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온 예수

친구에게

by 아포리스트

세상이 가장 어두운 동지 무렵, 마음 한쪽이 시려질 때 허무의 그림자가 설핏 우리의 일상을 드리웠다. 그 그림자가 우리 일상을 메울 무렵, 우리는 한 소식을 들었다.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요한복음 1장 9절).” 어둠에 질린 사람들은 귀를 세웠다. 더욱이 그 빛은 자신을 길과 진리 생명이라고 했다.

길을 찾는 사람들은 그 빛을 만나보고 팠다. 별빛을 따라 그들이 향한 곳은 베들레헴의 마굿간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 빛을 만난 첫 번째가 동방박사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양치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게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중요치 않다.


예수, 그는 우리 일상의 자리에 현존하면서 길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는 길을 걷기도 했고, 스스로 길이 되어서 가늠할 수 없는 선물이 됐다. 예수는 질문이고, 동시에 답이다. 그것에 묻고 답함을 ‘신앙’이라고 부른다.

그 신앙으로 가는 길은 향방없는 날뜀을 없애준다. 흔들릴 지언정, 방향을 잃지 않는다. 예수로 묻고 답하고 사는 삶은 든든한 지주를 얻는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불안해하지 않는다.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을 선물로 받았다.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걱정하지도 않고(마태)”, “내일일은 내일 걱정하면 되는(마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무리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예수를 믿기에 삶이 풍요롭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고난을 피할 때에 다른 이들의 고난까지 나눌 여유가 생긴다. 나의 고난도 발돋음대로 생각하게 된다. 참, 좋은 삶이다.


세상의 기복주의, 물신주의, 욕망, 쾌락은 어두운 길로 발을 내딛도록 한다. 예수의 제자를 자칭하는 이들은 예수를 교묘하게 기복주의의 신, 물신주의의 신, 쾌락의 신, 욕망의 신으로 둔갑까지 시킨다. 그래서 “기도하면 무조건 이루어진다”, “교회에 헌신하면 복이 온다”는 헛된 믿음도 심어놓는다. 그리고 자신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착각하며 살게 까지 한다. 그래서 변질된 예수가 진짜 예수를 지워버린다. 심지어 자신의 예수가 된다. 자신의 권위가 예수의 권위인 줄 안다. 자신의 방향이 예수의 방향인 줄 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이들까지 용서하라고 한다. 그 용서로 분노를 삭히도록 한다. 그래서 다시금 평안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어두운 세상 속 빛은 예수를 통해 얻는 평안이다. 사랑하는 병민아, 그 예수를 통해 얻는 평안의 길을 걷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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