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0년 전 이맘때, 은행을 나가야지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을 무렵 친한 선배들과의 회식에서 그런 얘기들을 했었다.
은행 밖은 전쟁터고 지금이 온실이니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승진이 뭐가 중요하냐. 끝까지 오래가는 게 중요하다
지금이야 이런 어쭙잖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알게 모르게 제 살 궁리들을 하고 있는 요즘 젊은 팀원들이 그냥 시키는 대로 일만 하며 살아온 사십 중 후반의 80년생이 충고랍시고 한두 마디 건넬 수 있는 여건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ChatGPT가 현명한 충고들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가본 적도 없는 누군가가 선배랍시고 밖은 어떻다느니 떠들어대는 것보단, 데이터를 기반으로 팩트만 전달해 줄 테니 말이다.
ChatGPT가 있건없건, 누군가의 조언을 구하건 말건, 선택의 주체는 나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참고 견디자 생각했으면 그런 결정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을 누군가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10년은 빠르게 흐르고 있고, 앞으론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에 띄워진 나의 하루, 나의 인생이 누군가의 선택과 충고로 이리저리 춤추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난 퇴사를 선택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래서 매 순간 좋았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지는 않았음을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다. 고생 많이 했다는 한마디 말로 대신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으나 돌이켜보건대 나에겐 고통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었고 고통과 좌절이 주기 없이 찾아들었으며 그 사이 간간하게 찾아오던 기쁨들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 분명한 것은 나의 선택에 의한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만족감이었다. 또 그것이 행복이었느냐 묻는다면, 사전적 의미의 온전한 행복이었다고 포장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는 현실을 살았고 마음은 이상에 닿아있었으며 그 간극을 좁히며 메워가기 위한 노력 모두가 나의 삶이었다. 그러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말한다. 다만 지금을 기반으로, 이 시간 이후에 대한 기대감은 언제나 충만하다. 지난 시간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어려움들이 나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주저앉고 싶을 때가 내 일상을 짓누를 것이다. 지난 10년의 경험으로 단련된 맷집은 이럴 때 쓸모가 있다. 그때 선배들이 얘기한 '온실이라는 은행'에 머물렀다면 단련하기 어려웠을 마음의 굳은살이다. 훈장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이 또한 내가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낸 작은 힘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궁금해진다.
만약 10년 전 ChatGPT가 있었다면, 은행을 퇴사하려던 나를 말렸을까? 그리고 그 답변에 난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부모님의 만류에 1도 반응하지 않고 결정을 밀고 나간 내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래서 나의 상황을 정리해서 질문했고, 꽤나 긴 답변을 주었다. 결론만 살펴보자면:
여전히 내겐 선배들의 진정성 없는 조언이나, ChatGPT의 원론적인 답변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답변의 옳고 그름이 아닌 받아들이는 주체인 나의 태도와 생각이 문제이니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을 결론이니 지난 시간들에 대한 생각들은 접어두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 생각하는 것만큼 퇴사는 대단한 것이 아니고, 이직은 생각보다 가볍게 다뤄져선 안되며, 그보다 나의 직업적 삶은 훨씬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의 선택이 옳은 것이 될 수 있도록 나의 오늘을 아끼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