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매우 황당한 이유로 남편과 크게 다투었다.
그 당시엔 난 정말 이유도 모른채 가만히 당했다.
컴퓨터를 보며 햄버거를 먹는 남편 옆에 다가가 속삭이며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이유로 미친듯이 화를 내며 횡설수설 뽑아내는 샤우팅을 멍한채 당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아직 깨어있는 상황에 나에게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거의 미친놈처럼 발악을 하며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난 그런 상황에 우선 조용히 말하라고 계속 저지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소리를 지르며 나가라고 발악을 했다.
난 지금껏 살면서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한번도 없었다. 만약 이 사람이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인걸 진작에 알았다면 애초에 만나지도 않았겠지. 연애중이었다면 결혼을 안했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소리 지르는 사람을 만나기는 커녕 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렇게 소리지르는 것 역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남자는 내가 쿠니를 임신한 후 한번씩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소리로 상황을 제압하려는 듯이..
그 후 아이들에게도 툭하면 소리 지르는 버릇이 나왔고, 자신이 조금만 기분이 나쁘거나 조금만 놀라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많이 당황했지만, 최근 그것에 대한 불만을 끊임없이 제기했고, 집 안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고 다짐을 수차례 받았다.
그동안 매우 평온했는데 갑자기 오늘 벙찐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남편 자신에게 갑자기 매우 충격적이고 불운한 상황이 생긴 까닭으로 가뜩이나 매우 기분이 안좋은데 내가 놀래킨 이유로 소리를 질렀다며 자기합리화를 했지만 난 그것이 나에게 그렇게까지 소리지르는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해 끝까지 나가달라는 말에 응하지 않고 나에게 사과할 것과 조용히 말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큰 싸움이 되었고 나는 분노로 심장의 떨림이 온 몸에 전해지는걸 느끼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한참을 싸우고 나서 남편 방에서 나왔더니 쿠니와 비니가 밖에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쿠니는 심지어 아까 내가 준 치즈도 얼마 못 먹고 들고 서 있었다. 정말 아이들에게 면이 서질 않고 미안했다.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게 되어 부끄러웠다. 쿠니는 나에게 치즈를 떼어내 주며 "엄마... 괜찮아요? 이거 드실래요?"하며 건넸다. "괜찮아...너 먹어..." 라고 말하며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런데 엄마는 지금 아빠때문에 화가 아주 많이 나 있다고, 그래서 눈물이 나는 거라고 말했다. 아빠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상황이 정말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하고 기분이 나빴기에 싸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너희 앞에서 이렇게 싸우면 안되는건데, 너무 무서웠지?미안해..."라고 울면서 말하는 나를 보며 쿠니 역시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엄마 많이 속상하시죠? 그래도.. 엄마랑 아빠가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오랫동안 같이 살아가야 하니까 그러는 과정 중에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그러면서 맞춰나가는 거잖아요. 그러니 괜찮아요...."라며 나를 안아주었다.
이게 초2 아이의 말이라니.... 정말 놀랍고도 고맙고도 기특하고 대견했다.
그동안 이 아이가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왔었는데... 눈물을 쏟는 나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며 위로까지 하는 아이를 보니, 정말 내 아이지만 그동안 내가 이 아이를 너무 몰랐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
쿠니와 잠깐 대화를 나누는데 남편이 대화를 하자며 불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로 화가 난 포인트와 앞으로 서로 조심하고 지킬건 지키기로 다짐하는 대화를 나누고 나와보니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남편에게 내일 아침 아이들에게 '엄마에게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어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라고 말했다.
나 역시 내일 천사같은 아이들에게 전쟁의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 해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