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2

by Davca

나를 잡아두던 생각의 고삐로부터 자유로워지던 그때, 나는 어제 그리고 내일로부터도 해방을 경험하고 있었다.



잠을 자고 있는 시간마저도 평안한 고요의 시간을 누리는 것보다 내일 벌어질 일들에 대한 걱정에 대한 대응시나리오를 찾던 나였다. 내일에 대한 기대보다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대응을 고민했다. 나의 통제권역 밖에 있는 일임에도 나에겐 늘 계획이란 것이 필요했었다. 언제나 그랬듯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인정 대신 나는 스스로의 준비부족을 탓했다. 조금 더 대비를 했더라면, 하는 생각들은 나를 지구의 핵까지 끌어당기기도 했다. 그렇게 바닥을 쳤다.


어느 순간 내가 기대했던 것들은, 고통 없이 빠르게 어떤 결과들을 내는 모습들이었고 그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들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난 나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었음에도, 관심이 많은 것 은지 우유부단한 것인지 내 안을 들여다보는 대신 주위의 반짝이는 것에 더 많은 눈길을 주었다. 내면의 불안정함에 대한 근거였다. 내 안의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가장 어리석은 해결책을 떠올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른스럽지 못했던 과거는 내게 성찰이라는 과제를 남겨주었다.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난 이 부분에 일정 부분 동의하기도 한다.


다만 작금의 상황들은 그 도를 넘는 경우가 많다. SNS의 정제되지 않은 참과 거짓 사이에서 우리는 냉정한 판단력을 점차 잃어가고 특정 흐름에 동조하거나 동화된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묵시적 동의조차 받지 않은 일방적 후킹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의 지향점, 목표의 방향성이 올곧지 못한 경우 이런 외부의 자극적인 콘텐츠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되고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고통 없는 성장과 성공'이라는 프레임 가운데에 나를 던지기도 한다. 평이해 보이는 타인의 성공 스토리의 좋은 면만을 단편적으로, 그것도 매우 짧은 시간 동안의 노출을 통해 전부인 것으로 수용하게 되었을 때, 내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진다. '왜, 나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은 점점 커져가고 이 생각의 부정적 파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 재생산된다.

나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 그리고 나의 내면을 더 진실되게 들여다보며 대화해야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같이 병행해야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단지 좋아 보이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타인의 생각대로 살아지는 이번 생의 흐름을 끊어낼 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면, 내가 확인해야 하는 것은 타인은 삶이 아닌 내가 진짜로 살아가고 싶은 인생의 그림을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 그려나가야 한다.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어떤 경우엔 지금까지 쌓아온 많은 것들을 다 내려놓아야 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 어떤 지식과 정보도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의 것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이후의 삶은 변화에 대한 고통 따위 개의치 않을 정도의 것들이다. 나는 더 나를 사랑해야 했고, 귀를 기울여야 했으며, 내가 아닌 것들에 둘러싸여 보내던 시간들이 쌓아둔 장벽을 하나하나 허물어가야만 했다.

필요가 아닌 욕심에 의해 갖고 있는 물건, 책, 옷, 액세서리 등을 비워냈고 순환시켰다. 누구가 이런 것들이 진정 필요한 이들에게 돌아가 그 쓰임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나의 마음엔 그만큼의 공간이 생겨났다. 이렇게 비워내는 일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남김없이 비워낸 후에 내가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이 될까.




나 자신이어야 한다. 껍데기가 아닌 나의 내면 그리고 영혼, 순수한 마음





물건의 정리는 마음의 정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바라보게 한다.


물론 이러한 비움에도 난 스스로 동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렇기에 책 정리가 필요하다는 아내의 충고를 몇 해 묵혀두었다가 올해 초 스스로 정리를 시작했고. 30여 일 정도 걸려 50권 안팎의 책만 남길 수 있었다. 대략 3년 전 1,000권 남짓했던 서재의 책들이 50권으로 줄었다는 것은 이전의 나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하나 이제는 이 50권도 많다는 생각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에서 잠시나마 머무르며 생각했던 문장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해도 그것이 필요한 순간 내 삶에 등장해 나를 도울 것이라 믿기에 '보유'에 대한 마음을 모두 내려놓았다. 책꽂이에 가득한 책을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지만 그만큼 넓어진 공간에서 나는 아이들과 놀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며 글을 쓴다. 비워낸 만큼 드러난 공간은 값지다.



나를 돌볼 수 있는 공간에서 '지금'이라는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이전보다 수월해짐을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 나로부터의 해방이 절실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유년기의 80~90년대를 생각하게 한다. 제한적인 도구의 활용으로 나의 상상과 생각들을 더 많이 펼쳐낼 수 있던 그 시절의 공기가 이따금씩 그리워진다. 시선과 생각의 초점을 지금에 맞추기 위해선 늘 의식이 깨어있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요즘과는 다른 시절의 공기가 말이다.

돌이켜보건대 당시엔 나의 하루와 나의 시간들에 타인의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없었다. 나만의 우주에 가득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고 지금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것만이 나의 관심사였다. 지금이었다면 그리하지 못했을 법한 일들도 나의 판단으로 행동했고 후회하기도 했으며 스스로 배울 수 있었다. 이제는 한 팔을 벌린 만큼의 공간도 허용하지 못할 정도의 세상을 산다. 내 껍데기의 외부가 그러한 상황이니 내가 지켜야 하는, 모든 판단과 결정의 근거가 이루어지는 나의 내면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가꿔야 한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게 되면 나의 오늘은 '나만의 오늘'이 된다.



나의 해방은,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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