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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May 09. 2020

재수 옴붙은 사연

'아. 이런! 재수 옴 붙었구먼..'

하는 일이 잘 안 되거나 일이 꼬였을 때 흔히 이런 소리를 하곤 했었다. 그때만 해도 옴이 뭔지도 모르고 썼던 말이었다.

20여 년 전, 대학원 석사 공부를 하던 때였고 IMF로 국가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 었다. 다니던 그 대학원에는 특이한 원칙(院則)이 하나 있었는데, 6학기를 마치는 동안 한 학기는 기숙사 생활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방침인지는 모르겠으나 군대생활 이후에 민간 공동체 생활을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나는 3학기에 신청을 하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기숙사에 입성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선배 1명과 동기 1명 후배 1명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한방을 쓰게 되었다. 각자 개성이 강한 사람들로 구성된 환상의 조합, 아니 환장의 조합이었다. 고향, 나이, 취미, 성격 등 무엇 하나 공통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약 4개월간의 기간 동안 걸핏하면 사소한 일에도 언쟁이 벌어지곤 했었다. 심지어 잠버릇도 다들 고약해서 코 고는 사람, 잠꼬대하는 사람, 이를 가는 사람, 자다가 뒤척임이 심해 안기는 사람 각양각색이었다. 가관도 아닌 네 사람이 7평 남짓되는 좁아터진 공간에서 기생충처럼 옹기종기 모여 생활하는 것은 웬만한 인내심 가지고는 견뎌내기 힘든 일이었다. 방문을 열 때 그 케케묵은 남자들만의 고유한 홀아비 냄새를 맡아야 하는 건 곤혹 그 자체였다. 아마 빠삐용에 나오는 수용소도 이 정도는 아닐 듯싶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학교 방침이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서로 단합이 되었던 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박찬호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박찬호가 승리투수라도 되는 날이면 무슨 광복을 맞은 독립군처럼 부둥켜안고 기뻐 날뛰곤 했었다. 박찬호는 IMF로 실의에 빠져있는 국민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던 터라 그때만큼은 하나가 되었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낙이 됐었다.

그렇게 그럭저럭 적응하며 버티고 있던 어느 날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기숙사 생활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을 보내고 주말에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도록 되어있었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동기는 조치원이 집이었고 농사를 짓는 영농 후계자였다. 그가 집에 다녀오고 나서 어느 날 잠을 잘 때마다 사타구니가 가렵기 시작하더니 긁다가 잠을 못 이루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루에 세네 번을 하는 데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뭐지? 약국엘 가서 증상을 호소했더니 연고를 처방해주었고 아끼지 않고 듬뿍 발랐음에도 가려움은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의심이 가는 동기를 추궁해보니 자기도 가려워서 나름 역학조사를 해보았데 집에서 옴이 붙은 거 같더라는 게 아닌가! 가려운 곳이 사타구니라 병원 가서 바지 내리기도 쑥스럽고 당시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말로만 듣던 옴이 나한테 달라붙은 것이다. 오죽 안 떨어지면 재수 옴 붙었다는 말을 하겠는가! 그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옴이 얼마나 성가시고 안 떨어지는 지독한 버러지인지를..

인터넷으로 옴을 찾아보니 성병의 일종으로 사람 피부에 파고들어 잠잘 때 주로 활동하며 간단한 피부 접촉만으로도 쉽게 옮기는 병이라 소개되어 있었다. 평소 음흉했던 동기 놈이 문란해서 그런 건지, 어디서 옮아서 그런 건지 원망은 차치하고 당장 내 몸에 징글징글하게 붙어있는 옴을 어떻게 처치할까를 고민해야만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쌀벌레를 없애는 방법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벌레가 생긴 쌀을 돗자리를 펼쳐놓고 햇볕에 말리면 쌀벌레가 사라지는 것을 종종 보아왔던 차였다. 일광욕! 그래 일광욕이다. 근데 어디서 하지? 마땅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뚝섬에 사는 누나 집이 떠올랐다. 결혼하고 신혼집이 그곳이었는데 그 집 옥상에서 일광욕을 하면 되겠다 싶어 주말을 이용해 누나 집으로 향했다.

그 해 6윌 말경이었는 창피해서 누구한테도 말도 못 하고 누나한테 여차저차 이실직고를 한 뒤 돗자리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뚝섬역에서 왕십리역으로 향하는 전철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볼 수도 있어 창피할 수 있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옴을 떼어내기 위해서는 물불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마치 통바비큐를 하듯이 몸을 돌려가며 뙤약볕에 일광욕을 하기 시작했다. 도심 한 복판에서 올누드 선텐(suntan)을 하는 꼴이라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3시간 동안 일광욕을 하고 나서야 가려움이 없어졌다. 옴이 내 몸에서 기적같이 싹 사라졌던 것이다. 뭘 해도 안 떨어졌던 옴이 일광욕 한방에 일망타진되다니.. 그동안 옴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몸고생 맘고생했던 게 생각나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이 기쁜 승전보를 같은 방을 썼던 동료들에게 전했다. 치욕적인 경험을 통해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한번 붙으면 안 떨어지는 옴. 절대로 몸이든 재수든 옴이 붙게 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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