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했던 순간부터 나의 마음은 어지러워졌다.
충만함이 감사함과 베풂의 아름다움으로 당연하듯 흘러가는 것을 기대하기에 늘 더 좋은 것을 스스로에게 원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나가 채워지면 그것을 누릴 겨를 없이 다음을 채워나갔다.
누가 그랬던가.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니냐고. 급여소득자는 영혼을 갈아 넣은 열일 뒤의 값진 보상을 당연한 결과로 여기고 올라갈 수 있는 만큼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사회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에서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가장으로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겠냐고.
지금까지의 삶은 올라갈 곳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이었다.
더 높은 수준의 연봉, 더 높은 직급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던 그런 시간들은 나로 하여금 대가를 치르게 했다. 애초에 일과 삶의 균형 따위를 기대하지 않았고 난 일에 빠져 지냈으나 시간이 지나며 일에 대한 열의도 애정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철저히 나의 문제였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불과 2-3년 전 직장을 옮기기 전에는 그렇게 합류하고 싶던 곳인데 막상 그곳에서 3년 가까이 일을 하다 보니 난 무뎌져있었고 정체되어 있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는데 나는 3년 전 그때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내가 잘하는 것을 해보자며 생각하고 이동한 자리였으나 하루 그리고 이틀, 날이 갈수록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한 예민함은 주위를 피곤하게 한다. 특히 그러면 안 되는 대상들에게는 더더욱, 이를테면 가족들 말이다.
가족은 나의 분노와 짜증을 받아주는 대상이 아니다. 몰랐던 사실도 아닌데, 특정 순간에 나는 이런 기본적인 원칙조차도 지켜내질 못했다. 내 안에 가득 차있는 '외형적 성장에 대한 열망이라는 가면'은 경쟁체제를 기본 바탕으로 하는 사고에 최적화된 캐릭터를 주조해 냈고, 나는 나를 잃어갔다. 내가 정말 이걸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이 눈을 뜨면 오늘을 살았고, 전쟁 같던 하루의 끝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반복이었다.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하며 살고 있으니 변화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점점 나를 구속해 갔다. 핑계가 늘어가고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으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부담스러워지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위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였고, 한창의 커리어가 진행되어 갈 무렵, 난 소리쳤다.
잠시만요!
그 이후로 난 새벽명상을 10분에서 3-40분으로 늘렸다.
새벽 3시의 고요함 가운데에서 요동치는 나의 마음들을 더 이상 망나니처럼 설치게 놔둘 수가 없었다. 충분한 대화가 필요했다. 조직 내에서 다른 이들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조언해 주는 것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정작 나 자신과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이런 나의 모습과 한 시간 넘게 무언의 대화가 이어졌고 그 안에서 나의 결핍을 마주했다. 적절하게 나 자신을 포장하고 싶었던 마음, 누구에게도 부족해 보이고 싶지 않았으며 많은 이들에게 친절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리더의 자질이라 여겼던 나의 편견.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잘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하는 것 대신 적절한 포장과 도색으로 괜찮게 보이는 것에 예민해있던 내가 보였다. 이런 노력이 당연하듯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했는데 주체할 수 없는 공허함으로 나는 물들었다.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도 명상조차 집중할 수 없었다. 기록을 멈추고, 운동을 멈추고, 글쓰기를 멈추고, 나의 일상도 멈췄다.
가야 할 곳이 어딘지, 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나에게 좀 더 명확했더라면.
아니 그보다 이 과정 모두를 좀 더 즐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놓친 것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단 사실이 아닌 과정에서의 여러 풍경들이었다. 일찌감치 해방되었더라면, 내가 나 스스로를 놓아주었더라면 나는 누구보다 이 여정에서 마주한 온갖 것들을 두 눈에 담고 마음에 간직할 수 있었을 텐데. 지난 후에 이리 느껴지는 아쉬움을 이제와 말해 무엇하겠냐마는, 과정을 소중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지불한 것이 내게 주어진 '나만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 고통은 나의 예상을 이미 뛰어넘었다.
나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나의 목소리대로 살았어야 했다.
해방되지 못했던 난, 그간의 비겁함을 이제야 알아차리고 뒤늦게 나의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다. 때 묻지 않은 나만의 의도와 목적을 찾아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아야 함을 더 많은 이들이 이른 나이에 알 수 있게 나의 역할을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소명일지도 모르겠다. 늘 그래왔듯, 마음으로 글로 또 말로써 전달하여 누군가의 삶을 도울 수 있는 역할이 갖는 참의미를 느끼고 행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안에서 발현된 것인지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오늘을 살며, 오늘을 살펴야 한다.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바로 여기에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고, 나의 편견으로부터 해방되며, 과거와 미래의 통제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야 나로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