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을 불어오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 『안녕들 하십니까?』, 오월의 봄

by 아포리스트
88만원 세대라 일컬어 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세대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 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왔을 뿐입니다.

- 첫 번째 대자보, 중-

대자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열다

내가 대학 4학년 때였던 2013년의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다름이 아니라, 대자보가 전국적으로 유행한 것이다. 당시 대자보의 인기는 대단했다. 2013년 12월 14일 토요일에 첫 대자보로 당시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의 재학중이던 주현우 씨의 “안녕들 하십니까”가 붙여진 이후에 전국에 천여개가 넘는 대자보들이 붙게 됐다. 4일 만에 ‘좋아요’가 23만개가 달렸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인기였다. 거기다 외국에까지 붙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버클리 대학 정치학과에 다니는 학생들까지도 이 대자보에 대해서 참여를 했고, 이들은 인터넷 팝케스트를 통해서 미국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자보를 붙이는 행위는 인터넷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였었다. 지금은 원하는 바를 인터넷에 개진하면 되기 때문이다. 과제나 필기도 컴퓨터나 태블릿 pc를 이용하는 세대에서 자필로, 그것도 큰 종이에 떡 하니 독자를 정해 놓지도 않은 대자보가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다.

주현우 학생의 대자보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재학중이던 이순영씨, 철학과 태경 씨 등에 대자보가 붙었고, 전국으로 자보들이 퍼져나갔다. 대자보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20대 개새씨론’을 주창했던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었던 입장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안녕들하십니까는 정치적으로 무기력해보이던 청년세대의 정확한 현실 인식이 반영이 되어 있다. 주현우 씨는 『안녕들 하십니까』 책의 인터뷰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자차하지만, 그럼에도 자살률은 떨어지지 않고,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은 가장 길며 실질 임금은 떨어져만 갑니다. 이 모든 것들이 99도의 상황을 만들어 간 것은 아닐까요?(494쪽).” 대자보는 애초에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첫 대자보는 철도 민영화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수 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내용, 단지 반대 의사를 표출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당한 사실을 묘사한다. 이 문제는 사실 ‘노동’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끌어내었고, 양극화 문제를 잡아 내었다. 이들이 본 것은 사회적 약자가 되는 현실, 그 가운데서 그 약자가 되기를 피하고, 문제를 지켜보라고만 강요했던 사회가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그동안 ‘침묵’하고만 있을 줄 알았던 청년세대는 이 “안녕들하십니까”를 통해서 빠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말 속에는 그동안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라고 하는 청년세대의 외침이 담겨 있다.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청년들은 정치와 경제를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도 침묵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말 잘 듣는’ 청년들을 기르겠다는 일념으로 강요받았다는 것이 주현우 씨의 글의 내용이다. 사실 글이 아무리 좋아도, 공감을 사지 못하면 이렇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억눌려온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수 있다는 데서 대자보는 그 힘을 발휘했다.



서울 안녕들 하십니까.jpg 서울 광장에 붙었던 안녕들 하십니까.

반(semi) 익명성의 커뮤니케이션, 페미니즘과 대나무 숲까지

자보의 역사는 길다. 과거부터 ‘방’이라고 하는 광고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필요한 바를 알려왔었다. 물론 과거에는 매체의 발달이 더딘 측면도 있었다. 최근커뮤니케이션의 발달 정도로 생각했을 때는 대자보라는 방식이 정말 필요한지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인터넷과의 차별성이 있다면 오히려 인터넷 글보다 훨씬 더 깊이 있게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가 있도록 만드는 힘이 대자보에는 있다. 나는 그 이유가 대자보가 매체로서 가진 장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반 익명성’이다. 대자보는 아주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대자보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실명-비실명을 택할 수 있는 것이 대자보가 가진 매력이다. 자신의 소속을 소개함으로 인해서 글이 진실성 있게 읽힐 수가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름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름만 공개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익명성의 방식 덕분에 대자보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다. 대자보의 인기는 익명성의 극단을 넘어서는 과정이었다.

대자보의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은 사회적 약자들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쉽게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자보가 대학생들에서만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자보를 붙이는 주체가 대학의 청소 노동자, 비정규직 콜센터 직원 등 지금까지 소외됐던 소수자들이 모두 대자보를 붙이게 된 것이다. 대자보를 붙이는 이들은 그동안의 사회적 억압에 소외됐던 이들이 상당수 포함이 되어 있다. 대학생들 역시도 사회에서 말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었던 점에서 대자보는 ‘을의 반란’으로 비춰지기 까지 했다.

대자보는 감히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했던 내용들에 대해서 용기 내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대자보의 필자들은 ‘갑’이 ‘을’이었다. 후에 여성주의 담론에서도 설명하겠지만, 대자보를 통해서 지금까지 ‘갑’에 눌려서 말할 수 없었던 을의 이야기를 담을 수가 있다. 을들의 한 맺힌 이야기는 어디에 실릴 수가 없다. 을들의 이야기는 인터넷이나 술자리에서 토로하는 하소연 같은 것이다. 그런 하소연은 갑에 의해서 감춰질 때가 많다. 거짓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히 진실이 있다. 대학에서는 현재까지도 수많은 대자보들이 붙어가고 있다. 또한 대자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현재까지 강하게 대학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대자보를 매체로서 잘 이용하는 곳이 현재 한국사회의 ‘젠더문제’를 다루는 곳들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젠더 문제를 드러내는 데 아주 좋은 도구로 사용이 되고 있다. 또한 대자보의 형태는 인터넷으로 바뀌어서 “대나무숲”이라는 매체로 사용이 되고 있다.


대자보는 시들해졌는가?

사실상 최근에 이러한 대자보가 시들어졌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대자보가 이렇게까지 큰 인기로서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자보의 존재가 2013년보다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거대한 사회적인 힘을 발휘할 때는 지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상 공신력과 전문성 면에서 대자보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자보의 존재는 세상 저 먼곳으로 가버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대자보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들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여러 사람들을 독자로 하다보니, 한 곳에 힘이 집중이 되기 어렵다. 또한 대자보에서 다루는 문제들이 워낙 거시적인 문제들인지라서 연대가 어렵다. 비정규직, 양극화 문제 등은 사회가 모두 힘을 합쳐서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들이다. 이 때문에 대자보 몇 장이 붙어지고, 청년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하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또한 어른들 역시도 집중하기 어려운 문제고, 이 구조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대자보를 통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길 바라는 것이 우스운 생각이다. 다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청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은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 대자보는 대학생들과 청년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꾸어 낸 것이 두 번째 의의다.



요약하기
1. "안녕들하십니까"는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2. 페미니즘운동에서, 대자보가, "대나무숲"을 통해서 인터넷 자보가 활용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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