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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Aug 26. 2019

[에세이 63]퇴근했으니 오늘도 노란전구를 켭니다

[지원의 크루에세이03]기분이 편안해지는 나만의 장소를 찾아볼까요?

기분이 편안해지는
나만의 장소를 찾아볼까요?

나는 참 내가 생각해도 감정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감정이 따로 있다는 말이 아니라 감정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즐거운 일이 생겨 웃음이 나면 최대한 웃으려 하고, 영화나 드라마 속 슬픈 장면이 눈물샘을 톡톡 건드리고 있으면 슬픈 감정마저 최대한 누리고자 더 깊이 장면 속에 집중한다. 이런 내가 가장 감정을 편안하게 즐기는 방법이 있는데, 그건 바로 나를 직접 그런 분위기 속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공간이곤 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럴만한 공간들은 여러군데 존재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그중 가장 만족스러운 곳은 다름 아닌 나의 작은 원룸방이었다.

두 평 남짓한 방이지만 나의 대부분이 보관되고 있는 나의 방

싸고 세련된 방도 아니고, 이 방을 얻기 위해 절실한 사연이 담기지도 않았다. 다만 이 방에는 내가 묻어있는 물건들이 잔뜩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정시켜주고 있었다. 벽 이곳저곳에는 추억담긴 사진들도 붙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도 걸어두었다. 바닥에는 부드러운 러그를 깔았으며 침대엔 오랫동안 덮어 온 이불과 베개가 있고, 형광등을 꺼둔 채 내가 좋아하는 노란 전구로만 밝힌 채 지낸다. 그리고 선반에는 그동안 모아둔 사진이나 편지들이 들어있는 추억팔이 박스가 항상 내 시야에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암막커튼을 치고 무드등 가습기를 켠 채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연결하면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들을 누릴 준비는 더할 나위도 없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선택지가 꽤나 생기는데, 단순히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끌리는 것을 한다. 무얼하던지 우선은 음악부터 틀어두고, 책상에 앉아 손글씨를 끄적이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인스타그램을 구경한다. 종종 침대에 파묻혀 구글포토 타임라인을 따라 추억팔이 시간여행을 하는 날도 적지 않다. 이밖에도 이상하게 보일진 모르지만 러그에 누워 전구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도 나로선 기분이 편안해지는 방법 중 하나이다. 최근에는 HDMI 케이블이라는 엄청난 녀석을 구입했는데 그 덕분에 스마트폰으로 보던 영상들을 커다란 TV화면으로도 볼 수 있게 되어 매우 만족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쓸 데 없는 걸 붙였는데 기분 좋을 때가 있다

내가 이런 기분 속에서 생각 벗고 쉬면서 보는 휴식용 방송이 몇 개 있는데, 비긴어게인 시리즈와 트래블러라는 방송이다. 머나먼 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부럽고 가고 싶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두 방송 모두 분위기가 차분하고 밝은데다가 영상들이 참 예뻐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처음으로 브이로그를 보기 시작했는데 영상이 정말 차분하고 소소하다. 장을 보거나 강아지와 놀거나, 그리고 늘 요리를 만들어서 먹는 모습이 담겨져 있는데 건강한 음식이라는 걸 책이나 말로만 접하다가 누군가의 일상기록과 함께 보니까 나까지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다른 콘텐츠들은 그냥 폰 화면을 들고 보면서도 이 사람의 브이로그 영상은 자꾸만 왠지 HDMI 연결선을 주섬주섬 꺼내게 만든다.

여행,류준열님,라이카카메라. 내가 좋아하는거 다있다
어느새 저게 맛있어지길 바라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왜지??)
오히려 아주 잠깐씩만 등장하신다

이렇게 HDMI 케이블로 차분한 영상을 보거나, 손글씨를 쓰거나, 뒹굴거리며 전구를 바라보거나, 추억팔이 시간여행을 할 때 나는 늘 내 방 안에 있었고, 내 손으로 직접 꾸민 방구석이야말로 편안한 감정을 편안하게 즐기기 좋은 공간이었다. 물론 지금 지내고 있는 이 방도 내년 이맘때쯤엔 다른 사람이 쓰게 되겠지만 어차피 내 방을 내 방으로 만드는 것은 지리적 위치도, 주민등록상 주소지도 아닌 내 손때 묻은 물건들이기에 괜찮 것 같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꼭 더 넓은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더욱 많이 채운 공간과 함께 지 것이다. 그런데 아마 그때가 되더라도 내 공간은 매우 다른 모습일지언정 공간 속 시간을 즐기는 나의 모습과 나의 기분은 여전히 똑같지 않을까? 



비저너리의 크루 에세이 시즌 2부터는 비저너리 달력 뒤에 있는 그 달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한 주에 한 번, 월요일 아침, 크루들의 진솔한 답변으로 채워 나갑니다. :)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바쁜 일상 속 생각에 잠기실 수 있도록 최근 한 달(4개)의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는 다음 질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보면서 어딘가에 답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하루 중 가장 길게 느껴지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에세이 59] 힘들고 길지만 재밌게 보내자


•때로 밀려오는 감정을 어떻게 마주하나요?

[에세이 60] 자신의 분노를 믿는다는 것


•지금껏 내가 해온 순간 중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무엇인가요?

[에세이 61]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기를


•당신의 생에서 당신과 가장 깊은 감정으로 교류한 이는 누구인가요?

[에세이 62] 나의 사랑 고백


기분이 편안해지는 나만의 장소를 찾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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