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퇴사 그리고 이직제안

by Davca
이사님은 글 쓰려고 퇴사하신 건가요?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났다. 이제는 그저 아끼는 동생들이 되어버린 이들.

얼굴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고, 덩달아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음이 미안했다. 누가 봐도 너무 힘든 티가 얼굴에 역력했던 그들과 단출하게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공교롭게도, 의도한 바는 아니나, 어제의 술자리는 내가 그 회사에 첫 입사를 했을 때 임원들이 함께 환영회를 했던 고깃집이었다.




퇴사 후 지난 두 달은 매우 빠르게 지나갔다.


방학을 보내는 두 아이와 시간도 보내고 학원을 데려다준다. 근처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기존에 관리되지 않고 있던 블로그도 손봤다. 가볍게 할 수 있는 포토샵으로 스킨을 만든다거나 하는 그런 아주 기초적인 작업이다. 브런치나 블로그나 콘텐츠가 좋아야 사람들이 '계속해서' 보게 된다는 확신이 있어 글에만 집중했었는데, 외형적인 작업들을 해보니 오히려 머리가 좀 가벼워졌다. 글의 퀄리티를 생각하다 막히는 순간이 오면, 한참 동안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 현재 중복 연재 중인 '아내 시리즈'도 한동안 좋은 소재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뭘 써야 하나, 란 고민만 하고 있다. 퇴사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쨍한 울림이 찾아오면 어렵지 않게 글을 써내려 갈 것이다.


이전 직장의 동료들은, 그래서 나보고 꼭 글쓰기 위해 퇴사한 사람 같다고 했다. 사실 글쓰기는 회사에 있을 때에 더 도움이 된다. 많은 소재들이 하루에도 수백 번씩 생산된다. 내 얘기 남 얘기 가릴 것 없이 영감창고에 쌓인다. 다만 그것을 꺼내오기에 조심스러우니 때를 살피고 각색을 하여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다. 어제의 4시간 정도에도 정말? 진짜?라는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의 스토리들이 많았다. 아마 퇴사를 하지 않고 있었다면 지금보다 스펙터클한 글들은 종종 썼을 수도 있다. 다만 퇴사한 지금의 상황과 견주어보면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시간이다.

소재가 많아도 쓸 시간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30분을 달리고 들어온 뒤에 샤워를 하고 독서를 하면 출근시간이다. 한동안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많은 글을 썼다. 2024년 내가 쓴 브런치의 글들 가운데 출퇴근길에 쓴 글이 많았다. 나름 시간 활용을 했던 것인데, 집중하면서 쓰는 것은 어려웠다. 하여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집에 와서 약간의 수정을 거친 후 글을 올렸다. 주저리 주저리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아도 1시간 남짓의 출근시간 동안 완벽한 마무리를 하기엔 나에게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래 맞다. 글쓰기 위해 퇴사한 것도 그리 과장된 얘기는 아니다. 잠을 자는 8시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나의 시간은 글쓰기다. 최근엔 블로그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에세이 형식의 글을 맘 편히 올리는 브런치와는 다르게 블로그는 수익을 지향하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 그 프레임에 맞는 글을 쓰는 것이 나로서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잘 쓸 수 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의 경계가 분명함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생활을 하는 와중에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같이 일해보자는 몇몇 기업에서 러브콜을 보내왔다.

대게는 헤드헌터를 통해서인데, 간혹 회사의 CEO가 직접 연락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간의 경험과 성과를 좋게 해석하여 주신 곳이 있다는 것은, 직업적으로 지난 시간들을 인정받은 것과 다름 아니겠는가. 몇몇 곳은 행복한 고민을 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얻게 되는 깨달음도 있다.


Haraka Haraka, Haina Baraka. 서두르는 것에는 축복이 없다.
Festina Lente. 천천히 서두르라.


chill guy @rarenergy



이직, 투자수익, 성과에 대한 기대. 모두 마찬가지다.

내 욕심에 급한 마음을 외부로 표출할수록 좋은 기회들을 잃는다. 지난 나의 커리어에서도 경험했던 바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어렵다. 기다림에는 욕심이 투영되고 이 욕심이 욕망으로 변질되면 편집증적 증세를 보이게 되고 집착이라는 행위의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난 이번의 갭이어가 아닌 갭먼스는 평온함이라는 무드 콘셉트를 유지 중이다. 일은 흘러가야 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고, 나는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될 것이다. 이는 그저 손 놓고 하늘만 쳐다보며 기도하는 운명론적 기다림과는 다르다. 나는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돌보고, 책을 통해 부족한 앎을 채우며, 글쓰기를 통해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것을 매일 반복한다.


얼마 전, '쓰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글을 썼다. 나의 쓰는 행위는 순수한 의도로 채워진 해방이다. 이 공간에서는 그 어떤 계산과 방해가 있을 수 없다. 오직 나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손이 움직일 뿐이다. 한참을 내달려보면 한 편의 짤막한 글이 되어 있다. 그것을 다시 읽고 보는 것 만으로 흡족함이 넘친다. 나에게 쓰는 것은 그런 해방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다.

글쓰기를 하기 위해 퇴사했다고 하더라도 매력적인 이직 제안을 물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끝까지 급여소득자로 남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 또한 적절한 때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전까지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막연한 기다림이 아닌, 일은 결국 내가 의도한 대로 될 것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것이 내 성취의 근간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