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작의 마지막 이야기
책임감 있는 선택이라는 것은 오늘과 내일, 두 가지의 시간적 기준 모두를 고려하는 것이다.
오늘과 내일에는 현실과 이상의 간극만큼, 딱 그만큼의 공간이 존재하는데 이 대립에서의 승자는 대부분 현실이다. 어려서부터 나의 것을 취하는 데 있어 타인(대게는 주양육자 혹은 교육지도자)의 의견과 허락은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이런 환경에서의 성장으로 '니의 이상'을 택함은 거쳐야 하는 큰 산이 존재하는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상을 선택하게 되면 경우에 따라서 주변인과 부담스러운 과정을 겪고 애매한 관계로 남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주 적당히 그럭저럭 살아갈만한 현실이라는 옵션을 택하게 된다. 그런데 주위의 많은 이들이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유의지를 택하는 존재로 기억되기엔 다소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그 집 아이는'이라고 시작되는 3인칭 화자의 소음 같은 이야기가 건너 건너 흘러들어와 내 귀에 따갑게 박히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두려움, 그것이 나를 멈춰 세운다. 이렇게 가도 살 수 있는지, 이렇게 도망치려 해도 괜찮은 건지 눈물이 날 정도로 두렵고 떨리는 순간은 낯설지 않게 들락거리고 혼자가 되는 시간이면 나의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수년의 내공으로 잠시의 암울한 상상 정도는 어렵지 않게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어느덧 현실과 이상의 중간 언저리 정도에 와있다. 대다수가 받아들이고 존재의 필요를 인정하는 공간에서 나는 가끔 모난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조금씩 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믿기 시작했다. 자신의 소중함을 생각할 겨를 없이 오늘이 흘러감에 서럽다. 무엇하나 시도하지 못하고 꿈틀거리기만 했던 귀한 생각들에 갇혀 내적인 투쟁만 거듭해 온 자신이 가여웠다. 행동의 변화에 깃드는 약간의 설렘이 숨어있던 나를 위로해주지만 이제는 그만 그 구석자리의 실내포차에서 일어날 때가 되었다. 여전히 엉덩이는 무겁고 내 주위에 같은 종류의 술을 마시고 안주를 즐기는 이들의 즐거움이 부럽다. '정말 그대들은, 진정으로 행복한가'
두렵다.
나는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이 두렵고, 동시에 두려움이 짙게 깔리는 일을 해야 함이 두렵다.
그 어중간한 감정의 시소는 무던한 오늘을 택하고 이내 기울어 바닥을 쳤다. 현실의 승리다. 이제껏 모든 경쟁에서 현실의 압승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기에 대한 맹세에 진지함과 진실성이 담겨있던 팔팔했던 이십 대의 어느 순간보다 더 진지한 고민이었고 그래서 비장한 각오로 선택을 했지만 난 또다시 협상 테이블로 향한다. 나의 바람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는데, 크게 대단한 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는데, 그게 그리도 어려운 것이었을까. 이렇게 시간이 지나 나의 상처와 마음에 무뎌지는 때가 오면 고민 대신 체념의 순간이 올 것임을 안다. 살아가는 동안 끝나지 않을 그 감정이 파고드는 내 인생은 그 순간을 있는 힘껏 거부해야만 한다. 살아내는 것이 아닌 살아가야만 한다. 몇 차례의 단념, 포기, 시도, 수용을 거쳐 다시 이 자리에 서 있다. 계절의 변화에 감사하고 일찌감치 주어졌으나 감지하지 못했던 나름의 풍요를 알아차려야 한다. 저 깊은 곳에 묻어둔 나만의 이야기들을 하나둘 꺼내보아야 한다.
길이 있지 않았던가. 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라도 혼자서 뚜벅뚜벅 걷고 싶던 그런 길이 있지 않았던가.
흑빛의 어둠에도 새벽녘의 어스름을 기대하며 언덕을 오르던, 그런 순간이 나에게는 있지 않았던가.
고요의 순간에도 사위를 채우던 나의 울부짖음이 어딘가에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그 메아리에 용기를 실어 희미하게 그려지는 나의 앞날이, 내일이, 그런 미래라는 것이 꿈에서만 그리던 모호함이 아닌 손에 잡히는 온기를 한껏 머금고 있다는 사실을 새로이 깨닫게 된다. 정리되지 않고 수년간 맴돌았던 '분명한 사실'을 인정함으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되어, 이제 나는 웃을 수 있다. 괜찮은 것이었다 처음부터.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미세하지만 조금 더 넓어지는 나의 어깨가 유독 든든하니 자랑스러워지는 밤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붉게 퍼져있는 노을 뒤로 서서히 사라지는 해와 만물의 침묵을 여는 달이 엇갈리며 새로운 세상을 연다. 거침없고 예외 없는 자연의 섭리에 터져 나오는 작은 탄식은 열렬히 살아가고 있는 나를 위한 진중한 응원이다. 또 다른 게임의 시작을 알려오는 것이다. 오직 나만의 무대에서.
속을 끓이며 억눌러왔던 그 말도 이제야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원래의 묵직했던 그 소리로 말이다.
'나는 정말로,
나를 태우며 일하기 싫은 사람이라고.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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