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에 머물러있다.
하루이틀, 한 달 두 달 그리고 반년을 이전보다 더 집중적으로 생각해 봐도 마음으로 통하는 진실의 이야기와 현실에서 헤쳐나가야 하는 소주제들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이런 생각의 끝엔, 이럴 거면 평생 혼자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고 하는 것을 더 깊고 넓게 철학적으로 고민하고 답을 내리는 환경으론 최적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정을 꾸리고 있는 가장으로서 위험한 생각이라 하더라도, 일순간 그런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여전히 이성과 책임과 의무의 논리가 더 크고 넓게 나를 지배하고 있기에 생각의 파편들은 더 흩어지지 못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면, 늘 이분법에 머무는 나를 발견하게 됨이 부끄럽다. 아는 것이 없어 부끄럽고, 그런 부끄러움을 안고 더욱 부족한 기록을 남기고 있음에 다시 한번 부끄럽다. 그런데 이러한 부끄러움이라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이 생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일 수 있다는 생각에 어제보다 솔직한 것들을 남기려 한다. 솔직함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적절한 포장과 예의와 분위기 파악과 관계와 서열의 문화에 오랜 시간 담겨 있던 개인으로서 노력하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진실이 바로 솔직함이다. 솔직하지 못해 잃은 기억과 감정과 추억과 시간들은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쉽게 재생되지 않는다. 이미 나의 각색과 편집과 삭제와 덧칠이 군데군데 남아있기에 왜곡된 기억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지나 온 시간이 슬픈 이유는 솔직하지 못해 상실한 기억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쌓아온 일의 과정과 결과로 그 삶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무지했다. 몸이 가는 대로 살아간 것과 다름 아닌 시간들을,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관심이 생겨야 관찰하게 되고 그 관찰을 통해 관계가 생긴다는 고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나는 자신보다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살아왔다. 그 환경이라는 파도의 물결 위에 잘 버티고 서있는 것이 의미였다. 그래서 파도만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다. 내 안을 들여다봐야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더 선명하게 가려질 텐데 나는 나에 대한 관심을 갖는 법을 몰라 관찰하지 않았고 관계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 가끔씩 책을 보고 글을 쓰며 눈앞에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인공눈물에 의지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남에 나의 오늘이 지난날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서글픈 마음이 든다. 굳이 노화라고 말하지 않아도, 내 남은 인생에서 오늘이 몸과 마음이 가장 좋은 상태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운이 좋아 지금까지 흘러온 큼지막한 이벤트들 속의 나는 나 스스로와 대화하지 못했고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했기에 연약했다. 나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선택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방황했다. 지혜를 알아차리는 순간엔 가슴 또한 열린다. 새로운 시작을 할 완벽할 준비란 없다. 순간을 느끼고 알아차리며 나의 언어로 반응하면 되는 것이다. 본능적이고도 감각적인 영혼의 힘이 능력을 발휘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솔직해지는 것에서부터 출발이다. 내가 지금 보는 것, 생각하는 것, 느껴지는 것에 대해 제한 없이 솔직해질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서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