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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Aug 22. 2018

[에세이 21] 미루다간 진짜 병나요.

[클로이의 크루에세이 02]

(이 글엔 영화 '공작'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주일 전, 첫 출근을 기념하며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가졌다. 모처럼의 여유시간 이었기에 저녁도 먹으며 영화까지 보는 호사를 누렸다. 평소 유독 첩보물, 스릴러물을 좋아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영화 '공작'을 티켓팅했고 결과는 역시나 성공적이었다.


극사실적인 프로덕션 디자인과 황정민과 이성민의 인상적인 연기, 총질과 몸싸움이 벌어지지 않아도 극을 전개하는 긴장감등 나에게 공작은 훌륭한 영화였지만, 영화가 끝나고 내 머릿속에 남은건 황정민의 대사 한줄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싸웠던 것일까?'


그래.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도 싸웠던 것일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내가 과연 이 물음에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왜 아직도 스스로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일까. 과연 나 스스로가 나의 행복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것일까.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걸어나오면서 부모님껜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찝찝한 마음과 이별할 수 없다.




살다보면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고 한다. 손가락하나 까닥하기 싫어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고만 싶을때. 슬픔의 늪에 빠져 다른 것들이 보이지 않을때. 노래 제목처럼 그냥 내가 사라져 버렸으면 바랄때.


_

작년 겨울, 일년 동안 기를 쓰며 달려왔던 졸업전시가 끝나고 나의 상태는 위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다. 드디어 졸업할 수 있다는 안도감은 잠시, 일주일도 체 지나지 않아 우울감과 허무감이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집에만 있으면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것 같아 억지로 집 앞 카페로 무거운 몸을 이끌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 이거 예삿일이 아니구나..'


_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려야했다. 나는 대한민국 취준생이였고, 취업준비는 졸업 전시에 떠밀려 하나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루에도 몇번씩 이 세상에 없는 날 생각했고,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작업만 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난생 처음으로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은 날이 있었다. 이른 일정 때문에 새벽 5시쯤 집을 나선 그날, 하늘에서 펄펄 흩날리는 눈을 보며 작게 탄성을 질렀다. 왜 눈이 '소복소복' 쌓인다고 표현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만큼 적막한 가운데 눈이 내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거짓말처럼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가수가 자살했다는 기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실인가 싶어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 안돼. 난 이렇게 버티고 있는데'


_

해가 지나고 2018년이 왔다. 전혀 반갑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행복일지 뭘지 모르는 신기루같은 목표를 향해 일주일에 몇번씩 밤을 새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떠오르는 '내가 여기서 잠도 못자며 왜 이래야 하지?'라는 생각을 짓눌렀다. 그리고 스스로의 고개를 꺽어 정면에 있는 목표를 바라보게 했다.

'조금만 참으면 돼. 이것만 지나면 행복해 질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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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효과는 뉴스에서만 보던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자살은 나에게 긴 여운을 남기는 중이었다. 대학 시절 매 학기마다 23학점 이상을 들으며 잠을 못 자던 그때, 나는 그때도 언제올지 모르는 행복을 위해 노력중이었다. 잠들어 있는 밤보다 깨어있는 밤이 많았던 그때, 그가 진행하는 심야라디오를 들으며 작업을 했었다. 라디오가 좋아지니 사람이 좋아졌다. 좋아하는 향, 혼자만의 시간, 여행보단 집.. 서로의 공통점을 맞춰보며 ‘이 세상에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좋아했었다. 그 자체로 위안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유해졌고, 나는 여전히 언제 올지 모르는 행복을 위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괜찮은 척 하며 애써 모른체했다.

'괜찮아. 살면서 누구나 다 이럴때가 있다고 하잖아. 이것만 지나면..'


_

더위가 조금씩 느껴지는 막바지 봄. 고지가 눈앞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노력한 나를 알아만 주는 것 같았다.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기업의 최종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일주일간 다시 잠도 못자고 열심히 준비해갔다. 내가 찾던 행복을 드디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렁차게 1분 자기소개를 했다. 평소 나약하고 떨리는 모습은 청심환의 힘을 빌려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다. 앞에 앉은 높으신 분들이 나의 이력서를 읽었다. 칸칸마다 적혀있는 나의 노력들을 바라보며 놀라워한다. 나에 대해 궁금해 한다. 입사를 하면 무슨 일이 하고싶냐고 물어본다. 우리 기업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시그널을 준다. 걱정했던것이 무색하리 만큼 면접은 잘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 빠진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찾고 찾던 행복은 여기서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절망적이었다. 정말 절망적이었다.

' 난 여기가 마지막이라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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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해 달려왔던 것이었을까. 아님 나는 쫒기고 있던 것일까. 누군가의 말을 듣고, 스스로의 마음에 집중하지 못한 체,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행복을 위해 미루고 미루며 살아왔다. 그리고 내가 찾던 행복이 그 곳에 없다고 두 눈으로 확인한 후, 이때까지 미뤄왔던 것들이 거대한 폭풍이 되어 한꺼번에 날 덮치기 시작했다. 할 일이 없어도 잠이 못 드는 날들이 반복되고, 방금들은 말도 잊어버릴 만큼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바보가 되는 것만 같았다.




조금은 쉬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충고를 듣고, 일단 잠을 제대로 자려고 노력했다. 그렇게도 자고 싶어했던 잠이었는데, 이제는 잠을 자려고 노력하다니 이게 뭔가 싶었다.


아주 잠시 동안이라도 노트북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목표도 없었다. 오늘 뭘 해야 한다는 스스로 괴롭히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강아지와 방바닥에서 뒹굴거리며 잠만 잤던 날들도 있었다. 그렇게 1주, 2주, 3주..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것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며 책상을 조립했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평소 생각해왔던 것처럼 책상과 따스한 조명으로 방 분위기를 바꿨다. 생활이 느긋해지니 아침에 일어나 30분씩 커피와 차를 내려 마실 수 있었다. 엄마와 함께 동네 공방을 다니며 뜨개질도 배웠다. 좋아하는 향초를 피워놓고 평소 읽고싶었던 책을 가득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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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달 후, 최종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미 몸과 마음이 아펐던 와중이어서 그럴까. 아님 내가 찾던 행복이 없단걸 확인해서 그럴까. 생각했던 것 보다 힘들지 않았고, 아쉽지 않았다.


1년, 2년, 3년... 내가 쌓아야 하는 커리어를 적어놓은 노트 옆 부분에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분 동안 고민하면서 적어내려 간 건 ‘멀리 여행가기’ 정도였다. 빼곡히 적힌 옆 부분에 비해 너무도 텅텅 빈 모습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미루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하기 싫으면 싫다고, 하고 싶으면 싶다고 스스로게 여유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루다간 병 난 꼴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했다.


이제 무얼 해야하는지 알고 있다.






안녕하세요. 클로이 입니다. 두 번째 에세이는 거창한 주제가 아닌 그저 제가 겪었던 일들을 덤덤히 적어보려 했어요. 대단한 글은 아니지만, 진심을 담으려 노력했네요. 모두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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