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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포리스트 May 07. 2018

[편지 1] 선한사마리아인

그 무엇보다, 누구보다 사람이 귀하니라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

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

<누가복음 10장 25-41절>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온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다. 율법교사는 예수께 묻는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말이다. ‘영생’을 얻는 비결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설명하신다. 그리고 이 비유를 예수님이 설명하신다.

어릴 적에 이 얘기를 들으면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나쁜 놈’이었다. 죽어가는 사마리아인을 살리지 않고 지나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성경 주석학을 공부하면서 제사장과 레위인이 어찌보면 ‘평범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나친 성경적인 이유는 당시에 시체와 접촉을 금지했던 종교적 규율(레 21:1) 때문이었다. 또한 문둥병이나 시체 혹은 피와 고름을 만졌을 때, 제사장의 지위를 박탈당할 수 있는 율법(민: 2-4) 때문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그들은 지금으로 하면, 교회에서 ‘지키라는 것’을 잘 지킨 사람들이었다. 지금 교회에서 하는 선한 것들은 ‘금주’ ‘혼전순결’, ‘주일 잘지키기’, ‘교회에서 봉사하기’ 등이다. 그러한 것들을 잘지키면서 사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오히려 피 묻은 ‘불결한 것’을 멀리했던 사람들이다. 오히려 속으로는 “내가 양심에 찔리지만 하나님나라의 율법을 잘 지켰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래, 우리가 평소 가지고 사는 하나님 나라의 율법들을 잘 지켜나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큰 계명은 따로 있다고 설명하셨다. 그것은 어느 율법보다도 사람이 위에 있음을 선언하신 것이다. 죽어가는 이를 모른 채 한 율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피를 손에 묻혀 ‘불결해지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 하나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 것이다.

결국 이 비유는 ‘졍결법을 지키는 율법’보다는 ‘죽어가는 이를 살리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의 강령이었다고 마태복음에서는 말씀하시지 않는가(마태 22장 34-36).

그래서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셨다. 당시에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사람을 택하셨다. 사람 하나의 생명보다 귀한 것이 없음을 만 천하에 선언하셨다. 그래서 “내 몸이 손해”보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을 택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것이다. 어떤 율법과 계명보다도, ‘한 사람’이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다. 소중한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비유에서도 출신이 천한 사마리아인이 오히려 하나님나라의 이웃이라고 함을 받았다. 그 누구든지 하나님나라의 운동에 참여해서 한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라면, 하나님나라의 이웃인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네 주변에 많기를 축복한다. 네 힘에 겨울 때, 세상이 만들어놓은 규율과 무게에 눌리지 않고, 너를 살릴 사람들이 많기를 축복한다. 너도 그 사랑을 받아 또 다른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를 축복하고, 기도한다.  

2015년 어느날 동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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