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는 법

by Davca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살아가며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수도 없이 듣고 또 내뱉기도 한다. 그중 유독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그 말,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냐는 그 말.



우리 모두는 태어남과 동시에, 아니 어쩌면 점만 한 존재임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뭐라도 된’ 존재였다. 태어났다고 성장했다고 나이가 찼다가 그보다 특별한 무언가가 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반격을 받았다. 그것도 꼭 내가 하고 싶은 뭔가를 조심스럽게 말할 때마다 마치 나는 애초에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좋은 방법이 있었다. 굳이 알려야 할 이유도 없으니, 난 조용히 나의 길을 가면 되기만 할 뿐이었다. 가식적인 응원은 아니더라도 힘내라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할 법한데, 주위에 그런 이들이 많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내 깊은 곳에서의 울림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보여주는 것 또한 내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깝다면 가까운 대로, 애매하다면 모호한 관계 때문에 적절한 거리를 두고 적당히 숨겨두는 편이 옳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이 전적으로 그른 말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존재의 긍정과 부정을 떠나 여기엔 시간의 개념 또한 녹아져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소망은 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압도적인 속도로 빠르게 오르고 또 오르는 것이었다. 크로노스적 시간이 요구되는 일에도 나의 인내심은 진득하지 못했다. 그랬으니 이런 것들을 가뿐하게 뛰어넘어 원하는 것을 이뤄낼 수 있는 존재라도 되느냐는 냉소가 일면 타당해 보이기도 했다. 고생은 적게 하거나 아예 안 했으면 싶고, 그런데 바라는 건 빠르게 이뤄내고 싶은 그 마음은 정말 고약한 심보였던 것일까. 진심으로 바라고 원하면 우주의 진동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이뤄진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기대하는 것까지 한계를 둘 필요는 없지 않을까. 쓰는 족족 참신하고 창의적이기까지 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데 1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7년째 하며 글을 쓰는 작금의 상황은 이미 그런 바람이란 이뤄지지 않은 과거가 되었다.




9시까지 출근해서 저녁 7~8시까지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9시가 다 되어간다. 샤워하고 나와 보리차를 한잔 마시고 책상에 앉으면 눈이 감긴다. 일기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잠든 날이 많았다. 나름의 해결책을 찾은 것이 출퇴근 시간의 활용이었고 이 시간에 많은 글들을 쓸 수 있었으나, 완벽하게 집중하기 어려웠던 탓에 글의 중심이 흔들린다거나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계획한 대로 진도가 나가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쓰고 읽었다. 왕복 2시간의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내게 적지 않은 크로노스적 시간이자 내가 가진 연료들을 다양하게 태워낼 수 있는 공간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가급적 붐비는 시간을 피해 오고 갔다. 끼여서 가야만 하는 상황에선 읽기도, 쓰기도 어려웠기에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대에 맞춰 매일 똑같은 지하철을 타고 내렸다. 절실함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안되면 말고의 생각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글을 읽고 쓰고, 글로 말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시간이 가면서 ‘내게도 때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한창 잘 써 내려가던 글들이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을 무렵이었다. 뭘 써야 할지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갑자기 그런 순간이 찾아왔고 그런 생각의 늪에 빠지면서 매일 쓰고 올리던 글이 멈추기 시작했다. 나를 탓했다. 이 정도도 꾸준히 하지 못하면서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게, 난 그저 밖에서 고생하지 않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안락하게만 사는 삶을 꿈꾸는 한 량 이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닌가 자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콘텐츠라면 알찬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의 글을 조회하고 완독 했는지의 숫자에 집착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내가 쓴 글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것은 응당 기대할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한 수치는 내 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어렵게 했다. 어떻게 써도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흥미를 유발하는 주제 혹은 제목으로 유입되는 잠재적 독자의 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또 그렇지 않은 경우 극단적으로 침체되는 상황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완성도 높은 콘텐츠가 되어야 할 글 자체에 공을 들이기보다 키워드 위주의 단발성 글들만 늘어갔다.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쌓여가는 작품을 기대하고 시작한 일이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조회수 자체가 이 글을 완독 한 사람의 숫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한 권의 책을 사거나 빌린다고 했을 때 모든 내용들을 꼼꼼하게 하나하나 다 읽는 것은 아닐 수 있으니 ‘완독’이 주요 지표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자 희망하는 이의 입장에선 완독의 의미는 내게 던져지는 축하의 꽃 한 송이와 같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리고 간혹 좋은 댓글들을 읽을 때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무엇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노트북을 열지도 못한 날이 많았던 내겐 더더욱 위안 삼기 좋은 구실이 되어주었다. 일말의 희망이 되어주기도 했으니까. 단 한 명이라도 나의 글에 위로를 받고 공감을 느끼며 무엇보다 ‘잘 쓴 글’이라는 평을 남겨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도전해 볼만한 용기는 충분히 공급된 것이었다.



매일을 몇천 자 이상 작성해야 한다는 기준을 삼고 있진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의 글쓰기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서, 정해진 분량을 작업하는 ‘각 잡힌’ 노동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어떤 때는 새벽 3시, 또 어떤 날은 아무도 없는 오후 2~3시경 갑자기 뭔가 떠오른 때에 두서없이 써 내려갔다. 지금 이 글도 마찬가지다. 자기 계발서를 탐독하고 정독하며 숙독해 온 내가 많은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시간관리에 대한 규칙에 철저하게 어긋나는 패턴을 고집해 오고 있던 셈이다. 미니멀리즘의 삶을 살아가보겠다고 아내에게 외치면서 1천 권의 서적을 몇 권만 제외하고 전부 처분(중고거래 혹은 기부, 그것도 아니라면 폐기) 한 것은 단지 심플한 삶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성공에 대한 목마름이 주체할 수 없는 갈증이 되던 나의 모습에 언제부턴가 숨이 막혀왔다. 왜 각자의 삶을, 각자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붕어빵 찍어내듯 같은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심지어 같은 붕어빵 기계에서도 만들어지는 붕어빵도 제각기 특징이 있을 것인데 어느 순간 좋아 보인다 싶은 모습에 판단과 숙고 없이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상황에 갑갑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불나방 가운데 내가 버젓이 서있단 사실에 혐오감을 느꼈고 자극적인 시그널들에 휘둘리기 시작할수록 나의 뇌는 서서히 굳어져 가고 있었다. 글이 써지지 않기 시작한 시점을 되짚어보면 SNS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때와 정확히 일치했다. 영상이라는 일방적 콘텐츠에 빠질수록 관련된 새로운 영상들이 줄지어 등장했고 나는 여기에서조차 비판 없이 클릭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한두 시간을 보낸 후에 허탈감과 자괴감은 누구든 한 번쯤 느껴봤을 법한 감정일 수 있다.


난 그런 삶을 원치 않았다. 태어났기에, 그 순간 뭐라도 된 것이라면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이번 생에 내가 가장 잘 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남들이 사는 방식대로, 남들의 삶이 좋아 보이는 대로, 눈에 띄는 삶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멈추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나답게 살아가자는 다짐을 철저하게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뭐라도 되기 위한’ 나만의 옳은 선택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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