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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Sep 11. 2018

[에세이 24] 잘 쉬고 싶다.

[허승의 크루에세이 03]

오늘은 내가 제일 못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바로 휴.식.


사실 나는 어떻게 휴식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살면서 휴식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

생각해보면 이런 사고관을 갖게 된 것은 군대를 다녀온 이후였다.

안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고, 밖에 나가면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 해외 교환학생을 가고싶어, 전역하자마자 영어 학원을 끊었다.

부족했던 학점을 보충하기위해 학원과 학과 수업을 동시에 들으며 다녔다. 당시엔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서 버스 안에서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수업을 들었다.

틈틈히 복학 후 있을 면접 준비까지 3가지를 동시에 하며 두어 달을 보냈다.


-

복학 후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한 이후에는 새로운 목표인 학점 상승을 위해 열심히 달렸다.

입대 전 다녔던 학과실, 동아리실보다 도서관을 더 자주찾게 되었다.

이때만 해도 나 자신이 그냥 흔한 복학생 버프를 받아서 열심히 달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몇 달 뒤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가게 되면, 그곳에선 조금 숨을 고르며 지낼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나는 또 의미있는 무언가를 찾으며 열심히 달리고있었다.

한국문화 클럽을 새로 만들고, 밤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틈나면 여행을 갔다.

그렇게, 1년 간의 교환학생 생활도 달림의 연속이었다.


-

교환학생을 다녀오니 졸업반에 가까워져서 그런걸까, 열심히 사는 삶에 대한 압박이 더 심해졌다.

갔다오기 전보다 하고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결국, 대외활동, 인턴쉽 같은 것을 찾아서 해보기 시작했고,

마지막 학기에 열심히 취업 준비를 병행해서 관심있어하던 기업에 취업까지 하게 됐다.



사실 이정도면 멈출줄 알았다.

이제는 숨을 고르고 걷게 될 줄 알았다.



-

그런데 직장인이 된 지금, 나는 아직도 달리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전 공부를 하고, 퇴근하고 남아서 공부를 하고, 주말에도 약속이 없으면 카페에 나가 공부를 한다.

(때로는 나 자신이 수험생인지, 직장인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 속에 휴식은 없었다.

사실 휴식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할 줄도 몰랐다.

그냥 하루 날 잡고 3시간 정도 자는 것이 휴식이라면 휴식이었다.


-

결국 몸에 이상이 왔다.

4년간 누적해서 뛰어온 몸의 어깨와 목은 굳어져갔고, 눈은 점점 충혈되어 갔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깨가 너무 아파 기지개를 못할 정도가 되었다.

결국 살기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어쩌면 몸을 낫게하기 위해 휴식이 아니라 운동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휴식 보단 낫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휴식은 그 정도로 나에게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

그러다 며칠전부터 이번에는 머리에 신호가 왔다.

퇴근 후 공부를 하려니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모니터가 눈에 들어오지않았다. 정신이 자꾸 아득해졌다.

'내일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똑같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렇게 2주가 지났다.

왜 그런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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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꾸역꾸역 버티기만 할뿐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운동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운동은 매일 하고 있었다. 이제 몸은 아프지 않았다.

주변에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니, “너무 달려서 그래, 좀 쉬어”라는 조언을 받았다.

쉬어야 하는 생각을 못해봤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쉬어야하지?'

'아무것도 안하면 되는건가?'

'그러면 괜찮을까?'


-

그래서 일단 며칠 동안 무작정 쉬어봤다.

몇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해보기도 하고 잠도 잤다.

더 무기력해졌다.


-

아무것도 안할려니 좀이 쑤셨고, 초조해졌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스마트폰만 만지며 시간을 허송세월 보냈다.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라는 생각만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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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생각이 사라지며 쉰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이렇게 쉬는 게 쉬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변에 다시 물어보았다.


'다들 어떻게 쉬어?'

돌아오는 답변은 '그냥 가만히 있어.', '집에서 누워있어.', ' 잠 자.' 등 죄다 해본 것들 뿐이었다.

결국 구글과 유튜브에 “잘 쉬는법”을 검색해보기까지 이르렀다.


-

그러다 한 영상을 보고 조그만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지난번 '베이시스트와 테니스에서 배운 것'​이라는 글에서도 그랬지만, 난 참 영상을 보고 잘 깨닫는 것 같다.)


영상은

"휴식이란 것이 단순히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하루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휴식을 가질 수 있다.

청소가 되었든, 멍때리기가 되었든 중요한 것은 자발적인 선택이다. "

라는 내용이었다.


머리를 한대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휴식은 단지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이지, 무언가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못했다.

나에게 휴식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어쩔수 없이 했던 선택들이었다.

어쩔수 없이 잠을 잤고, 어쩔수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 선택들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점점 더 늪에 빠지게 만들었다.


-

이제 마음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몸이 피로하다고 해서, 머리가 백지가 된다고 해서 멍을 때리고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보거나, 다른 공부를 해보거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휴식을 취해 보기로 했다.


이제 시작이다.

아직도 머릿속은 하얗다. 사실 글을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실마리를 1cm정도 잡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계속 주변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고장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왕 계속 달릴거, 고장나지 않고 달리고 싶다.

진정한 휴식을 취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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