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이름으로의 온 예수

내 삶이 평범할 지라도 - 힘에 겨워하는 친구에게

by 아포리스트

이름은 무언가를 나타낸다. 그 이름이 있을 때, 사물이 의미를 갖는다. 명사는 어떤 사물에 부여하는 특징들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혹은 그것의 역할을 나타낸다. 그것의 이름을 부를 때만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신호등은 신호를 나타내는 등이다. 그것의 역할에 의해서 이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름이 없는 사물을 부르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름을 만들어서 부르고는 한다. 어휘력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에 나 역시도 모르는 벌레나 새의 이름을 멋대로 붙이고는 했다. 그것의 생김새 등을 통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이름은 일상에서 너무 중요한 것으로 자리 잡았다. 남자아이들의 이름에는 어김없이 왕이나 용 등을 뜻하는 이름을 많이 넣었다. 세글자에 담겨딘 뜻에 아이의 운명이 정해진다 믿는 풍속도 있었다. 이름이 좋지 않으면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운명을 바꾸고자 더 나은 이름으로 개명하고는 한다. 작명소에 들리면 고가의 이름이 팔리고는 한다. 그 이름을 사는 사람들은 더 나은 삶,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 이름을 사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라는 이름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신 분으로 개신교에서 묘사한다. 많이 불렀던 찬양 중에 <예수 그 이름만 생각해도>라는 찬양이 있었다. 예수의 이름만 생각만해도 기쁨과 감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 이름에 구원이 있고, 그 이름에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이름인 <예수 이름높이세> 등에서는 예수의 이름을 높이자며, 예수 이름을 여러번 외쳐보곤 한다.


하지만 우리 개신교인들의 평소 고백과는 달리 예수는 흔한 이름이다. <70인역 성경>을 번역한 유대인 72명 중에서 세 명이 예수였고, 유대인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한 글에는 무려 20여명의 예수가 나온다. 심지어 신약 사본에 따르면 예수 대신 풀려난 바라바의 이름이 ‘예수바라바’였다고 하니, 빌라도는 두 예수 중 어느 예수를 풀어줄까 물었던 셈이다. 게다가 바울이 살라미 섬에서 만난 거짓 선자지들의 이름조차 ‘바예수’ 즉 예수의 아들이다.


예수의 이름은 '철수'나 '민수'처럼 평범한 이름이다. 그런 평범한 이름으로 이 땅을 구원하고자 했던 성경의 의도는 무엇일까. 성경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기적을 보여준 이들은 권력자들이나 지배세력이 아니었다. 그 시대 멸시받고, 천시받아왔던 백성들이었다. 그 시대 하층민이 아닌, 하층민조차도 미워했던 사람들이 예수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평범한 이름으로 온 것이다. 예수는 이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평범했다. 예수의 제자, 예수의 아버지, 예수의 어미니 그 누구하나 특출난 이가 없었다.

신은 자신의 아들을 특별하게 부르지 않았다. 예수라는 그 흔한 이름으로 죽기까지 충성하도록 했다. 이름이 삶의 일부에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삶이 이름을 이길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 속에, 평범한 이름으로 온 유대인 예수는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이 되었다. 교회에서 말하는 것과 참 많이 다르다.

사랑하는 내 친구야, 축복한다. 가장 평범한 이름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손을 잡고 보여준 하나님 나라가 너에게도 보여지길. 하찮은 인생, 비루해보이는 인생,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 없는 것 같은 열등감 대신에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늘 너와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내가 성경을 통해 접한 예수는 평범한 모습으로 와서, 평범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전했다. 비록 삶이 평범해보여도, 할 수 있을 거다. 믿는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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