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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 Dec 02. 2015

우리엄마의 취향

충격적 귀마개

엄마와 나는 참 다르다. 생김새부터 성격, 옷 입는 취향까지 모두 다르다.     


엄마는 피부가 하얗고 예쁜 쌍꺼풀(쌍꺼풀 있는 눈이 꼭 예쁘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쌍꺼풀 없는 내 눈을 사랑한다.)이 있으며 그만하면 코도 적당히 오똑하다. 전체적으로 이목구비가 입체적인 편이다. 반면 나는 엄마보다 밋밋한 편으로, 쌍꺼풀이 없고 코가 작고 낮은 편이며 피부도 엄마보다는 덜 하얗다.     


엄마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소녀 같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드는 반면 나는 ‘남자애들 같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고착화된 섹슈얼리티에 기반한 말들은 되도록 안 쓰고 싶지만 다른 사람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기려고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되었다.) 엄마는 섬세한 편이고 감수성도 풍부하며 마음이 여린 편이다. 반면 나는 소위 ‘쿨하다’ 라는 평을 종종 듣고 선머슴 같은 기질이 있다.      


엄마는 너풀거리고 아기자기한, 인형옷 같은 옷을 선호하는 편이다. 진주, 리본 같은 장식을 좋아하며 색깔도 파스텔 톤의 옷을 선호한다. 엄마의 옷장만 보더라도 페미닌 룩 스타일의 옷이 많은 편이다. 반면 나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옷을 좋아한다. 사실 이렇다 저렇다 할 것 없이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입지만 전체적으로는 매니쉬 룩을 즐겨 입는 편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이면 부딪힐 일이 많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 전혀 그렇지 않다. 엄마에게는 없는 것이 내게 있고 내게 없는 것이 엄마에겐 있다. 엄마는 쌍꺼풀 없는 둥그스름한 눈매에, 갸름한 내 얼굴을 매력적인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학창시절의 나는 남녀 할 것 없이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는, 털털한 아이였다. 또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육녀(체육을 잘하는 여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활동적이었다. 엄마는 이런 나를 알파걸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엄마와 키가 얼추 비슷해졌고 그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옷을 교환해 입기도 했다. 서로 워낙 다른 스타일을 선호하는지라 집에는 매니쉬 룩부터 페미닌 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옷이 있었다. 기분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의 옷들을 골라 입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고등학교 2학년 겨울, 혹독한 추위로 고생하던 어느 날, 엄마는 엄청난 물건을 사들고 오셨다.     


바로 이런 귀마개.     


(이런 귀마개는 대체 어디서 사오신 걸까.)


와우. 


진주+리본+하트모양 솜 뭉치의 조합이란.   


놀랍게도, 그 당시 엄마가 이 귀마개를 사오셨을 때 난 심지어 환상적으로 예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엄마의 스타일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나머지 그랬던 것이라 믿겠다.) 그렇게 그 해 겨울에는 이 귀마개를 애용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그 다음해의 다음해에 이어 이번 겨울에 이르기까지. 이 귀마개는 보면 볼수록 기똥차다. 이제는 엄마도 이 귀마개를 보면 “내가 그때 무슨 생각으로 저걸 샀지?” 하며 웃음을 짓는데 그걸 또 좋다고 써보는 엄마를 보면 역시 사람 취향이 쉽게 변하진 않나보다.   

  

옷장 한 구석에서 “나 여기에 있어요.” 하며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 아이를 다시 쓰고 밖에 나갈 날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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