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의 크루 에세이 12] 때로 밀려오는 감정을 어떻게 마주하나요?
때로 밀려오는 감정을 어떻게 마주하나요?
조금 웃긴 말일지도 모른다. 감정에 이성을 끼얹는다는 건. 하지만 이제는 그게 답인 것 같다. 그렇다고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잠깐 앉아 쉬던지 아니면 앞에 있는 선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넘던지 방법은 둘 중에 하나였다. 물론 그 어떤 것도 좋다. 내가 나에게 억지로 무언갈 강요하고 따르라고 하긴 싫다. 그저 어쩔 땐 내가 내 안에 갇혀 힘들어하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3호선 버터플라이의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고, '이 책은 정말 안 읽혀'라며 작가와 대결하듯 데미안을 읽다 5장을 체 넘기지 못하고, 적당한 드립 서버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라도 했을 것이다. 조금은 평소보다 무덤덤하게. 하지만 나의 일상은 그대로.
요즘 내가 내린 결론을 그렇다.
예민함과 기민함.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몇 단어 중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 비중을 차지하는 단어이다. 그러고 싶진 않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눈치가 빠르며 필요 이상으로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캐치하고, 행복함을 조금 더 행복하게 그리고 슬픈 것을 조금 더 슬프게 받아들이는 재주가 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적 면모에선 이 능력이 아주 크게 도움이 된다. HSB 수치를 하나씩 올리며 컬러를 초이스 하거나 1px의 디테일한 것들을 만지며 퀄리티를 올리는 등 작업하며 도움을 받는 부분이 꽤 많다. 어떤 책에서는 예민함을 '신이 주신 또 다른 능력' 이라며 찬양한다.
하지만 이런 능력은 예상치 못한 오작동을 일으킬 때가 있다. 조금은 무덤덤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을 극대화하여 지레 겁을 먹고 숨어버리게 만든다던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작이 너무 어렵다던가, 다른 이들의 비언어적인 것들에 집중하게 만들어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등 또 다른 문제 상황(?)을 야기하기도 한다.
게 중에 제일 힘든 것은 바로 스스로의 감정 조절인데, 시야가 넓고 조그마한 것들에도 크게 반응하는 나의 감정을 스스로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있다. 특히나 이번 글의 주제처럼 감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때는 어찌할 줄 모르고 이에 휘둘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이십몇 년을 그렇게 살다 보면 익숙할 법도 한데, 여전히 쉽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던가,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또 그렇게 힘들어하며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는데 문득 나 스스로가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이 너무 짜증 나며 지겨웠었다.
남들이면 그냥 지나갔을 법한 이 상황에서 나는 왜 매달리고 힘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이런 지속적인 문제로 힘들어하며 오늘 계획했던 일들이 다 수포로 돌아가야 하는지 문득 대상을 알 수 없는 억울함(?) 같은 것이 마음속에 꿈틀거렸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 친구를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맞이해야 한다는 게 좀 아득하기도 했고.
스스로를 속이려고 한 건 아니었으나 조금은 그렇게 되어버렸고, 결론적으로는 효과가 있었다.
반응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카타 토 아우토(kata. to. auVto). 이 시기쯤 묵상을 하며 알게 된 말이다. 헬라어로 '늘 -그랬듯이', '-했듯이', '평소와 같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을 마음을 다 잡으려 주문처럼 열심히 외우고 다녔다. 성경 속에서 이 단어가 쓰이는 맥락과 상황이 내가 사용하는 맥락과는 조금 다른 듯하였으나, 그냥 그 자체로 힘이 되었다. 삶의 멀미가 끊기는 듯하면서 끊기지 않는 이 진득한 아홉수의 터널을 걸어갈 때 참 도움이 많이 됐고, 지금도 그렇다.
나를 방해하는 감정이 느껴져도 반응하지 않는다. 존재감은 확실히 느껴지지만 고개를 돌리고 조금은 무시 한 체 '평소와 같이' 나의 일상을 그대로 살아간다. 불편함이 느껴지긴 하지만, '아...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긴 하지만 잠깐 옆으로 치워두려 노력한다. 몸을 일으키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아무렇지 않게 동료와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고, 책을 읽는다. 일종의 연기였다.
말투도 평소보다 조곤조곤, 리액션도 차분하게.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나는 감정이 육체를 지배하니까) 나처럼 눈치 빠른 이들은 요즘 힘든 일이 있냐며 물어왔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멋쩍게 웃는다. 주위에 힘들다며 찡찡대지도 않았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 때는 펜을 들어 일기를 남기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짧은 글들을 남겼다.
어느 날 내 안을 빙빙 도는 이 움직임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용기가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되지 않을까?' 주저앉아 잠깐 쉬던지, 아니면 어색하게라도 앞으로 다시 걸어가던지. 아까운 내 시간들을 흘려보내기 싫어 시작한 일종의 연기였지만 나의 일상을 다시 제 궤도에 올려줄 만큼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위에 적은 것처럼 진득한 아홉 수를 보내던 근래에 여러 이들이 남긴 글들을 많이 읽었으며 나의 생각도 많이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좋아하는 글은 애써 무시함의 연기가 아주 열심이었을 때다. 잠이 오지 않아 메모장에 남겨놓았고 이를 수기로 옮겨 침대 머리맡에 붙여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은 유익이며
구속은 평안이며
낙심은 믿음이지
요즘 내가 내린 결론을 이렇다.
다음 크루에게 던지는 질문
나의 솔직한 감정이 나오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 기분이 편안해지는 나만의 장소를 한 주 동안 찾아볼까요?
• 휴식을 위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 무엇을 할 때 가장 잘 쉬었다고 느끼나요?
• 요즘의 나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