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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 Mar 29. 2021

그거, 남자들만 한다는 수술은 그래서 어떻게 됐어?

영어고 뭐고 그 애의 수술 썰을 듣고 싶었다. 설연휴를 앞두고 “그거, 남자들이 하는 수술”을 한다던 게 2주 전이었는데 학원에 와선 별 말 없는 걸 보니 왠지 아쉬웠다. 그렇지만 입다물고 있기로 했다. 괜한 말로 그 애가 부끄러움이나 당혹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영어문제를 풀다말고 갑자기 그 애가 말했다. “내일부턴 물 닿아도 된대요.” 자신의 수술경과나 아픔을 물어봐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 애는 갑자기 수술 과정을 소상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다행히 입은 마스크로 가렸지만 사람이 진실로 웃을 땐 눈도 입만큼 웃기 때문에 최대한 눈가 근육을 진정시켜 보았다. 그렇지만 그 애도 눈치챘을 것이다. 수업할 때의 난 그런 표정을 지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 애 말을 종합하면 그 수술에 쓰이는 마취주사바늘은 아주 가늘어서 치과 마취보다 덜 아프고, 동서남북으로 방향으로 마취바늘이 거기에 들어가고, 수술이 다 끝날 때 즈음 마취가 빨리 풀린 부분은 엄청나게 아프다. 이참에 다른 것들도 물어봤다. 보통 언제 수술을 하는지, 얼마간 씻으면 안되는지, 반드시 해야하는 수술도 아닌데 왜 그 수술을 결심하게 됐는지와 같은 질문들이었다.


그 애는 중간중간 대답을 머뭇거리다가도 결국엔 다 이야기했다. 부끄러운 마음보다는 이야기하고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았다. 그 애와 나는 이제 고작 여섯번 정도 봤을 뿐인데, 또래한테는 하지 않을 이야기를 내게 해주는 게 왠지 고마웠다. 너무 고마워서 하마터면 나도 내 비밀을 하나 말해줄 뻔했다. 앞으로 그 수술 네 글자를 어디에선가 보고 들으면 난 반자동적으로 그 애를 떠올릴 것이다. 그 애는 이 사실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미 내 머리속 마인드맵의 어귀에는 그 애의 얼굴과 이름이 들어서있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되어있는 너의 얼굴과 이름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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