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들 I

by Davca

나답게,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배운 적이 없는 세대라는 핑계를 대는 것 또한 나답지 않은 것이었다.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나다움이 묻어나는 과정일 것이기에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스스로 알아내야 했다. 안 배워서 몰라요, 란 말은 2025년에 매우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되었다. 초등학생인 두 아이들조차도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거 유튜브에서 봤어, 아침에 아빠가 틀어주는 EBS에서 나왔어, 처럼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대해 매우 많이 열려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길을 찾아가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 그리고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두는 것. 그리고 실행이 뒤따른다면 나는 나의 ‘때’가 되었을 때 기다리던 위치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고 원하던 일이라면 나에게 가장 알맞은 때에 이루어질 것임을 믿어야 한다.

길을 나서기 전에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을, 나는 많은 순간 놓쳤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이리저리 해멜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방향을 모호하게 설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으니, 도달한 그곳에서 나는 계속 의문을 더해갈 수밖에 없었다. 이걸 하자고 지금까지, 내가 정말 이걸 원했다고? 질문이 아닌 자책이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라지만, 방향마저 모호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점을 간과했다. 나의 내일은 오늘이 아닌 어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어제까지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했던 것과는 무관하게 ‘오늘 나의 선택’에 의해 내일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인데 나는 이점을 간과한 것이다. 어제도 난 이런 일을 했으니 이에 대한 연장선에서 나의 내일은 이 정도의 모습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그릴 수 있는 미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나의 내일을 축소시키는 데에 일조한 이가 바로 나였다는 것이다.



어제의 일을, 지나온 시간들을, 내가 해왔던 일들과 만났던 사람들을, 모두 부정하거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쉬움은 늘 있었다. 그리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꿈꿨다. 그런데 나는 나의 내일을 어제와 계속해서 연결시켰던 것이다. 새로운 생각이 찾아들 여지가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 그어낸 한계선들에 난 완벽하게 갇혀있었다. 그리고 뭔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나의 삶에 대한 애착이 조금씩 사라지며 걱정과 불안, 두려움에 갇히고 말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살아가다 끝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대한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뭐라도 해보는 시도 대신 고립되어 있던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때문에.



그래서 생각이 아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괜찮은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아왔나, 무슨 경험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지며 나를 탐구했다. 다양한 책들을 탐독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되었으나 선택하고 나아가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지난 7년간 2천 권 정도의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읽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끝난 경우가 많았단 사실이다. 책을 꼼꼼하게 읽고 밑줄도 치고 메모도 하며 읽는 것을 7년을 하게 되면 스스로 ‘읽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감동할 때가 있다. 대단한 일을 한 것 같고, 새로 알게 된 정보로 인해 왠지 모르게 나의 이 시간 이후의 삶은 좀 더 나아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물론 가능한 일이다. 내가 책을 통해 배운 사실들 가운데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말이다.

하지만 읽었음으로 끝낸 적이 많았다. 나의 삶에 적용해야 할 부분이라고 빨간 볼펜으로 밑줄까지 쳐두고 인덱스로 표시까지 해두고선 그것으로 끝이었던 경우가 숱하게 많았던 것이다. 많이 읽었는데 남은 것이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 말하는 것은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작년 한 해는 색다른 목표를 정하기도 했다. ‘적게 읽고 많이 쓰기’


일부는 성공이었고 일부는 그러지 못했다. 인풋보다 아웃풋에 좀 더 신경을 쓰자는 취지였는데 인풋에 대한 깊이가 부족했다. 그리고 아웃풋에 대한 셀프 피드백을 하지 못했다. 읽을거리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선택했다면 여러 차례에 걸쳐 깊이 있는 학습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은 스스로 고쳐가며 다듬는 행위를 통해서 더 나은 다음을 만들어가야 한다. 올해 내가 역점을 둬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좀 벗어났다. 내가 했던 질문들로 돌아와 보면, 지난 시간들의 경험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콘텐츠의 소재가 될 수 있었다. 이건 나뿐만이 아닌 모든 이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경험이란 나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이후에 나의 반응, 감정 등 나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로 인한 결과물인데 남들과 같을 수가 없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 그 이유다. 동일하게 2025년 3월의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평화로운 하루로, 누구에겐 지옥 같은 인고의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둘이 같은 공간, 바로 옆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료라 해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 경험이 왜 콘텐츠의 소재로 중요하다는 것인가.




9년 전, 은행 퇴사를 고민하던 무렵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길 간절히 원했다.


가족도, 친구도, 선배도 아닌 나와 비슷한 또래의 비슷한 상황에서 은행을 퇴사한 기혼인 은행원의 도움이 필요했었다. 2016년 당시만 하더라도 퇴사와 이직이 지금처럼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기가 아니었다. 포털 사이트부터 블로그, 에세이까지 도움이 될만한 것은 전부 찾아보았다. 자료가 전무하지는 않았으나 내가 기대한 과정의 디테일한 스토리가 담겨 있는 콘텐츠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런 자료들을 찾았다한들 나의 결정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놓쳤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한두 번 더 챙기고 준비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경험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 서른 중반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자세한 과정의 이야기들을 담아내자고 다짐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쓰고자 은행을 퇴사한 것은 아니다. 나다움을 내려놓고 은행을 다니기에 이미 나의 삶이 너무 소중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삶에 새로운 가족도 둘이나 더해졌던 것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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