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여전히 한낮의 태양은 뜨겁지만 어느덧 새벽의 공기는 찬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다. 가을이다.
지하철역 두 개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며 건강하게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올봄 이장한 조부, 조모의 납골당에도 가야 하고, 곧 있을 6일간의 추석연휴 계획도 세워야 하고, 10월 싱가포르로 떠나는 가족여행도 준비해야 하고, 무엇보다 아직 이삿짐 정리도 마무리하지 못했기에 여기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인데, 이제 벌써 가을이다. 이유 없이 걷고 싶은 이런 계절에 앞만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에 서운함이 밀려들지만 동작대교를 건너는 지하철 창으로 쏟아지는 아침 볕이 그 마음 또한 감싸 안는다.
저 높은 곳에서 추락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에도, 다시 올려다보고 싶은 희망이 스며드는 이 시절은 비단 가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상처는 아물며, 계절은 바뀌고, 나의 삶은 계속된다는, 어쩌면 꽤 오래 잊고 지낸 이런 당연함들을 살펴볼 여유가 1년의 3분의 2를 훌쩍 보내버린 이제야 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부디 말도 안 되게 짧게 스쳐 지나갈 우리의 시절 가을이, 넘치도록 가득하게 우리들 마음에 퍼져나가 더불어 풍요롭고 따사로운 시간으로 기억되도록 잠시나마 더 우리 곁에 머물러주길 저 하늘에 염원해 본다.
오늘도 이렇게,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