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1

by Davca

내가 벗어나야 했던 것은 나의 생각이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책망, 미래에 대한 걱정, 현실에 대한 두려운 생각들 모두 그 생각의 근원지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누구도 이런 자기반성을 종용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의 깊이가 나의 하루를 풍요롭게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난 내가 만들어낸 생각의 프레임에 갇혀 매일을 살았다. 괴로움과 자기 연민의 와중에도 이따금씩 스스로를 칭찬하게 되는 순간들도 찾아왔다. 감정과 생각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오늘을 지배하는 걱정들에 묻혀 있었으므로, 아까운 시간들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렇다고 준비되지 않은 미숙함을 괜찮다고, 잘될 거라고, 언젠가는 웃게 될 거라고 낙관적 전망만 갖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외벌이 가장이라는 나의 상황 때문이기도 했고, 갈수록 변화하는 상황과 앞다투어 달려가는 주변의 사람들을 보더라도, 복잡하기만 했던 나의 고민은 점점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단단하지 못했음을 조심스럽게 고백해 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고,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던져진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을 텐데 바람의 방향과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늘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정작 들여다봐야 할 대상을 나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심리적인 불안함, 정서적 불안정은 다른 쪽에서 특정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불필요한 소비행위라는 중독적인 형태의 일시적 만족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그릇된 행태로 말이다. 온전히 끊어내는 것, 절제라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다가와 나의 정신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다른 이들 같지 않은' 삶을 살아가려는 나와 사회의 규격에 맞춰져 모나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는 전형적인 사십 대 중반 가장의 내가 벌인 혈투의 전리품으로 남았다. 맘 편히 쉴 수도, 그렇다고 무엇에 푹 빠져 나의 커리어적 인생을 다져가지도 못했다. 내 하루를 위해 애쓰던 작은 관심의 표현, 글쓰기조차도 동력을 잃었고 점점 어딘지도 모를 깊숙한 곳으로 빠져만 들었다. 오늘 하루를 보내며, 과연 나는 무엇을 했는가 라는 질문을 할수록 지금의 나의 인생이 너무 보잘것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글을 쓰며 치유를 했다는 이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나의 머리와 몸은 그렇게 움직이지 못했다.




행동하지 않았으므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자기 계발서적 사고를 차용하여 나에 대입해 봐도 나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행동을 하려면 명확한 기준과 원칙, 이상과 목표가 있어야 할 것인데(피나는 연습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 김연아도 그냥 한다는 답변을 했으면서도, 그녀만의 확고부동한 목표가 있었을 테니) 지금까지 내 방황의 이유가 이런 삶의 테두리가 부재함으로 인해 발생했던 것이기에 더더욱 섣불리 무얼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매일 반복해서 물었다.



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나에게 소명이란 것이 있는 것일까




이번에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지 못하고 대충 봉합해 버린다면, 시간이 지나 더 큰 문제들로 나를 괴롭힐 것임을 알기에 매일 스스로 같은 질문으로 나를 시험해 보기도, 괴롭히고 달래 보기도 하며 그 어딘가에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매일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더 이상은 도망치지 않겠다고,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나의 그것을 찾아내고 말리라며 무너져가는 나를 계속 일으켜 세웠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찾는 답은, 내가 바라고 원하던 시기에 기적처럼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몇 가지 관련된 생각들이 두서없이, 시간과 장소와 관계없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던 내 인생의 해답과도 같은 항로가 존재할 것이라 여겼던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심지어 그것은 특정된 삶의 모습, 직업, 환경, 상황,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저 삶의 태도, 올바른 방향에 대한 아주 작은 힌트만 주었을 뿐. 그런데 나는 정형화된 답을 찾아다녔으니 17년 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지금까지 고민해 온 십수 년의 시간들이 내게 무용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맥이 풀렸다.



나의 시간은 '의미'를 찾아온 힘겨운 여정이었다



그랬다.


은행에 취업을 했을 때도, 이직에 성공했을 때에도, 업무성과로 사내에 이름이 알려지고 강의를 시작하게 될 때도, 이직한 회사가 뉴욕시장에 사장하고 짜릿한 경험과 보상을 받았을 때도, 1억의 연봉을 뛰어넘어 승승장구하는 인생이구나 싶었을 때도 나는 무언가를 찾았다. 그래서 이다음은, 그다음은, 지금처럼 쌓여가는 경쟁만이 남아있는 것인지. 어쩌면 그 대답이 너무나도 뻔해서 묻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를 계속 이뤄갔지만 그 안에 차 있어야 할 당연하고도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언제나 빠져있었다. 간혹 잘 여문 알맹이 같았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자 '사후의미부여'를 한 것이었으니 모험을 시작하려던 나의 무릎을 꿇리게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겉으론 그 어떤 문제도 찾을 수 없었던 나의 삶은 쭉정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다시 원점이었다.


타인의 시선, 내가 처해 있는 환경, 내가 쌓아온 커리어까지 나는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난 시간 내가 이런 일들을 해왔으니, 그 범주 내에서 나의 내일을 찾는 행위 자체가 선을 긋고 그 안에서만 소심하게 공을 주고받는 유아기적 반응과 다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켜내야 할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의미를 길잡이 삼아 살아갈 것인지를 단순하고도 직감적이며 개인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혼자 알아내야 한다는 전제가 매력적이고 멋지다 생각하면서도, 얄궂게만 느껴질 지루함으로 인한 고통은 되도록 짧길 바랐다. 그리고 지금 나의 이런 상황, 방향에 대한 감지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의미라는 것이 바로 서게 되는 그날부터 나는 죽는 날까지 한 가지만 찬찬히 곱씹어보는 생을 살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내가 흔들리고 방황했던 시간은 의미를 찾기 위한 분투였다. 의미를 찾게 되면 나는 해방감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어찌 살아야 하는 세상인지에 대한 물음에, 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알게 된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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