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영의 크루에세이 03]
안녕하세요. 돌아온 제이영이에요. 이번 에세이에서는 지난번에 약속했던 대로
나를 만나러 가는 방법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해요.
지만갑(지금 만나러 갑니다) -> 나만갑(나를 만나러 갑니다)
지난 크루 에세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 참고
https://brunch.co.kr/@visionary0115/22
이번 글에서는 아래 목차대로 제 이야기를 담아 볼까 해요.
나는 왜 대학원에 가지 않았나
왜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한가?
관찰일지 쓰는 방법
관찰일지 쓰면서 만난 나의 모습
대학교 3학년 말, 나는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문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뭔가 더 전문적이고 싶었다. 그래서 보통 교대를 가면 흔히 밟는 수순(교대 졸업 ->임용고시 응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를 거부하고, 항상 학부 마치면 미국으로 대학원을 바로 가야지(사대주의) 하는 마음이 있었다. 대학원만 가면 저절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있었던 것 같다. 어쩄든 그 당시에는 대학원 진학이 내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 몇몇 대학원에 원서를 냈고, 그 중 몇 군데에서는 화상으로 인터뷰를 해야 했다.
대학원 인터뷰가 예상대로 흘러갔다. 대부분의 질문들이 기본적으로 SOP(학업계획서)에 기초한 질문들이었다. 한 번쯤은 생각해봤던, 보다 논리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하기 위해 답변을 미리 준비했던 것들이라 어렵지 않았다.
‘왜 이 주제에 연구하고자 하는가?’
‘나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있는가?’
‘왜 이 학교가 아니면 안되는가?’
‘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고 싶은가?’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남자 면접관이 일반적인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고 나는 당황했다. 요즘 내가 가진 걱정이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지 등의 간단한 질문들이었다. 나는 멘붕 상태가 되었다. 영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할 말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아 망했다'라는 생각과 함께 당황한 상태로 떠오르는대로 주절주절 말했다.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나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 대학원을 가려는 게 순전히 내 의지가 맞는 것일까?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무엇이지? 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달리기 했는데 낭떠러지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커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영위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 없이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사회에서 주어진 틀에 나를 맞추려고 한다. 그 틀에 맞추려고 하니까 계속 공허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애초에 자기에게 맞는 고유한 삶의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검증된 성공 틀에 나를 끼어맞추려고 애를 쓴다.
자기가 만들어나가는 주체적인 삶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철학자 밀이 그랬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우리는 밀처럼 자기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욱 잘 알기 위해, 관찰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관찰일지란 어떤 객체에 대해 자세히 관찰하는 일일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초등학생 때 관찰일지를 써본 경험이 있다. 어렸을 적 매미를 잡아서 일기장에 붙여놓고 더듬이 숫자, 다리 숫자 관찰하듯이 나를 관찰하는 관찰일지! 그렇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관찰해야 하는가?
준비물 : 노트, 필기구, 양키캔들(옵션)
직접 걷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헬기투어를 할 수 있는 백만장자라도 빽빽한 숲속 누군가가 쉬어가라고 만들어놓은 자리, 나무들 사이에서 자라는 작은 꽃들, 이런 것들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투자하여 직접 그 산을 올라야만 한다.
나를 관찰하는 것 역시도 그렇다. 나에 대해 ‘직접’ 생각해보고 시간을 투자하여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나를 발견할 수가 있다. 그 쉬운 첫걸음의 시작이 바로 ‘나에 대한 기록’이다. 지난 시간에도 말했듯이 발견의 의미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다.’이다. 이미 내 안에 존재하지만 못 찾았다는 것이다. 발견하려면 눈에 보여야 하는데, 내가 가진 생각이나 가치관들은 생각 또는 아이디어로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했다가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끄집어 내야 한다. 기록을 하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발견이 쉬워진다.
관찰일지는 그냥 일기랑은 다르다. 일기(diary)는 그날 있었던 일에 관해서 쓰는 거라면, 관찰일지는 (Journal)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이전에 했던 경험, 또는 이전에 들었던 생각에 대해 시공간을 초월해서 쓰는 것이다. 또한 오로지 나에 관해서 쓰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므로, 나에 관해 아주 솔직하게 써야 한다. 시작이 어렵다면 질문들을 하나씩 적어놓고 그에 대한 대답을 써보는 게 좋다. 쓰는 과정에서 생각을 하게 되고, 이 일지들 하나하나가 쌓이게 되면 이게 나에 대한 자산이 된다. 쓸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기록에 나타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되니 자기 확신이 커지며, 자존감이 높아진다. 또한 요즘 내가 왜 힘들까, 왜 내 삶의 질이 이렇게 낮을 수밖에 없지, 이전에 힘들 때는 어떻게 했지 에 대한 생각들을 하면서 문제가 명확하고 명료해지며 내 삶을 내가 주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원래 이 방법은 미국인 친구가 알려줘서 여행 갈 때마다 기록하는 방법이었는데, 일상에도 적용하면 좋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 최근 읽은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일기를 쓴다는 것에 착안하여 아침에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만듦과 동시에 정신이 또렷한 상태에서 나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디 킴의 '너 사용법'을 참조하여 나 관찰법으로 패러디해 적어봤다.
<나 관찰 법>
-나 관찰하는 설명서
매일 한 번씩 쓰시오.
30분에서 1시간은 앉아서 쓰시오.
그날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시오.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시오.
기록들을 살피면서 삼개월간 내가 발견했던 나의 모습들을 간략히 적어 보았다.
0.열등감이 많은 나를 마주했다.
내 인생 우울했던 시간들을 구체적으로 써 보았다. 남자친구한테 차이고 그 친구 SNS를 계속 들락나락거리던 시절, 동일한 시험에서 두번이나 떨어졌던 때도 있었다. 특히 해외여행을 할때는 느끼지 못하는 불안감과 열등감을 왜 한국에만 돌아오면 느끼나 나자신에게 물어보니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나 떄문이었다. 내 친구는 첼로도 잘 키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중국어도 원어민처럼 하고, 집도 잘 살고 우리집은 왜 그렇지 못할까 시샘하고 질투하고 있었다. 내가 감사했던 순간들을 적으면서 나도 가진게 많은데 내가 가진 것보다는 못 가진것에 집착하는 태도 때문에 나를 불행으로 이끌고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 부모님도 나에게 최선의 것만 해주려고 노력해셨는데 내가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지 못하고 있었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다고 모두가 다 훌륭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나쁜 환경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삶이 공정하지 않은데서 출발하는 건 맞지만 초기설정값이 완벽한 삶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다 나의 선택인 것이다.
1.남 탓만 하고 있는 나를 반성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모든 것을 제도탓으로 돌리며 불평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수업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교수,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금방 나올 수 있는 단편적인 지식들만 전달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불평만 하고 있었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좀 더 사람을 만나고, 더 시간을 가치 있게 쓰지 못한 나를 보게되었다. 불평을 하는 대신 나는 무언가 했어야 했다. 세상이 바뀌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결국 바꾸고 싶다면 내가 먼저 변화해야하는 걸 깨달았다.
2.실천하지 않는 나(=말만하는 나)를 자각했다.
큰 목표만 거창하게 세워놓고, 실질적으로 아무런 실천을 안하고 있는 빠가사리같은 나를 발견했다.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나열해보니 이렇게나 멋진데, 내가 하고있는 것들을 옆에 적어보니 형편없었다. 나를 꾸짖고 나서 나는 하루하루 완벽한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기적인 비전에 맞춰 그것을 쪼개고 그날그날 해야하는 것들을 계획했다. 완벽한 하루도 못 보내면 무슨 일을 해낼거냐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매일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계획한 일들을 해내려고 노력중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관찰일기를 쓰고, 조깅을 하고, 이동 시간에 내가 관심있는 분야인 교육에 관한 책과 논문들을 읽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다.
3.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다.
1일 1글은 쉬운게 아니었다(온 세상의 글을 매일매일 쓰는 기자들, 블로거들을 존경합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서 쓰는 것은 정말 힘들다. 하지만 66일이 지나야 습관이 든다는 말을 느끼면서 이것도 못해내면 내 인생 ㅈ되는것임의 절실함으로 매일매일 했다. 관찰일지를 쓰면서 꺠달은 것들은 꺠달았다고 해서 끝나는게 아니었다. 내가 고쳐야 할 것들, 나의 장점이지만 더 극대화시켜야 할것들 이 모든 것들은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지난 3개월은 한번에 무언가를 이뤄 내고 싶어하는 도둑놈같은 '나'와 굼벵이같은 속도로 변화하는 '나'의 싸움이었다. 마음을 먹는다고 오늘 하루했다고 해서 변화가 바로 오지는 않는다. 꾸준함이 핵심이다. 나는 메주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숙성중이다. 메주는 숙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변화는 쉽게 오지 않는다. 조급해 하지 말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4.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나를 응원하고 있다.
사회가 규정한 틀에 나를 맞춰 가려고 하니까 힘들다는 것을 꺠달았다. 대학교 입학전에도 대학교를 왜 가야하는가 질문이 선행됬어야 했다. 그런 생각이 없이 사니까 대학원도 아 내가 부족하니까 대학원을 가야지라는 무조건반사적인 생각으로 살고 있었다. 요즘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내가 행복하게 생각하는 삶에 대해 고민중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안녕하세요! 돌아온 제이영이에요. 저는 요즘 아침 5시에 일어나서 향초를 피우고(미드나잇이 진리) 관찰일기를 쓴다음 조깅을 하러 나가요. 다시 습관으로 정착시키는데 거의 한달이 걸린 것 같아요. 관찰일지를 세달동안 하고나니 이제는 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예요. 관찰일지를 쓰기 전에는 몰랐던 내 모습도 발견하게 되고, 불안정하지만 내가 원하는 미래에 대해서 조금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저는 요새 제가 설계한 제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중이에요. 고되기는 하지만 제가 선택한 일이고 너무나 즐거워요. 다음에도 나만갑시리즈로 찾아뵐 예정입니다. 다들 좋은 한주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