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없이 7시간을 자고 잠에서 깼다.
사실 그전부터 뒤척이긴 했지만 보통의 밤이었고 평온한 수면이었다. 여느 때와 비슷한 하루의 시작이었는데 오늘만은 유독 내가 승리자가 된 것만 같았다. 그 어떤 것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무언가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가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했던 그런 마음의 무기를 온몸에 두른 것만 같았다. 호흡도 안정적이었고 맥박도 그러했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양치를 했다. 추위를 막아주던 커튼도 걷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그래도 이 광경을 보는 것이 좋았다. 산 뒤에 걸린 붉은 것 주위로 시퍼런 새벽의 기운이 흩어지는 것이 일출을 보는 것보다 아름답다 생각했다. '나의 오늘도 이렇게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깨어나고 마음이 열렸다. 이제 해야 할 일들을 시작한다.
물을 끓였다. 1분 정도. 완벽하게 끓지 않은, 따뜻함과 뜨거움의 중간 정도에 머무르는 때에 한잔을 따라 마신다. 냉수보다 속이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가 아,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했는데 그게 바로 작년이었다. 마흔여섯의 해에 나는 고단했다. 여전히 아이스라테를 매일 한잔씩 즐기는 아내는, 젊다. 올해로 마흔이다. 영하 13도의 날씨에도 아이스라테를 마신다. 커피에서 차 종류로 관심을 옮긴 탓에 함께 카페에 가도 나는 밀크티를 마시거나 디카페인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랬던 시간들이 있었구나 하며 스쳐 지나갈 무렵 물이 끓었다. 이유 없이 페퍼민트 티가 떠올랐다. 티백하나를 뜯어 2분가량 우려낸다. 김이 올라오는 보덤잔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라고 해봐야 식탁의 내 자리.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들에게, 결혼 때 아내가 사준 묵직한 원목 합판의 큰 책상을 넘겼다. 그리곤 난 노트북 하나 얹을 수 있고, 노트 하나 펴고 글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안락한 공간에 머무르게 되었다. 오히려 좋았다. 제대로 미니멀리즘(사실은 '조금씩 비워가기'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해 보인다.)을 해보자 마음먹었기에 나의 공간이 더 제한적으로 바뀐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그만큼 나는 다른 무언가로 나를 채우는 데에 더 신경을 쓰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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