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 본 여자애가 헝헝헝거리며 교실에 들어왔다. 저 헝헝헝은 의성어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헝헝헝이다. 앉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자기는 영어를 진짜 못한다는 거였다. 알파벳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영어를 쉰 지가 너무 오래 됐다고. 헝헝헝. 나는 그 헝헝헝이 너무 귀여워서 집에 가서 혼자 흉내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헝헝헝. 방금 쓰면서 입밖으로 내뱉어봤는데, 내 헝헝헝은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소리여서 그만뒀다. 헝. 이제부터 그 여자애를 헝헝이라고 부르겠다.
헝헝이는 책상 위에 놓인 프린트물을 풀기 싫다고 말했다. 아마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이 하얗고 까만 종이를 통해 자기 영어 실력이 5분 안에 드러날 거라는 것을. 학원과 과외로 점철된 나의 청소년기를 돌이켜보면, 그건 약간 공포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학교에서 보는 시험은 나 말고도 애들이 많으니까 아무도 내 성적을 초미의 관심사로 두지 않는데, 학원에서 보는 시험은 그야말로 5분 솔로무대인 것이다. 나도 그런 시기를 지나왔기에 초면인 학생들에게 문제 풀어보라고 하면 괜히 미안해지는데, 막상 오늘 처음 만난 헝헝이가 시험을 거부하니, 당황스러우면서도 기특했다. 그래. 기특했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줄 아는 게 기특했다. 기특하게 여길 자격이 내게는 없지만 왠지 기특했다.
그 뒤로도 헝헝이는 재밌는 말들을 아주 많이 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얼마나 자주 우는지, 또 얼마나 장점이 없는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고선 자기는 자기 자신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교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자기소개를 쉬지 않고 하는 애가, 자기 자신을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마음은 어떻게 해야 생겨나는 마음인지 궁금했다. 나는 헝헝이만큼 나에 대해 두서없이 말할 수 없으면서도,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헝헝이는 왜 자기자신을 모르겠다고 했을까. 앞으로 헝헝이를 알아갈 시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