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경쟁을 기반으로 한 조직의 생활은 내가 추구하던 이상적인 일의 영역은 아니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에 나까지 그럴 이유는 없었는데 스스로에게 관대했다. 일을 배우고, 조직의 생리를 경험하고, 인간관계에서의 처세를 알게 되고, 적당히 라인을 타며 동문회 선후배들을 챙기는 모든 것들에 왜,라는 질문 없이 수용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매월 급여를 받는 직장인으로서 일을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건 왜 이렇게 하는 걸까 하는 정도만의 적극성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의 난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일머리 좋고 지혜로우며 여러모로 도움 되는 직원이자 선배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웃음이 나온다.
내 실력을 키우기 위해 일을 배우는 것인데 조직에 기여하고 타인에 도움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다니.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고 했던가, 선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게 됨은 어쩌면 타고난 나의 성정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내게는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걸 잘하기 위해서는 나를 우선 증명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의 가치를 알아줄 테니 말이다. 내가 뭘 잘하고 어떤 점이 부족하며, 어떤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지 늘 예민하게 관찰해야 했다. 성공했던 순간도 그렇지 못했던 순간들과 공존했다. 매 순간 그리고 매해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기준의 잣대가 내 옆을 따라다녔다.
내가 나이지 못하는 순간들이 늘어났음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나, 사회의 규격에 의해 나를 평가하기 시작한 기준들은 온전한 진실함 속에서 스스로 기대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을 쉽지 않게 했다.
그렇다, 변명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나만의 길을 걷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왜 유독 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다 고백하는 것인가. 자랑이 될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를 채워갈 시간에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상황의 전개에 예민한 촉을 세워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옥과도 같았다. 내가 나였던 적이 없었고, 별것 아닌 한두 마디의 피드백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도 했다. 마음은 끝없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그 상처는 빠르게 아물지 못할 것 같다는 불행한 예감은 가족들에게까지 넘쳐흘렀다.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얼굴은 마음이 드러나는 창구다. 감추려야 감출 수도 없거니와, 포커페이스 또한 되지 못했던 나였기에 ‘나, 지금 죽을 것만 같다’는 표정의 산송장마냥 시계추처럼 출퇴근만을 반복하는 무뇌의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평가받기 위하여, 나를 증명하기 위하여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가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난 나다움을 포기했다는 것을.
고유한 것은 특별하다. 나다운 삶을 살겠다 다짐하고, 잘 드러나지는 상황들을 연출하기 위해 난 그렇게 살아가는 남들과 동일한 모습을 갖겠다고 아등바등하던 그 순간부터 그 특별함을 포기해야만 했다.
난 왜 단 한 번도 이런 삶에 대한 의문을 가져보지 못했을까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아니 내가 원했던 길을 가게 되면 높은 곳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엔 그러한 삶은 정형화된 모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사람들에게 잘하고, 나의 상황 그런 건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시간들의 누적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었다. 물론 내가 좀 더 현명했다면 균형을 생각했을 것이고, 나의 실력을 가다듬고 쏟아지는 일들 가운데서도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직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선후배들 간의 관계에서도 적절히 좌우대칭을 잡아가는 생활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러하지 못했다. 눈치를 잘 봐야 한다는 것이 관계에서 중요한, 그리고 회사 생활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생각했고 어느 순간 높은 비중으로 나의 신경 곳곳에 침투했다. 눈치 빠르고 일도 잘하면서 나의 커리어의 한 줄 두줄을 아름답게 채워가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게 있다.
단 한 번도 ‘나 다운’ 삶을 살 것에 대한 주문을 스스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제와 사무칠 줄이야 알았겠는가. 그렇다고 이타적인 삶을 지향하며 의미를 쌓아가지도 못했으면서. 이렇게 주저앉아 뒤늦게 나의 길을 가겠노라 떳떳하게 소리치지도 못하며 소극적 반항으로 위안을 삼는 4월의 봄밤을 맞이할 것을 알았다면, 나는 일찌감치 그 증명이라는 것을 내려놓았을 텐데.
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지난 시간들이 하나둘 가슴으로 떨어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