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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Aug 26. 2018

[에세이 22] 현재 < 미래?

[하비에르의 크루에세이 02]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학기 중에 수업 따라가려면 방학 때 미리 배워야 한다.’

‘대학교 가서 실컷 놀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열심히 공부해라.’

 학창 시절에 정말 흔히 들었던 말들이다. 


 지금을 즐겁게 잘 보내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나중을 위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배워왔다. 그럼 대학교에 와서는 현재를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아마 겉으로 그랬을지는 몰라도 마음 한쪽에는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 무게를 떨쳐내지 못한 사람 중 하나였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려고 부단히 노력헀지만, 나도 미래를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막연히 CEO가 되고 싶다는 커다란 꿈을 가진 뒤부터는 불안함에 한 시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창업경진대회에 지원하고, 컨퍼런스를 직접 기획해보고, 조직에서 일을 체계적으로 하는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그 노력의 대가로, 대기업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 작은 결과물도 도출해냈다. 하지만 결과물들에도 새로운 불안감은 끊임없이 생겨났다. 대체 어느 정도까지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대 초반, 나는 여전히 미래에 대해 대비를 하던 중이었고 여름방학 때 세 가지 인턴의 기회가 찾아왔었다. 일하고 싶은 기업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일할 기회들이 찾아왔다. 한 번에 찾아온 기회들 덕분에 매시간, 매분이 고민으로 가득 찼던 기간이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도무지 결정이 내려지지 않아서 부모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다.


“굳이 벌써 일을 해야 해?” 


 당연히 함께 기뻐해 주실 줄 알았던 부모님의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일은 앞으로 하기 싫어도 평생 하게 될 거,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을 해보라는 답변에 오히려 고민만 훨씬 복잡해졌다.

이런 자초지종을 16년 동안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친구에게 털어놓게 되었다.


“너는 지금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거냐?”


“나는 그냥 나중에 가족들이랑 여행 가고 싶을 때 떠날 수 있고 친구들한테 맛있는 거 사주고 싶을 때 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건 미래의 행복이고 지금은 네가 뭘 해야 행복하냐?”


“…”


 여기서 말문이 탁 막혔다. 정작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내가 행복할지 알 수가 없었다. 솔직히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과정들까지 행복하지는 않다. 단지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했기 때문에 인내를 가진 것뿐이었다.


 그래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을 해보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되새김질해봤고, 엄마와 두 달간 홀연히 한국을 떠나 여행을 하기로 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엄마와 여행하기로 결심을 한 데에는 나름대로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렇게 방학을 보내면 남는 게 하나도 없겠다 싶어서 불안한 마음에 예매 변경 문의도 몇 번이나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것이었고 그 용기는 지금의 내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는 걸 아셨던 것 같다.     

 한식을 그리워하는 엄마를 위해서 가끔씩 하루를 컵라면과 함께 마무리했다. 특히나 부다패스트 야경을 보며 함께 컵라면을 먹었던 밤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니까 이 시간을 가져야 했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이미 해야 하는 일들이 정해진 하루를 시작하는 대신에 어떻게 하루를 채워갈지 고민해 볼 수 있었고 매일 눈을 감을 때면 내일에 대한 걱정보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오늘에 충실할 수 있던 나날을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었다는 게 감사했다. 나중에는 돈이 있으면 시간이, 시간이 있으면 체력이 이만큼 안 될 것 같아서 ‘지금이 아니면 진짜 안됐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와 현재 모두 중요한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누리지 못할 행복들을 막연히 미래만 보고 가다가 놓치기에는 그 기회비용이 너무나도 크다. 지금 미래를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나중에 지금을 돌아봤을 때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알게 된 이상 나는 인생 2회 차인 사람인 듯이 오늘도 알차게 살아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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