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졸업식 학부모 편지 - 최종 발표 버전
얼마 전 이모에게 선물 받은 가방을 메고 기뻐하던 너의 모습을 보며 졸업이 멀지 않았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벌써 오늘이 그날이구나.
안녕 얘들아, 아는 얼굴도 많은데 난 진혁이 아빠야.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듯이, 학생이 소정의 교과과정 그러니까 모든 수업들을 마치는 것을 졸업이라고 하는데, 이런 뜻 말고 '어떤 부문의 일에 통달하여 익숙해지는 것' 또한 졸업이라고 부른단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너희들은 지금 과연 어떤 것들에 익숙해진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지 참 많이 궁금해지는구나.
오며 가며 오늘 많은 분들께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을 텐데 사실 오늘은 너희들의 날이라기보다 이 자리에 계신 할아버님 할머님, 부모님 그리고 5년간 너희들의 영웅이었던 선생님들을 위한 날임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부모가 된 이후에, 살면서 '애들은 알아서 큰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아빠인 내가 경험한 세상은 결코 그렇지 않았어.
할아버지, 할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선생님들의 사랑 가득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조리사 선생님의 건강하고 따뜻한 밥이 없었다면, 외줄 타기 와도 같은 일과 육아를 엄마 아빠가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면, 결코 너희들은 오늘 이 자리에 있기 어려웠을 거야.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서 헤어지기 전에는 친구들 뿐만 아니라, 너희들의 가족 모두와 선생님들께 꼭 '축하합니다'는 인사를 따뜻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너희들은 그렇게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어. 결코 너희들은 알아서 크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구나.
며칠간 이 편지를 쓰기 위해 참 많이 고민했어. 그런데 어떻게 쓴다고 해도 이곳에 계신 너희들 부모님 모두의 마음을 대신할 수 없고 그 내용 또한 너희들 모두가 이해할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하기에 오늘을 기억하고자 하는 한 사람의 부모의 입장에서 복잡한 생각과 울렁이는 감정을 가다듬고 간단하게나마 써내려 가보려 해.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의 진통 끝에 너희들을 낳았던 그날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부모인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빨랐단다. 1시간마다 깨서 배고프다고 울어대던 그 소리에 뒤척이며 낑낑대던 엄마와 아빠는 지난 모든 시간이 우리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인내심을 시험하는 시간이었단다. 너희들의 엄마는 그런 숱한 날, 육아라는 전투를 치렀고, 시간이 흐름에 셀 수 없이 흰머리가 늘었으며 오래전 아빠들이 빠져들었던 아름다운 여자에서 강인한 엄마가 되어 있었어. 물론 그런 네 엄마들의 모습 또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아빠들은 한없이 사랑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너희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의미는, 엄마와 아빠들이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은 그런 시간들 속에서, 오늘처럼 새로운 만남과 더불어 아쉬운 이별 또한 많이 경험할 것 같구나. 만남의 기쁨과 더불어 조금씩 이별의 아픔 또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삶의 순리를 온전히 감당하게 될 준비를 하고 있는 너희들을 엄마 아빠들은 지금처럼 응원할 거야.
너희들의 성장의 대견함이,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을 감당하는 엄마 아빠들에겐 한편으론, 부모의 슬픔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 요즘, '아, 나도 진짜 부모가 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너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부탁이 있어. 이 의미를 알게 될 때 즈음 엄마와 아빠는, 아마 이 자리에 함께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너희는 또 다른 우리 가족의 부모가 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지금까지, 또 초등학교에 가서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될 텐데 너무 많은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늘 이 자리에 건강하게 앉아있는 너희들로도 이미 엄마 아빠는 충분히 효도받고 있거든. 그저 함께하는 시간, 감사와 이해와 사랑의 따뜻한 언어로 우리가 한 가족임을 매일 느끼며 살아간다면 엄마 아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 애써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대신 매일매일 우리 옆에서, 한없이 밝은 지금의 모습으로 오래오래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태어났던 7년 전, 엄마 아빠들의 기억에 담겨있는 잡으면 부서질 것만 같았던 아주 작은 두 손이 가끔 떠올라. 지금은 제법 어린이의 손이 되어버린 너희들의 모습에 먹먹해졌던 마음을 접어두고,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고맙다. 사실 45년을 살아가고 있는 아빠도 너를 통해 배우고 세상을 보게 돼. 아마 모든 부모님들이 그러할 거야. 그저 너희들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가 부모인 우리에게 전부니까. 오래 너희들의 모습을 담을 수 있도록 지금처럼 건강하게, 대신 엄마 아빠를 생각해서 조금만 천천히, 아주 조금만 천천히 자라주었으면 좋겠구나.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열네 명의 너희들의 앞으로의 삶에 끝없는 평온과 사랑과 감사함이 함께하길 변함없이 기도하고 응원할게.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한다.
2024년 2월 21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부모님들을 대신하여, 진혁이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