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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 Dec 22. 2015

갈기갈기

사진을 찢었다.

손톱깎이를 찾으려고 서랍을 열었다가 그 사람과 함께 찍었던 스티커 사진들을 발견했다. 최근에 브런치를 통해 내가 마지막 인사(https://brunch.co.kr/@vision29201/13)를 고했던 사람이다.  이별 후 처음으로 이 사진들을 발견한 건 아니다. 이전에도 가끔씩 눈에 띨 때면 찬찬히 들여다 보곤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랬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진이었다.     


갈기갈기 찢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에 아무 짓도 안하고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을 수도 있지만 일부러 그렇게 안했다. ‘진짜 끝’을 눈으로 확인할 형식적 행위가 필요했다.     


손으로는 찢어지지 않아 가위로 주섬주섬 잘랐다. 스티커 사진이라 그런지 종이 자르듯 한 번에 잘리지 않았다. 사진들은 조각조각, 테이프로도 맞추기 힘든 형태로 흩어졌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선물 담을 불투명한 쇼핑백 하나를 찾으려고 서랍을 뒤졌다. 스타벅스 로고가 그려진 쇼핑백도 몇 가지 쇼핑백 중 하나였다. 꽤 오래전에 내가 이 쇼핑백에 중요한 걸 넣어 두었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그가 나에게 주었던 편지들이었다. 각종 기념일을 기념했던 편지들.     


읽어보면 우울해질 걸 알면서도 이미 궁금해진 마음은 돌이킬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읽을 수 없었다. 그거까진 정말 감당이 안 된다.     


편지 내용이 뚝뚝 끊기도록 스킵해가며 읽었다. 편지에 담긴 감정들이 온전히 나에게 전달되는 것이 두려웠다.           


오전에 찢은 사진들이 생각났다. 이 편지들도 그렇게 해버릴까 생각하다 그러지 않았다. 추억이 담긴 물건을 찢는다는 게 잔상이 많이 남는 행위인지라 그 일을 하루에 두 번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에 또 발견하면 그때 가서 생각하련다.   



내일은,

비운지 얼마 안 된 휴지통을 또 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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