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30화의 연재를 마무리하며, 서투른 글솜씨로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읽어주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2026년에는 30화 연재를 열두 번 마무리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꾸준함도 재능이라는 말을 기억하면서 말이죠!
생일이 매년 동짓날인 탓에 한 살을 먹는 시기가 남들보단 늦었던 탓에, 나는 모든 것이 조금은 느린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대학도, 군대도, 취업도, 결혼도. 그런 흐름 속에서 유독 빠른 것들이 눈에 띄게 되었는데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유용한 것에만 적용이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렇지는 못했다.
우유부단함으로 보일 수 있는, 아주 가끔은 잔나비 띠가 재주가 많아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이 또한 강점이 될 수 있다 여겼지만 돌아서서 후회를 한 적도 모두 기억해내지 못할 만큼 빈번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와중에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끈기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꾸준하다'는 끊임없다, 부단하다 등과 유의어로 사용됨을 감안하면 내가 진실되게 꾸준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선 대답대신 고개를 숙이게 되나, 한발 물러서서 약간의 너그러움을 내게 허용한다면 그 범위 안에서는 '숨 쉴 틈을 두고 꾸준했다' 정도로 갈음하는 것이 적당한 표현 같다. 그런 한 해를 보냈다.
새벽기상과 걷기와 조깅, 독서와 글쓰기, 집안일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빙자한 잔소리에 꾸준했다. 단연코 비중이 높았던 것은 조깅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였다. 내가 책을 좋아하고 필사를 즐기며 책의 내용을 숙지하는 즐거움을 아는 것은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 발견하곤 했다. 한동안 좋은 책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의 검색을 통해서라 생각하던 내가, 이제 도서관의 여러 코너를 들락거리며 눈이 가는 책들, 서서 한 시간도 읽어내고 싶은 책들을 고르는 재주가 생긴 것은 누군가와의 대화 때문이었다. 그 누군가가 책의 저자인지 아니면 나의 지인인지 기억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누군가가 그리고 다수가 남긴 평에 의해 나의 독서 범위를 제한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근래에 잘한 일 중 하나였다. 나의 손때를 묻히고 때론 장기간 비치되고 대여되었던 탓에 나는 알지 못할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있는 책을 꺼내고, 그 순간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발견해 내고자 순간에 빠져들었던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어내는 이 과정은 철저하게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철저히 혼자서 말이다.
그것은 외로움과는 다른 것이다.
혼자 남겨졌다고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혼자되었다는 것이 때론 외롭다는 생각에 근접조차 하지 못하도록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쉴 새 없이 알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2025년, 내겐 독서를 위한 책의 선택 과정이 바로 그러한 작업이었다. 소란스러움 가운데에서도 나의 중심을 잃지 않고, 진리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이며 다양한 시각으로 참고해야 할 것이 어떤 것들인지에 대한 조금의 시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나로 살기 위한 가장 유용한 방법이 무엇인지, 아니 과연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지 알고 싶었다. 모두가 똑같은 모습을 하며 살아가는 것 말고, 미친 듯이 꿈틀거리는 열망에 사로잡혀야만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주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관련된 지식과 지혜의 엿봄을 통해 나만의 생각과 언어로 기록하고 이것이 또 누군가의 고민과 선택에 도움이 되길 희망하며 살았다. 성공적인 한 해였는가 묻는다면 나대로 잘 살아낸 한 해였다 답할 수 있겠다. 풍요로웠고 자유로웠으며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 건강히 지내시는 양가의 부모님들이 계셔서,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고 있는 동서네와 매제의 가족이 있어서 감사했다. 일의 소중함, 나 자신의 고유함, 아내 의견의 귀중함을 알 수 있어 감사했다. 무엇보다 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주어 감사했고 조금씩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책을 가까이하며 꽤나 조리 있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주어 진심으로 고마웠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나는 나 자신을 조심스럽게, 발견했다.
이로 인해 나의 하루는 안온했으며 고요했다. 외부의 소음에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하게 반응했다. 그것은 부러지거나 꺾이거나 휘둘리지 않음을 의미했다. 완벽하지 않은 무언가를 내어놓는 것에 대한 거북한 마음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치유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성장과 성공에 대한 의미부여는 나 자신에 대한 진실된 발견 이후로 미뤄두어도 괜찮은 주제라고 생각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숫자로 표현되던 나의 일들은, 마음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일들로 대체되기도 했다. 직관과 느낌과 감정을 존중하게 되었고 현실과의 균형을 위해 걷고 달리고를 반복하며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깨닫곤 했다. 역시나 나의 태생에 맞게 조금은 느리게 깨닫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관찰을 통한 인지의 활동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됨은 시기와는 무관하게 축복받은 것이라 여기게 된다. 깨어남을 경험하게 나를 도운 명상과 새벽 일기는 무엇보다 나를 나답게 살 수 있게 여전히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매일 새벽 A4 크기의 격자노트 5~6장가량을 채워가며 감정과 느낌과 생각들을 비체계적으로 적어 내려가는 것은 일종의 정화였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일기를 쓰고, 어느 지점에 도달했을 때 다시 명상을 하고 또다시 써 내려가기를 90여 분간 지속했다. 그 무엇도 써지지 않는 날에도 끝까지 테이블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선택적 꾸준함이라 해도 나는 이 시간을 존중하고 싶었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시간 한가운데에 서 있다.
내가 누구인지 보고 있고 나의 호흡을 느끼며 관찰자가 되어 지금의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다. 나는 나의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해 나갈 수 있는 존재이다. 축복과 평온의 시간이 모두에게 닿기를 바란다. 모두가 자신이 가진 귀중한 것을 발견해 내길 바라고 풍요로움 안에 머물길 바란다. 나의 아내와 두 아이 또한 지식에 멈추지 말고 지혜로움으로 움직일 수 있길 바라며 호흡을 고르고 바라본 하늘과 구름과 해와 땅과 바람의 고마움을 잊지 않길 바란다. 넘치는 사랑이 머물렀던 한 해였다. 그 사랑 안에 고요히 잠들어있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