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웃아찌 May 08. 2020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

주차장에서 생긴 일


한가한 일요일 오후였다. 급한 용무가 생겨 주섬주섬 옷을 입고 식사도 대충하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강남 오피스텔 사무실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던 중이었다. 이 빌딩 주차장은 입구가 좁아서 곡예를 하는 것처럼 운전이 능수능란하지 않으면 진입 자체가 어렵다. 입구 쪽 벽면에는 여러 차량이 훑고 간 사고의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검게 긁힌 자국이 보기 흉한데도 운전 조심하라고 경고라도 하려는 듯 관리실에서는 페인트칠을 하지 않고 있다. 3년 넘게 이용을 한 나는 눈감고 주차할 만큼 익숙해지긴 했지만 각별히 주의해야만 한다. 주차장은 지하 6층까지 있음에도 평일에는 빈 공간이 없을 만큼 항상 주차 대란이지만 그 날은 공휴일이라 지하 1층부터 널널했고 마침 지하 2층으로 내려가기 전 오른쪽에 공간이 보여 T자 후진주차를 하려던 참이었다.

"쿵"

'이건 뭐지? 분명 빈자리였는데..'

처음엔 주차하려던 곳 옆 차를 부딪친 줄 알았다. 아차 하고 차에서 내려 보니 뒤따라오던 차량과 접촉 사고가 난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버러 진 일이었다. 상대 차량은 BMW 신형 차였고 운전자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부모 잘 만나 호사(豪奢)를 누리는 건지는 모르지만 강남에서는 흔한 일이라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청년이 먼저 말을 건넸다.

"괜찮으세요? 백미러를 못 보셨나 보네요.."

강남에 이런 친구들은 거들먹거리기 일쑤인데 집안 교육을 잘 받았는지 젊은 친구가 매너 있어 보였다.

"왜 이렇게 바짝 따라옵니까! 나는 뒤따라오는 차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를 했다. 사고가 많이 나는 입구도 아니고 텅 빈 주차장에서 접촉사고가 날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자식뻘 되는 사람하고 언쟁하는 것도 웃기고 미팅 시간도 다 돼 가서 빨리 마무리를 해야 했다. 서둘러 각자 보험사 직원을 불렀다. 상대 차량 보험사 직원이 먼저 도착했다. 사고 경위를 듣더니 나보고 100% 과실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 내 쪽 보험회사 직원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10분 뒤 도착을 했다. 사고 상황이 녹화된 블랙박스를 확인하고 접촉사고 난 부분과 상태를 이리저리 확인해 보더니 내 과실이 100% 맞다고 했다.

"아니 이게 어찌 내 과실이 100%입니까! 내가 가해자고 과실이 있는 건 알겠는데 바짝 뒤따라온 상대 책임은 없는 거예요?"

안전거리 미확보는 책임이 없는 건지를 물었다. 입구에서는 뒤따라오는 차가 없었는데 바짝 붙어서 갑자기 멈추면 상대방도 과실이 있는 거 아닌지를 따진 거였다. 그것도 일반 도로가 아닌 주차장에서의 후진은 비일비재한 일이기에 억울함을 호소해 봤지만 보험사 직원은 교통법규상 장소와 무관하게 멈춰있는 차량을 후진하다 박으면 가해차량이 100% 과실이라고 원칙만을 얘기했다. 순간 억울하긴 했지만 교통법규가 그렇다니 어쩌겠는가.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친구는 보험사 직원한테 차를 맡기고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나도 사고 접수까지 마무리를 하고는 석연찮은 찝찝한 마음을 뒤로한 채 약속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는 곧 안내 문자가 왔다. 대물 사고 접수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상대 차량은 앞 범퍼에 약간의 흠집이 난 정도여서 종합보험으로 처리하면 됐지만 비싼 외제차다 보니 센서 견적도 많이 나올 거고, 내 과실이 100%라 보험료 할증도 많이 될 것이 뻔했다. 거기다가 내 차는 자차처리를 해야 해서 자기 부담금 30만 원을 내야 했다. 이래저래 손실이 컸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인데, 급한 마음에 서둘렀더니 사고 난 거다 싶어 반성을 하고는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오후에 보험사로부터 또 하나의 문자가 날아왔다.

'대인사고 접수가 되었습니다.'

대인사고? 경미한 접촉사고였는데 그 젊은 친구가 입원을 했다는 거야? 헐~ 담당 보험사 직원한테 전화를 걸어 어찌 된 건지를 물었다. 담당 직원은 이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100% 내 과실인 것도 어이없었지만 매너 있어 보였던 멀쩡한 젊은 친구가 입원을 했다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교통사고 당하면 지병(持病)도 고친다고 누가 그러더니만 딱 그 꼴이었다. 아마 자기 과실이 하나도 없고 보험료 할증도 안 되니까 입원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전화를 해서 '어이 젊은이 인생을 그렇게 살지 마! '라고 한소리 해주고 싶었지만 그런 사람도 있겠거니 하고 말아 버렸다. 착잡한 마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정말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거 같다.

작가의 이전글 닭볶음탕 맛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