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서 나는 달리는가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에 생각하는 일과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와 의미는 매우 다를 수 있다.
적극적인 활동과 넓은 인간관계를 통한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것에 젊은 날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지극히 작은 단위인 가족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것에 가치를 둘 수도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대기업, 외국계 기업 등 이름만 대면 모를 수가 없는 곳의 일원으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랑이고 자부심이었다. 양복 깃에 달린 회사의 배지가 나의 지난 과거에 대한 보상이라 여기고 전부라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삶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철저하게 개인의 선호로 이루어진 선택만이 남아야 한다고 믿고 있기에 어떤 형태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나의 어제를 돌아볼 때 불편한 마음이 남고 문득 떠오르는 어색함이 나의 것이 아닌 것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을 시작하고, 기록을 하고, 걷고 달리면서 온전히 나만을 생각했다. 내가 추구해 온 가치는 모두 외부의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고민했다. 먹고사는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일이었기에 이상에 대한 것과 현실에 관한 것의 균형을 어떻게, 어느 수준까지 맞춰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내가 흔히 했던 실수는, 결괏값만을 두고 생각했던 것이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수반된다. 원인이 있은 후에 결과가 있고 결과라는 것은 대게 나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내가 몰입하고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원인에 해당하는 과정이었다. 의미와 가치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같고, 나는 그 방향대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 나는 이 과정에 시간을 들이기보다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양분화되는 결과를 두고 고민만 했다. 결과만 봤다는 것이 첫 번째 실수고, 과정에 투입하는 시간을 고민하는 데에 써버렸다는 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스스로 옳다고 믿고 결정한 것이라면 예상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만들어낸 성과에 의해 나는 쓰임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위에 대한 선택 그리고 지속 반복하는 것만이 내가 해야만 하는, 그것도 아주 성실하고 꾸준하게 해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반복성을 입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상상했던 것이 가치가 있고 내게 주는 의미가 충분하다면 그 방향으로 달려 나가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