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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Jun 07. 2020

국화빵 아저씨

사회적 약자와 소통하는 것에 대하여


3호선 남부터미널역 6번 출구 앞. 그의 국화빵 뒤집기 신공(神功)이 한창이다. 헐한 옷이 아니라면 멋쟁이 신사로 알랭 드롱 버금가는 인기를 구가했을 만큼 신수(身手)가 훤한 아저씨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노점상을 하기에는 솔직히 아까워 보였다. 인물 좋고 실력도 겸비한 데다 맛까지 그만이면 장사가 아니 될 수 없다.

액면으로는 나이가 어림잡아 환갑은 넘어 보이나 100세 시대에 한창 일할 나이가 아니던가! 인물이 좋은데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퇴직금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하다 국수 말아먹듯이 잘 말아먹고는 궁여지책으로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을 더러 보아왔다. 관상과 품행(品行)에서 느껴지는 포스로는 이 아저씨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나는 아저씨의 사연이 궁금하여 말을 걸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참이었다. 마침 한가진 오후 시간에 그 길을 지나갈 일이 있는 틈을 타 추억의 국화빵이 어떨지 맛도 볼 겸 가게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5천 원어치를 살 요량으로 돈을 손에 미리 쥐고 있었다.

"아저씨 많이 파셨어요?"

평소에 알고 지내왔던 거처럼 능청스럽게 말을 걸었다.

"..."

아무 대꾸 없이 곰살맞게 미소로 화답했다.

"얼마에 어떻게 팔아요? 오천 원어치만 싸 주세요."

"..."

이번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처음엔 귓등으로 듣고 무시하는 줄 알았다. 얼마나 잘 나갔던 사람이었기에 저리도 도도한가 속으로 생각을 하는 찰나 투박한 글씨가 적혀있는 메뉴판을 쓰윽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2천 원에 11개라는 문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알고 보니 듣지도 말하지도 못 하는 농아(聾啞)였던 것이다.

너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당황했지만 대학교 때 수화 동아리에서 잠깐 배운 기억을 소환해서 어설픈 수화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수화도 엄연히 언어인지라 30년 동안 안 쓰다 보니 생각이 나지 않아 깊은 대화를 나눌 순 없었지만 '반갑다', '맛있다', '좋다', '고맙다' 등 단순한 표현 정도는 서로 주고받을 수 있었다. 아저씨도 사뭇 놀란 듯 눈이 동그래지더니 반갑다는 듯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굳이 수화가 아니어도 아저씨는 내 입모양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아듣는 듯했다. 그보다 일반 손님이 자기들만의 소통의 방법인 수화로 다가와주니 동질감에 기쁜 듯했다. 의미 있는 간단한 손동작만으로도 시들한 아저씨의 얼굴에 환한 국화꽃을 피게 할 수 있었다.

말을 못 하는 장애가 있음에도 강남 한복판에서 일반인들 상대로 꿋꿋이 장사를 하는 그 용기가 놀라웠다. 또 팔면 얼마나 팔겠는가! 이 아저씨 또한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갈 텐데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나는 또 하나 감사할 일이 생겼고 단골을 해야 하는 또 하나의 가게가 생기게 되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많이 있다. 그들도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고 보호해주고 배려해야 할 소외된 이웃이지 않은가.

얼마 전 나는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일이 있었다. 그 주어 담을 수 없는 말로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주고 말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했건만, 빚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평생 갚을 수 있을지 모를 빚을 지고 만 것이다. 그럴 때마다 차라리 벙어리가 되는 게 낫겠다는 자책을 하곤 한다. 쓸데없는 말로 실수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네 사는 세상은 눈뜨고 보기에 볼썽사나운 일들이 너무나 많고, 입에 담기도 민망한 추잡한 사건 사고들이 넘쳐난다. 이런 이슈들에 마음이 불편해질 때마다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말을 안 하고 살고 싶은 충동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국화빵 아저씨는 적어도 두 가지는 할 수 있으니 어쩌면 나보다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늘 맛본 국화빵은 그 어떤 이름 있는 제과점 빵 보다도 맛이 있었다. 조그마한 국화빵 안에 잘 으깨진 팥소 외에 아저씨의 사연과 감동이 버무려진 까닭이다. 역병으로 잠시 주춤했던 가게가 다시 활기를 되찾아 국화빵 아저씨의 뒤집기 신공을 맘껏 볼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충분하진 않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하루를 보내고 잠들기 전,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입을 막아 잠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았다. 세밀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찌야! 너는 행복하니? 아찌야! 정말 감사하며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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