성향 만화의 대표작인 <허니와 클로버>였습니다. 이 작품의 성공은 여성 시청자들도 심야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소비자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이후 <노다메 칸타빌레>, <치하야후루>, <4월은 너의 거짓말> 등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작품들이 연이어 성공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덕왕의 최애 작품 중 하나입니다.)
작품 소재와 장르의 다양화
노이타미나는 '재미있다면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는 기조 아래, 기존 애니메이션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문학 작품의 애니메이션화는 물론 사회와 SF작품까지 선보이며 수준 낮은 양산형 애니의 범람 속에서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독보적 위치를 다져나갔습니다. 노이타미나의 등장은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예술적, 문학적 표현이 가능한 매체임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입소문을 타고 전세계로 퍼져 일본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믿고 보는 브랜드 확립
노이타미나는 '믿고 보는 시간대’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노이타미나에서 방영하는 작품이라면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와 독창성을 보장한다"는 인식이 시청자들 사이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작품의 흥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재능 있는 제작진과 창작자들이 모여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를 기억하시는지요? 1989년 한국에 방영되어 수많은 어린이들의 가슴은 웅장하게, 어른들의 지갑은 홀쭉하게 만들었던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의 한국판 오프닝입니다. 원작의 이름은 <초신성 플래시맨>인데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살짝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제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다섯 명이 합심해서 발사하는 롤링발칸에 한방 컷으로 나가떨어지는 적들을 보며 아이들의 도파민은 치솟았고 내일의 시험 따위는 ‘지구를 구해야 하는’ 정의감에 비하면 작은 일에 불과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니 다른 건 몰라도 다섯 명이 함께 모여야 쏠 수 있는 조건은 정말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가족 얼굴 보기도 힘든 마당에, 바쁜 도시인들은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 특촬물 등장의 배경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규제가 있었습니다. 패전 후 일본에서는 전쟁 영화와 시대극 제작이 금지되면서, 주로 거대 괴수와 슈퍼히어로 간의 싸움이 단골 소재로 활용되었고, 1960년대에는 TV 시리즈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1966년 시작된 <울트라맨>과 1971년 방영된 <가면라이더>는 '거대화 변신 히어로' 장르를 정립하며 특촬물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특촬물은 애니메이션에 비해서 저예산이지만 광학 합성과 미니어처 세트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제작기법으로 애니메이션을 넘어서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구현했고, 실제 사람이 변신하여 괴수와 싸워 이기는 것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이 작품에 더 쉽게 집중하고 불타오르게 만들었습니다.
TMI: 오토바이로 유명했던 가면라이더지만 정작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 복합 골절을 당함
특촬물에 많이 사용된 광학 합성기술은 오늘날 특수효과 기술에 큰 밑거름이 되었고 디지털 합성 및 CGI기술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특촬물에서는, 여러 장면을 겹쳐 보여주거나 서로 다른 장면들을 따로 촬영해 하나로 합성하는 기술들이 많이 쓰였는데, 대표적으로 <고지라> 시리즈에서 미니어처 도시 세트와 괴수 슈트를 입은 배우를 합성해 거대한 괴수가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합성 기술은 오늘날 프로젝션 매핑과 가상 스튜디오 기술의 발달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촬물의 신'이 빚어낸 영웅, 울트라맨의 탄생
일본을 넘어 전 세계 대중문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거대 히어로 <울트라맨>의 탄생 뒤에는 '특촬물(특수촬영물)의 신'이라 불리는 ‘츠부라야 에이지(円谷 英二)’의 열정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히어로의 탄생
츠부라야 프로덕션이 제작한 ‘울트라맨의 전신’인 <울트라 Q>는 1966년 1월부터 매주 방영된, 새로운 괴수나 기이한 현상이 등장하는 SF 미스터리 드라마였습니다. '고지라'의 특촬 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츠부라야 에이지의 노하우가 집약된 이 작품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일본 전역에 '괴수 붐'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울트라 Q에는 괴수에 맞서 싸우는 명확한 히어로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아이들의 지갑을 지속적으로 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츠부라야 프로덕션은 괴수 붐을 이어갈 후속작을 기획하면서, 아이들이 열광할 만한 괴수와 싸워 이기는 정의의 주인공을 등장시키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울트라맨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울트라맨'이 아닌 '베무라' 또는 '레드맨' 등의 이름이 거론되었지만 최종적으로 '울트라(Ultra)'라는 단어가 주는 강력하고 초월적인 느낌을 살려 '울트라맨'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촬영 당시의 비화
최초의 울트라맨 슈트는 잠수복 소재로 만들어져 내구성이 약하고, 격렬한 액션 장면 촬영 후에는 심하게 손상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촬영 기간 동안 슈트를 여러 번 교체해야 했는데, 이때마다 얼굴의 주름이나 체형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팬들은 이를 초기형부터 A, B, C 타입으로 구분하며, 디자인의 미묘한 변화를 찾아내는 집요함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A타입은 입부분이 부드러운 라텍스 재질로써 주름이 많아 '주름맨'이라는 별명도 있었습니다.
3분의 미학, 컬러 타이머
울트라맨이 지구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단 3분이라는 설정은 원래 예산 문제 때문에 탄생했습니다. 특촬 장면 제작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었기 때문에, 전투 장면을 짧게 제한할 명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가슴의 '컬러 타이머'가 깜빡이며 활동 시간의 한계를 알리는 이 설정은 오히려 극적인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최고의 장치가 되었습니다.
경제 침체가 만든 새로운 서사와 제작 시스템
1990년대부터 시작된 버블 붕괴에 이은 장기 불황과 비정규·신자유주의적 압력은 심리적 불안·청년 정체성·탈산업 사회를 다루는 서사와 심야 실험작의 토양을 형성했습니다. 또한 비용 통제를 위한 리미티드 운용, 디지털 전환, 외주 네트워크 확장으로 작화 품질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고퀄리티 극장·간판작과 분업·저예산 TVA의 대비가 뚜렷해졌습니다.
제작위원회 시스템의 등장
앞서 잠깐 설명드렸듯이,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제작위원회 시스템>이 등장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제작위원회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은, 극장판 애니로는 19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1988년 <AKIRA>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행 제작위원회 개념이 TV 애니메이션에 정착한 시점은 1993년 방영된 <무책임함장 테일러(無責任艦長タイラー)>가 최초입니다.
제작위원회의 도입 이후 여러 스폰서들의 분산투자로 리스크는 낮아졌지만 스튜디오의 몫은 줄고 납품기한마저 줄어들면서, ‘작붕’(작화붕괴)이 흔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교토 애니메이션'은 정규직 고용과 체계적 교육으로, '유포터블'은 내부 파이프라인으로 각각 "작붕없는 스튜디오"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었습니다.
고노 방구미와 데쿄데 오쿠리시마스
"고노 방구미와 고란노 스폰사노 데쿄데 오쿠리스마스”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우게 돼 버리는 마법의 주문입니다.
“この番組はご覧の スポンサー の提供でお送りします”가 정확한 일본어 표기인데,
"이 프로그램은 여러분이 보시는 스폰서의 제공으로 방송됩니다"라는 뜻입니다.
이 또한 제작위원회 시스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일본 애니는 여러 기업이 투자해서 만들기 때문에 방송 시작 전에 반드시 스폰서들을 소개해야 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다른 미디어나 완구 등을 판매해야 하는 어른들의 사정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어둠의 경로 시절에는 편집 없이 전체를 다 봐야 했기에 한국 시청자들도 강제로 친숙(?)해졌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다정하게 들리는 이 말은, 실은 자본주의의 결정체이며 제작위원회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영원히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쯤 돼서 눈치채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
네 맞습니다.
분량조절에 실패했습니다.
이번 시간엔 겨우 6장만 다뤘고 다른 챕터는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주말과 월요일에 걸쳐 어떻게든 2회차에 끝내보려고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찾아야 하는 자료의 분량이, 그야말로 개미지옥이었습니다.
특히 사진자료를 하나 찾을 때마다 시간과 정신의 방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다음 주에도 또 올리게 되었습니다.
2회로 다 쓰기엔 게시판도, 제 몸도, 여러분의 인내심도 견디지 못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또 대충 짧게 쓰기에는 글을 통해 공부하고자 하는 저의 뜻에 반하는 일이라
그 또한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덕왕의 최애 분야 중 하나인만큼 너른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리며
다음 시간에는 꼭! 끝내겠습니다.
다음 주 마지막 시간에는 시대를 빛낸 유명한 작품들과 거장들 그리고 산업과 기업들에 대해 살펴보고
그 외에도 뇌가 이끄는 대로 대서사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도 함께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