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을 시작하는 그대에게
* 이 글은 제 브런치에서 작성하는 100번째 글입니다. 더 좋은 글들을 앞으로 계속 써나가겠습니다.
말콤 글레드웰이 쓴 <다윗과 골리앗>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써 있어.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선물했어. 이 책은 작은 기업, 학벌이 부족한 사람, 평범한 사람이 거대한 기업과 엘리트들과 겨루어서 부족함이 없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좋아해. 너무 평범한 사람이, 큰 사람들을 이기는 그런 이야기 말이야.
몇 가지만 소개하고 싶어. 난독증에 걸려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던 데이비드 보이스는 청각을 발달시켜 들은 내용을 적지 않고 암기하는 능력을 키우게 돼. 그래서 미 정부를 대변해 MS 반독점 소송을 담당한 유명 변호사가 되었어. 이뿐 아니라 이케아 대표, 골드만삭스 회장 등 성공한 기업가들 중 3분의 1이 난독증을 겪고 있다고 이 책은 소개하고 있어.
학벌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중위권 대학을 나온 사람이 상류층 학벌을 획득한 사람보다 훨씬 더 좋은 연구를 많이 해냈다는 미국 기록이 있어. 너무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데 반해서, 중간 층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오히려 학교에서 많이 존중받고, 한명의 학생에게 자원이 집중되기 때문에 더 좋은 연구 결과를 낸다는 것이 이 책의 설명이야.
이러한 일화들을 통해서 내가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오히려 '강점'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 책이 바로 이 책이야. 약점이라고만 생각했던 부분이 오히려 강점으로 다가오는 것이지.
"이 책은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이기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성공은 특권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가깝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멀리 있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서 이 룰을 깨뜨려야 한다. 그것이 인류의 진보로 이어진다"
글레드웰의 <다윗과 골리앗>은 너무 멋진 책이야. 그러나 이와 동시에 ‘개탄스럽’기도 해. 한국은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이기기 힘들다'는 것 때문이야.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을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인식 속에서는 불가능해 보여. '수저계급론'부터 시작해서 과열된 교육경쟁까지...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부모 덕을 보고, 학교 덕을 보는 등은 우리 사회에서 이제 너무 일상이 되어 버렸어. 그뿐일까. 나이가 많다고 취직시키지 않는 문화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한국상황이 어떨지를 고민하다가 좋은 책 한 권을 발견했어. 나는 얼마전에 계명대 최종렬 교수의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청년들이 우짖는 소리>라는 책을 우연히 읽어봤어.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인(in)서울' 대학은 고작해야 10% 남짓이니까, 대부분은 이 책에서 말하는 지방대생이야. 그리고 우리가 넘지 못할 산을 학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 이러한 지방대생들의 특징은 '적당주의', '성공주의', '가족주의'로 환원 돼. 그들의 삶의 가치의 지향점은 적당주의, 성공주의, 가족주의인데,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왜 자신감이 없는지에 대한 이유로서 더 분명한 것 같아.
적당주의는 공부 분야로 크게 성공한 적 없는 지방대생들이 '자신의 삶이 적당했으면' 하는 것이고, 여기서 성공주의에서의 성공 '가족'에게 맞춰져 있어. 우리 엄마아빠에게 어떤 사람인지, 내 친구에게 어떤 사람이 될지에 집중한다는 거야. 수도권에선 세대 갈등 담론이 유행하고, 가족 공동체의 해체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방에선 가부장적 핵가족 모델이 세대를 이어 잘 작동하고 있다고 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야. 생각의 폭이 좁기 때문에 한지역에서만, 한 군데서만 머물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어. "이것 아니면 안돼"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고, 그 일도 "적당이 여기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해. 그래서 저자 최종렬 교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지"라고 을 때, 가족주의 언어를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해. 다양한 영역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확장하고, 세계로 넓혀야 한다고 말을 해.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끼지?”를 계속 물을 때 가족주의의 언어를 빠져나올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해. 이를 위해선 대화의 상대를 가족을 넘어 다양한 영역에 있는 사람들로 확장하고, 대화 상대방의 수준을 국가, 세계, 우주로 넓혀야 한다고 저자는 설명해.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
참 멋진 말이지? 내가 좋아하는 앨빈토플러가 한 말이야. 미래는 우리가 함부로 예측할 수 없고, 상상을 통해서 오는 거야. <시크릿>의 저자 론다번이나 <꿈꾸는 다락방>의 이지성과 같이 상상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거짓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야. 그런 자기계발서는 '공상'하는 헛된 생각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는 사이비 종교에 불과해. 내가 말하는 "상상"은 앞선 얘기들을 조금 더 명확히 해보면, 포용력과 밝은 부분을 보는 날카로움이야.
나는 세아 네가 상상하는 사람었으면 해서 이 말을 남겨. 이제 일을 시작하면, 너무 바쁠지 몰라. 나의 약점이 오히려 강점이 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살 수도 있어. 어느새 '적당주의'로 돌아설 수도 있고, 그냥 '내 주변에 있는 일이 최고다'고 여기고 살수도 있어. 그러나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면, 그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야. 내가 진짜 바라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봤으면 하는 거야. 그런 세상을 상상하고,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옆에 있는 사람 손 잡고 연대해보자는 것이야. 앞서 말한 <복학왕의 사회학>에필요는 이렇게 말해.
"지방대생에게 필요한 것이 서사 능력이다. . 이야기하는 하는 사람은 문제에 처한 사람이다. 습속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이야기 할 필요를 못느낀다. 과묵하다.행동만 하다. 지방대생 주변에는 온통 이런 사람들 뿐이다.... 영원한 아이는 기존 질서에 다소 위협을 가하는 경이로운 무위, 영원한 아이는 가부장적이고 수직적인 구조를 수평적이고, 우애로운 구조로 대체한다. 영원한 아이가 힘을 쓰려면 습속에 갇힌 어른들 밑에서 기가 죽어서 살면 안된다. 세상밖으로 나가야 한다(<복학왕의 사회학>, 385) 중.
상상한다는 것, 그것은 이야기하는 것이야.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헤쳐나갈지 깊은 지혜를 발휘하기 위해, 내가 행복한 이야기를 인생에 쓰기 위해서 상상하는 거야. '눈감았다 뜨면 돈이 들어온다는 식'이 아니라, 지금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혹은 더 잘살기 위해서 여러 세상과 대화하는 그런 사람 말이야. 육아휴직의 회의를 느끼면 북유럽도 가보고,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모델을 보기 위해 일본도 가보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과 대화하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이야기로 만드는 그런 삶을 살기 바라.
처음 일하는 네게 상상하는 사람이 되길 기도하고 있어. 상상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야. 그래, 우리 함께 상상하자. 그렇게 상상하다며 행복한 삶을 함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나가자. 좁게 생각해서 울타리 안에만 있지 말고, 더 나은 삶이 있으리라는 기대와 쿨함으로 우리 스스로 행복하게 살아보자.
우리는 삶 속의 매일을 여행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삶 속의 매일을 여행 중이니까. 그 여행을 함께 풀어나가기 위해서, 더 넓은 곳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곳에 가보자.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더 많이 듣고, 만나고,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