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것이 아니었을 은행원의 삶
2016년 5월, 잔인하게도 싱그럽던 봄날 은행원의 삶을 멈춰보자고 결정했다. 누군가에게라도 응원받고 싶었고 설령 그 대상이 일면식 없는 타인이더라도 매일같이 그런 고객을 만나왔던 터라 난 더 빠르게 이 길을 먼저 떠나 자신만의 보폭으로 걷고 있을 누군가를 찾아 헤맸다.
훗날 어떻게든 그때의 두려움들을 복기하고 내가 선택한 과정들이 어떤 내적 절차들을 거쳐왔는지 기록하여 내가 선택한 길을 고민하고 있을 이름 모를 누군가들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한 사람이 향했던 인생의 항로에, 준비되지 않았던 은행의 퇴사가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면에선 용기 있는 선택으로 비칠 수 있고 운 좋게도 나의 기준으론 빠르게 삶의 여유를 찾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퇴사한 은행원의 기록으로 가치가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직업적인 인생과 스스로의 삶에 대한 비중 있는 결정을 타인의 경험으로 한다는 것이 과연 유익한가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꽤나 괜찮은 레퍼런스 정도가 좋을 텐데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과연 그이는 이것이 옳은 선택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일까 하는 걱정도 생겼다. 기록의 공개에는 책임이 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어떠한 선택이든 결정의 주체는 개인이고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도 자유의지를 보유한 개인일 텐데 이런 것까지 걱정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당시 꽤 오랜 시간 고민했고 정리했고 또 많은 것들을 따져봤다는 생각이 컸음에도 여전히 불안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 누군가는 가급적 은행원의 삶을 포기했을 선험자였다. 만약 당시, 내가 찾던 알맞은 사례가 있었다면 나는 나의 퇴사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찾을 수 없었던 레퍼런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만약 손쉽게 누군가의 경험담을 손에 넣었다면 나는 스스로 부서지고 고통받고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그 반복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아주 가볍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기에.
그렇다고 오랜 시간 고민하고 준비한 나만의 기록물에 대한 프로젝트를 멈추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 기록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아주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은행원의 삶을 내던지고 지금까지의 여정이 쉽거나 짧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서른 중반 처음으로 계약직을 경험하기도 했고, 70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 주저앉기도 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고, 지난 시간 내가 누려온 호사가 나의 시간을 반납한 것에 대한 당연한 대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내 시간이란 자원을 써야 한다면 가급적 부가가치가 높은 것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의미 있는 경험도 했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유 또한 경험할 수 있었다. 상장 전의 기업에 입사하여 미국시장에서의 IPO를 경험했고 혜택을 받았다. 고단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매일, 거의 매일 동일한 형태의 직업적 삶이 반복되었던 은행원 시절에 비해 내 삶은 예상치 못한 굴곡과 뜻밖의 행운 모두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드문드문 기록해 두었던 과거를 들춰보며, 서른 다섯 시절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었을 당시의 결정에 감사한다. 아내를 제외한 모든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의 만류에도 나의 직감과 판단과 결정을 존중한 내 자신에게 정말 고맙다고 생각한다.
또다시 난 스스로 만들어가는 오십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은 그래도 많이 남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다가도, 갈수록 흐르는 시간의 체감은 ‘순간’이 될 것임을 알고 있기에 나는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하고 출근 전 적어도 2시간에서 3시간 남짓 오로지 나를 위해 새벽이라는 호사를 누린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첫 루틴은 글쓰기로 시작하고, 명상을 하고, 책을 읽으며 캡슐커피 한잔을 즐긴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다.
최근 팀원들로부터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에 대한 뻔한 주제로 질문을 받기도 한다.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해 한참 고민할 삼십 대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이들이고 순간 내 은행원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누리는 이런 행복의 시작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은행을 퇴사하고 다음에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난 정해두지 않았다. 8년간 모아둔 급여와 퇴직금으로 2년 정도는 아무 일 안 하고 버텨볼 수 있겠다 싶었고 그 고민의 시간을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겁이 없었다. 퇴사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갖고 있던 나로서 후에 나아갈 길들을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금도 아이러니하지만 그 쉼의 시간 동안 난 한 뼘 더 자랐다. 평일 오전에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이와 산책을 나가자는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던(당시만 해도 멀쩡하게 젊은 놈이 이 시간에 뭐 하고 돌아다니나 하는 시선도 내겐 걱정이었다. 그러다가 동네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난 나의 상황을 또 설명해야 했고 난 이를 피하고 싶었다.) 시절도 있었지만 내 삶에도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최소한의 노력을 하되 이번 생의 순리가 이끄는 곳으로 나의 직관을 믿어보자 다짐했다. 이 결과가 2024년 4월 23일 화요일 새벽 5시 54분의 나의 모습이다.
누군가에게, 그들의 어떤 상황에서 나의 기록이 의미를 더해갈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들과 매우 흡사한 이유로, 때로는 같은 고민과 아픔으로, 스스로의 결정을 믿고 걸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행적을 글로 남기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나는 머리와 생각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며 적어 내려 가는 글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지금껏 나름의 기준으로 삶을 아껴온 나 자신에게 선사하는 짧은 이야기가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된다. 그래서 계속해서 나의 삶을 탐험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은행원임을 포기하려는 누군가가 있다면,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에 대한 고민 이전에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부터 알아가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그리고 가급적 그런 중대한 선택에서 피어오르는 직관을, 내면의 소리를 경청했으면 좋겠다.
그 누구의 삶도 아닌, 온전한 나만의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