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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Jun 11. 2020

새로운 삶의 도전-버킷리스트

인생의 후반전을 위하여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국사봉이라는 작은 산이 있었다. 그 산자락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했는데 먹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아카시아 꽃을 따먹는 재미가 솔솔 해서 친구들과 종종 가던 곳이었다. 지금이야 대기오염과 황사로 꽃잎을 먹는다는 게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때는 최고의 천연 간식이었다.

나는 나보다 두세 살 많은 동네 형들과 잘 어울렸는데 어느 날 형들이 국사봉 정상을 넘어 정반대 길로 내려가 보자고 했다. 나이도 무리 중에 가장 어렸을 뿐만 아니라 태어 나서 동네 밖을 벗어나 보지 못했던 터라 겁이 나서 안 가고 싶었지만 거절했다가는 형들이 다음부터는 안 놀아 줄 거 같아 마지못해 동참해야만 했다.

산에 오르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는 두 마음이 들었다. 혹시 길을 잃고 집에 못 돌아오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과 저 산 너머에는 과연 어떤 세상이 있을까 라는 호기심이었다. 형들과 함께라면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아침 일찍 무작정 따라나섰다. 아마 그때 내 나이 8살이었을 것이다.

그 나이에 산을 오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를 포함 대여섯 명 정도였는데, 집과 멀어질수록 집 생각이 나고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총총걸음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형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해야만 했다. 듬직한 대장형은 길을 잃을 것을 대비해 준비한 헝겊을 나뭇가지에 매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한참을 지나 드디어 정상에 무사히 다다랐다.

마을 어귀가 보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가 사는 동네를 바라보는 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왜 어른들이 산에 오르려고 하는 지를 조금은 알 거 같았다. 형들을 따라 '야호'를 크게 외치고는 정반대 방향 길로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집까지 걸어오는 데는 두 시간쯤 걸렸는데 동네를 벗어난 묘한 경험이 나를 키 한 뼘 정도 자라게 한 느낌이었다. 조금 커서 알았지만 반대편 신세계는 봉천동이었고 지금이야 버스로 네다섯 정거장 가면 되는 가까운 거리었다. 그때는 왜 그리 멀게 느껴졌는지..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면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배운 소중한 체험이었다.

몇 해가 지나 세상은 엄청 넓다는 걸 알게 된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놀이였는데 11살 초등학교 4학년. 구슬치기와 딱지치기하고 놀던 때에 엄마가 미용실을 하는 친구 집에 모여 '부루마블'이라는 놀이를 자주 하곤 했다. 판을 깔아놓고 각자 은행에서 발행한 돈을 나눈 후 순서를 정하고 주사위를 돌려 해당하는 장소에 머무르면 그 땅을 살지를 정한다. 두 바뀌가 돌 때쯤, 내가 사 논 땅에 다시 머무르게 되면 호텔과 빌딩을 짓게 된다. 모든 나라에 투자가 끝나고 상대방이 내가 투자한 나라에 머물게 되면 체류비를 내야 하는 일종의 경제놀이라 할 수 있었다.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하루가 멀다 하고 삼삼오오로 모여 놀이를 했었다.

아마 우리나라를 제외하곤 일본 중국 미국 밖에는 모를 나이에 세상이 이렇게 넓고 많은 나라들이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 놀이는 내 인생에 중요한 진로와 세계여행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음이 분명했다. 어른이 돼서 금융 관련 일을 하게 되었고, 누구나 쉽게 도전하기 힘든 세계여행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내 나이 마흔을 갓 넘었을 쯤이었다. 내가 하는 일에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고 회사 임원들의 부도덕한 행태에 회의를 느낀 나는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다 판단하고 사표를 내고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던 시기 었다. 40대에 꼭 해야 할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에 세계일주를 목표로 정하고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이때 아니면 평생 못 할거 같아서 집사람 동의를 얻어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중국의 만리장성을 시작으로 일본,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스웨덴, 덴마크, 북아이슬란드, 핀란드 등 북유럽을 돌며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오로라를 보았고, 서부, 동부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통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크로아티아동 유럽의 유구(悠久)한 역사를 경험하기도 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미국 본토의 광활한 대지를 가로질러 여러 도시를 투어도 해 보았다.

10년 전 70여 개국 세계여행을 통해 다양한 인간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나 자신을 성찰하였고, 삶의 소중함과 경이로운 대자연 앞에 겸손함을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건 세상은 넓고 가보고 싶은 곳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남미의 이과수 폭포, 사하라 사막,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 사이에 있는 킬리만자로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나는 꿈을 꾸는 게 좋다. 그 꿈을 향해 도전하는 건 더 좋다. 도전하다 실패도 많이 했지만 그때 얻은 소중한 경험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경험한 만큼 성숙해지고 삶이 풍성해 질거라 믿는다.

내 나이 지천명을 넘었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라 치면 딱 전반전을 마친 셈이다. 남은 후반전에는 새로운 계획으로 도전해 볼까 한다. 50대에 꼭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정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글쓰기 도전이다. 1,000편의 수필을 써볼 생각이다. 졸필이 될 수 있고, 신변잡기식 산문이 될지 모르나 닭 천마리 키워본다 생각하고 써보련다. 그러다 보면 봉황 한 마리는 나오지 않겠는가. 그리고 두 번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100명 후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보았다. 전반전에는 나를 발견하고 성장하는데 투자를 했다면 이제는 이웃을 위한 나눔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볼까 한다. 멋지게 펼쳐질 내 인생의 후반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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