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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 Nov 28. 2015

처음으로 그가 울던 날

나를 자주 울렸던 사람이 있다.     


처음 그 사람 앞에서 눈물 흘렸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고등학교 친구들 열댓 명 정도와 함께 엠티를 갔을 때였다. 성인이 되고나서 친구들과 1박2일 교외로 놀러간 건 처음이었다. 술 한 모금 못 마시고 죽어 원한 생긴 귀신이라도 되는지 다들 전투적으로 술을 마셨다. 대학생 새내기들의 술자리에 술게임이 또 빠질 수 없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하는 술게임, 얼마나 재밌던가. 그렇게 난 한껏 들떠있는 상태였다.   


(최고로 재밌는 술게임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할 때...)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신나게 놀고 있는데, 당시 남자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 대부분은 솔로였고 ‘연애중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던 나는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속으로 ‘훗, 나는 이 시간에 이렇게 전화 오는 사람도 있다. 친구들아.’ 하며 아무도 없는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응, 아직도 놀고 있어?”

“응, 아직 한창이지~ 완전 재밌어 ㅎㅎㅎㅎ”

“목소리 엄청 들떠있네.”     


그때부터 분위기가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업(up)되어있던 나의 마음은 그와의 전화통화로 인해 한 없이 다운(down)되었다. 그는 내가 늦은 시각까지 친구들과 술 마시고 게임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본인은 지금 너무 차분한 상태인데 너는 반대인 것 같다며, 이제 곧 2학년인데 마음잡고 자기 할 일 해야 하지 않겠냐며.  


그렇게 남자친구의 훈계를 듣고 있자니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누구 앞에서 눈물 흘리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내가 그러고 있는 게 너무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불이 꺼져 있는 방 안 소파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천장이 어찌나 자주 뿌옇게 보이던지. 친구들이 간혹 방을 드나들 때면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 날 난 다행히, 내 눈물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날로 나의 눈물은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남자친구 앞에서 자주 우는 애가 되어갔다. 내가 그렇게 많이 울 수 있는 줄 몰랐다. 길을 걷다 다투면 걸어 다니면서 훌쩍거리고 그러다 울음이 안 그치면 길가 구석에 들어가 울고, 밤에 전화를 하다가 울면 잠이 들기 전까지 울다 잠들었다. 참 많이도 울었다. 이제 우는 게 그렇게 창피한 일도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도 많이 울었는데, 그는 나에게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게 참 야속했다. 나는 슬프고 힘들어서 이렇게 자꾸 눈물이 나는데 그는 나만큼 감정의 동요가 없다는 게 억울했다.     


그랬던 그가,

내게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 날이 있다. 그에게 이별 통보를 한 지 한 달 정도 되는 날이었다. 만나서 밥을 먹고 맥주를 두 잔째 들이키던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내가 처음 울던 그 날의 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 악물고 눈물을 참는 게 눈에 보였다.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그가 내 앞에서 그런 표정을 하고 있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미칠 노릇이었다.     




언젠가 서럽게 울던 나에게 그가 이렇게 말했다.


“너가 울면,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날 그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고나서야 그가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달리 할 말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옆에서 누가 울면 꼭 같이 우는 나는 그 날도 똑같이 울었다. 내 앞에서 나를 보며 울고 있는 그가 너무 낯설었고 그에게 미안했다.


한편으로는 참 못됐게도, 그의 눈물이 나에 대한 진실된 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서로의 관계에 있어 내가 더 간절하고 내가 더 좋아하니까 감정도 격해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들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 날은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이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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