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실함이 사실은 '도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 모닝페이지 3페이지를 빼곡히 채우는 일은 분명 성실한 루틴이었습니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더 정교한 단어를 골라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표현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원인 모를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은 깊어졌지만 삶은 늘 제자리라고 느껴졌었거든요. 정갈하게 정리된 생각들은 다이어리 속에서만 머물 뿐, 정작 세상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완벽하게 준비해서 내놓고 싶다는 그 선한 욕심이 역설적이게도 나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묶어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도 무언가를 '써냈다'는 생각에 자족하고 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9시 22분,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본격적으로 달리자고 생각했을 때가 2022년 4월이니 이제 4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한겨울 러닝은 쉽지 않습니다. 한여름엔 월평균 150km 내외를 달리지만, 한겨울엔 걷는 것만으로 만족할 때가 많으니 실력이 나아지기가 어렵겠지요. 2km가 다 되어가는 지점을 지날 때쯤,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무거워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 찰나에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폼으로 달려볼까'라거나 '이 운동이 내일의 나를 어떻게 바꿀까' 같은 세련된 계산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저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행위, 그 하나만이 남습니다. 잘 뛰고 못 뛰고의 경계가 무너지고 오직 '지속함'만 남았다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완벽주의는 정지된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실행은 투박하더라도 움직이는 궤적 위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운 셈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겐 '객관적으로 드러나게 잘하는 것' 이상으로 충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일단 하는 것, 그냥 하는 것을 매일 반복하는 것이 잘하는 것 이상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요.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3km를 더 달려봅니다. 페이스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아주 편안한 심박으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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