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퇴사한 이후론 더더욱 연고 없는 산본을 갈 일이 없었다.
몇 해가 지나, 당시 지점의 거래처였고 이제는 종종 연락하고 소주도 한잔 하는 지인을 만나러 두어 번 간 적이 있다. 동네에 대한 유감은 없으나, 당시의 기억은 특정 지역에 대한 감정마저도 훼손시키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어이없던 일이 떠오른다.
그 전화를 받았던 것은 집 건너편 동네 병원이 있던 건물 앞이었다.
그 사람의 번호를 여즉 저장해두고 있었던 것도 잊고 살았는데, 너무나도 뜬금없는 시점에, 예상치 못했던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더랬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안부를 묻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08년, 사령장을 받고 처음으로 간 지점에서 좋은 분을 만났다.
그는 막 차장이 되신 분이었고, 인간적이었으며 외환명장으로 행내에서 업무능력도 인정받고 있었다. 이 분과는 너무 많은 추억이 있었는데, 업무적으로만 떠올려본다면 늘 답이 아닌 '방향'을 알려주셨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내 몫이었고 덕분에 나 또한 빠르게 성장했다. 작은 점포였지만 다양한 업무경험을 할 수 있었고 늘 동기들로부터 업무를 물어보는 메신저가 끊이질 않았다.
2012년 1월 6일,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지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집도 가까운 곳에 계셨던 팀장님 또한 너무 좋은 분이셨다. 여러모로 당시 팀장님과는 합이 잘 맞을 수밖에 없는 요인들이 있었다. 야근이 일상화되어 있던 당시엔, 야근마저 즐거웠다. 그 지점에 계셨던 직원분들과 정말 재밌게 일했다. 내 은행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부분만을 딱 집어서 도려낸다면 이때가 될 것이다. 일도 잘하는데 사람도 좋은 경우가 드물다 하는데 운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대형 점포라 세 분의 팀장(부지점장)님이 계셨는데 모두 다 양반이셨다. 치열하게 일하고, 원 없이 놀았다. 당구도 이때 처음 배웠고, 당구장에서 먹는 짜장면의 맛도 이때 처음 알았다.
돌이켜보면, 이때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 나는 팀장님들을 존경했고, 팀장님들은 나의 의견과 상황과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 주셨다. 그래서 더 잘하려 애썼던 시간이었고, 업무성과도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다. 후에 이때의 고과 및 기타 평가를 기반으로 최우수행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직장상사에 대한 복이 넘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분들만 만나지 싶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와 전화를 끊고서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은행을 퇴사해야겠다는 생각은, 퇴사시점으로부터 3년 전쯤부터였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감사한 것은 지점 내에서 업무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시간 동안 유지가 되는 것이고, 그 이후 나의 개인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바는 거의 없다. 당시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구상해 봤다.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복지 좋고 급여 좋은 은행원으로 살아가면서 또 다른 세상을 꿈꾼다는 것이 일견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괴롭히는 직장상사가 있다는 것은 '퇴사욕구'에 기름을 붓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 10개월을 버틴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문득 이때가 생각날 때, 만약 그때 끝까지 버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난 그와 관련된 여러 이슈들을 공론화하지 않고 나는 조용한 퇴사를 선택했다.
이 결정을 놓고도 많은 갈등이 있었다. 때론 모든 사실들을 밝히지 않는 것이 모두의 평화를 위해 옳은 선택이라는 합리화를 했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인 그에게 업무상 타격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의 오지랖도 부려봤다. 지금 상황에서 그보다 좀 더 나은 복수를 하기 위한 선택은, 그저 오늘을 흘려보내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해와 용서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특별한 감정이 일지 않는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다. 그리고 덕분에 난 이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팀장유형에 대한 레퍼런스를 얻게 되었다.
2015년 그해는 유독 길었고, 2016년 초 장고 끝에 은행을 퇴사했다.
은행을 나온 지난 10여 년의 시간은 다이내믹의 연속이었다. 단조로움과는 거리가 먼 십 년의 세월은 좀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진 시간들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김과 동시에 좋은 운 또한 따라주었다.
가끔 이런 항로변경에 기여해 준 그를 생각한다. 그때의 산본은 상실감이었고 은행은 피하고 싶은 장소였다. 상처는 아물지만 기억이 남아 괴롭기도 했다. 그래도 온전히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해야겠다고 큰 마음을 먹었던 시점이기도 했으니 읽은 것과 얻은 것이 분명했다.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비슷한 괴롭힘을 당한 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눈에 씌워진 프레임으로 상황을 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며 정의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그를 닫힌 시간의 서랍 안에 넣어두려 한다. 내게는 그 어떤 의미를 주는 대상이 아니므로.
2015년, 산본에서 종종 들르던 설렁탕 집을 이제는 한번 가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