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니의 크루에세이 04]
1월 너리 달력의 질문,
새해 두 번째 타자로 난 이 질문을 꼽았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올 한 해 꼭 이루고 싶은 단 한가지는 무엇인가요?
2018년은 스스로를 너무 수고했다고 안아줄 수 있을 만큼 값진 해였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내가 해보고 싶었던 분야에서 일도 시작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고, 닮고 싶은 좋은 사람들도 얻었다. 그런 해를 아쉽고 뿌듯한 마음으로 갈무리하며, 다가오는 2019년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 드디어 바라던 싹들을 틔우기 시작했으니 무럭무럭 잘 키워서 성장할 일 밖에 없으리라! 하는 벅찬 기대 속, 2019년의 나는 참 멋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2019년의 한 달이 지난 지금, 나의 싹들은 벌써부터 태풍을 맞았다.
겉으로 볼 때 좋아 보였던 회사도 막상 들어와 보니 외부에선 보이지 않는 내부의 멍든 곳들로 오래 있을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입으로 겨우 적응이 끝나갈 무렵 나가게 된 파견 덕분에 몸과 마음의 여유도 잃어가고 내가 원하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도 까먹어버린 듯하다. 사랑도 톡- 치면 그냥 떨어질 만큼 벼랑 끝에서 위태위태했다. 올해 원숭이띠가 삼재라는데 그런 걸 믿지도 않고 설령 삼재더라도 나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어느샌가 역시 삼재가 맞는가 보다, 며 다시는 찾지 않겠다던 사주 집을 추천받는 나를 발견했다. 세 달 같았던 한 달을 보낸 나는 참 내가 기대하던 나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졌다. 누군가에겐 '다 그럴 때가 있는 거야'라는 쉬운 말로 의연하게 버틸 수 있을지언정, 태풍 한가운데 있는 나는 죽을 맛이었다.
그런 내게 참 잔인한 질문이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올 한 해 꼭 이루고 싶은 단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분명 달력을 만들 땐 좋은 취지에서 저 질문을 꼽았던 것 같은데 거지 같은 상황 안에서 다시 보자니 '아니 뭐 저딴..' 소리가 절로 나왔다. (미안해요 비저너리 달력팀 나도 달력팀인걸 엉엉) 한 가지만 꼽으라니, 이것도 저것도 지금 힘든 것들 모두 다 이뤄내고 잘됐으면 싶은 게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바라는 일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은 어쩌라며 혼자 성을 내다가 진정하고 잔잔히 생각해보았다.
빛날 것만 같았던, 힘차게 달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2019년의 첫 달을 힘겹게 버티고 나니 내가 목표로 세웠던 수많은 'to do list' 들 속에 가장 중요한 전제가 빠졌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나만은 끝까지 지지하고 응원하자'는 태도와 마음의 여유. 아침에 명상하기, 기획자 학교 가보기, 매일 업무일지 쓰기, 브런치에 챗봇 글쓰기 등등 이 중에서 단 하나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나는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나만의 속도와 나의 길을 가리라 다짐했지만 어느새 내가 세운 목표 속의 내가 현재 나의 또 다른 비교 대상이 되었다.
계획은,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으니까 계획인 것이고 그게 나의 어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되면 안 되었는데 투두 리스트는커녕 뭐 하나라도 잘 풀렸으면 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자꾸 '그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냥,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면 내가 세운 계획들도 그에 맞춰 수정하면 되는 거였는데, 나를 자책하거나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었는데. 내가 그렇게 외치고 쓰고 다녔던 나의 모토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는, 아직까지도 진정 마음으로 알진 못하나 보다.
그래서 정 이루고 싶은 단 한 가지를 물어본다면 ,
'내가 나를 끝까지 지지하고 응원하는 태도'를 꼽고 싶다. 수능 끝! 대학 입학!이라고 끝이 아니었듯, 취뽀 성공! 언제나 배움의 자세인 열정 신입 시작! 도 아니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고 했지만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행복하기 위해 수도 없이 아파하며 노력하려고 한다. 작년 말만 해도 모든 것이 잘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 이렇게 힘든 걸 보면 역시 인생사 정말 새옹지마다. 그런 새옹지마를 나와 같이 잘 걸어갈 존재는 누구도 아니고 나니까, 내가 나를 끝까지 지지하고 응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 해의 시작이 나쁘다고 예감이 안 좋다며 남은 열한 달을 저자세로 살 필요도 더더욱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게 속 좋아 보일 순 있어도 누구보다 쓰린 맘으로 글을 쓰는 지금, 말이라도 이렇게 하면 '정말 그럴까' 하는 마음도 같이 싹튼다. 응, 그렇게 내가 나를 끝까지 북돋아주고 믿어주면 또 좋은 일도 오고 나쁜 일이 다시 와도 잘 흘려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태도로 보내는 2019년은 분명, 돌아보면 또 감사한 해가 될 것 같다.
저번 크루 에세이를 썼을 때(제목이 <느린 거북이에게> 였던가) 긴 터널을 지나며 스스로에게서 부끄러움을 쥐어 짜내어 터뜨리듯 글을 썼다. 지금도 그 글은 읽기 힘들지만, 그 글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행동할 힘이 생겼었다. 고민만 하고 있다가 그래, 해보자 한 뒤 지금은 어엿한 기획자 4개월 차가 되었고. 글과 말에는 힘이 있다고들 한다. 스스로가 말하고 쓰는 글에도 그렇다는 걸 크루 에세이를 쓰면서도 느낀다. 이번에도 그 힘을 빌려본다.
이 재미없고 긴 누군가의 넋두리를 여기까지 읽어준 그대의 1월은 어땠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싶다. 뜻대로 흘러가고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응원하고 싶고,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대도 괜찮다고 또 응원하고 싶다. 인생사 새옹지마를 잘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건 진짜 내가 그런 나를 얼마나 안아줄 수 있는가, 에 달려 있는 것 같으니 거울보고 '잘하고 있어! 괜찮아!!!'라고 외쳐줄 수 있으면 좋겠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스스로의 말과 글에는 정말 힘이 있으니까 말이다.
모두가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2019년을 보내길 바라며, 크루에세이 마침.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 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5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Beginning-
* 한 달이 지난 지금 올 한 해 꼭 이루고 싶은 단 한가지는 무엇인가요?
* 1살을 더 먹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 내가 꼭 지키고 싶은 나만의 꿈이 있나요?
-Music-
* 당신을 음악 장르로 표현한다면 당신은 어떤 음악일까요?
* 가사가 딱 내 이야기인 것 같은 노래가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