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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 Dec 18. 2015

고부(姑婦) 사이

부(婦)에게 보내는 응원

열흘이 넘도록 두통에 시달리던 엄마는 결국 정신과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무엇이 엄마를 아프게 하는지 알고 있었고 의사가 뭐라고 할지도 뻔했다. 그래도 병원은 늘 무섭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과는 더 그렇다.     


가끔 할머니가 드시는 약을 처방 받으러 그 병원에 몇 번 들른 적이 있다. 병원에 가면 카운터에서 약 처방만 후딱 받고 바로 약국에 갔던 것과 달리 그 날은 우리 엄마가 병원의 한 환자로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약 처방을 받는 게 이상했다.     


병원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계신 간호조무사 선생님은 엄마를 보며

“할머니 약 때문에 오신거죠?”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엄마는 자못 민망하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아뇨, 오늘은 제가 아파서 왔어요.” 하고 대답했다.  


간호조무사 선생님은 엄마의 표정을 단박에 읽고는

“그런 일 많아요.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분 들은 종종 병원에 오세요.” 라고 하시며

상담을 위한 간단한 심리검사지를 엄마에게 건네주셨다.     


엄마는 벽 쪽에 붙어있는 의자에 앉아 15분여정도 설문지를 작성했고

나는 그 반대편 쇼파에 앉아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입고 있는 파아란 초록색 잠바에 비해 엄마의 등은 너무 초라해보였다.     


엄마는 작성한 설문지를 손에 쥐고 상담실에 들어갔다. 같이 들어갈까 말까 잠시간 고민했다. 괜히 나까지 따라 들어가면 엄마가 당신의 이야기를 의사 선생님께 마음껏 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내가 엄마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래도 누군가 옆에 있는 게 힘이 날 것 같아 상담실에 따라 들어갔다.


진찰 결과는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혹시 모르니 신경외과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임이 분명했다. 덧붙여 우리 엄마는 일반 사람들에 비해 강한 ‘당위성’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옳은 것, 정의로운 것에 대해 강한 당위성을 갖는 사람들 중에는 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니니까’ 혹은 ‘나 살기도 바쁘니까’ 하는 이유로 옳고 그름을 끝까지 파고들지 않거나 못한다.      


우리엄마는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인 동시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다. 엄마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4.16 연대 활동을 비롯한 여러 인권 활동들을 1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 상식이 무너진 요즘 같은 세상에, 몇몇 안 되는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끝나지도 않을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장면들을 목격한 엄마의 스트레스는 최근 몇 개월 동안 더 심해졌다. 외부적으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내부적으로는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니 오죽했을까.     


우리엄마의 강한 당위성은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도 작용했다. 올해 초서부터 논의된 할머니와의 합가에 대해 아빠 형제들은 사실상 나몰라라했고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가여워했다. 함께 살자고 결정하기까지 큰 어려움이 없었고 올해 4월 중순서부터 집을 합치게 되었다.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삼삼하게 드시는 할머니를 위해 모든 반찬의 간이 예전보다 싱거워졌고 영양가 높은 해산물 반찬이 식탁에 자주 올랐다. 집밥을 드셔야 속이 편안하신 할머니를 생각해서 외식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10년 넘게 썼던 우리 집 전화번호가 할머니가 쓰시던 번호로 바뀌었고 집 현관문 비밀번호도 할머니가 쓰시던 번호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선 방 세 개 딸린 큰 집을 구해야했다. 원래 살던 동네에선 우리 집 형편으로 그 정도 큰 집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구석진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런 많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생각보다 아무 탈 없이 반 년 정도는 잘 지냈다.


그런 줄 알았다.


고부갈등, 우리 집은 그런 일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누가 보더라도 참 좋은 사람이었고 할머니도 시어머니 노릇할 분은 아니었으니까. 웬걸, 우리 집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 반 년 동안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할머니와의 관계로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엄마가 스트레스 받는 상황은 대략 이렇다.  


엄마: 어머니 쓰시라고 보습 크림 좋은 거 사왔어요. 겨울에는 건조하니까 어머니 방에 두고 쓰세요.

할머니: 이제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뭘 또 바르냐. 내가 밖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집에만 있는데 뭐 그렇게 건조하겄어.

엄마: 에이, 그래도 겨울에는 실내에 있어도 건조해요. 어머니 자꾸 아까지 마시고 사온 성의를 봐서라도 쓰세요.     


할머니는 워낙 물질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상황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고 여유가 있더라도 어떻게든 아끼시려는 분이다. 이렇다보니 엄마가 할머니 생각해서 화장품이든, 옷이든, 음식이든 뭘 사든 늘 아까워만 하신다.      


‘그러면 할머니 것은 아예 안 사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우리 엄마는 분명 할머니를 모셔야 하는 입장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엄마는 옳은 것에 대한 당위성이 강한 사람이기에 할머니도 ‘잘’ 모셔야한다는 압박감이 늘 있다. 할머니는 정말이지 웬만해선 아무것도 사지 않는 분이고 우리 엄마는 할머니의 잔소리 들을 걸 알면서도 그렇게 계속 뭔가 사온다.     


이런 상황들의 반복과 함께 작은 것 하나하나도 거슬리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쓰레기 하나를 버리더라도 할머니와 우리 집 식구들의 방식은 달랐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가 나한테 그랬다.


(까칠한) 너희 아빠 두 명과 사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그때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작은 응원은  이 말 뿐이다.   


그래 맞아, 엄마 대단한거야. 나는 엄마 이해해.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이상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선 서로 양보하고 조율해 나가야한다는 ‘교과서적인’ 해결 방안을 모르겠는가.   


할머니가 우리 엄마보다 아빠를 훨씬 아끼고 챙기는 것처럼 엄마를 더 아끼고 챙겨줄 사람이 우리 집에는 필요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던가. 할머니보다 엄마가 더 안쓰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할머니에게 한 마디 말씀드리고 싶다.

“할머니, 우리 엄마 성의를 봐서라도 뭐 사오면 기쁘게 받아주세요.”


(병원에 갔던 날, 우리 엄마 모습이 저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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