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 몰츠의 성공체험; 자아를 깨워라
켄터키 인삼
켄터키 렉싱톤이란 시에 90년도 중반쯤 되어서 작은 아시안 식품점이 하나 생겼다. 그 아시안 식품을 갔다가 켄터키에서 우린 한국 사람을 처음 만났다. 그때서야 이 켄터키에도 한국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 중년 여자는 도사처럼 산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들었었다. 그러니까 산 중에 절간 같은 곳에서 사는 사람이었는데, 몇 번 우리 집을 오곤 했었고 그 이후엔 아예 그 집으로 우릴 초대받았다. 차를 타고 산과 산을 지나서 한참 들어가고, 개울 건너 또 들어갔다. 내가 처음 켄터길 왔을 땐 산이 전혀 안 보이고 사방이 모두 지평선이 보이더니 여긴 얼마 오래 달리지도 않는 곳인데 내 주변이 모두가 산이였다. 이렇게 산이 많은 줄 몰랐다.
아마 1992년쯤에 나온 “파어 앤드 어웨이”(Far and Away)란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 톰 쿠르즈와 전 부인, 키트만이 나온다. 그들은 19세기 유럽에 몰아쳐던 감자 기근을 때문에 소작농의 아들, 톰 쿠르즈와 성주의 딸, 키트만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톰쿠르즈가 성주의 딸한테 이 뉴욕에서 살려면 욕을 할 줄 알아야 된다면서 욕을 해보라고 강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성주 딸은 정말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드디어
"돼지야( You’re a Pig)"
라고 아주 어렵게 뱉어낸 욕이 “돼지”였다. 욕 속에 살던 나에게 참 신선했던 스크립이었다. 다음 장면은 이들이 온갖 어려움 끝에 오클라호마에서 정착하는데, 그때가 아마 남북전쟁( Civil War ; 1861-1864) 이후가 될 테니까 아마 19세기 아주 말쯤 되는 그 당시엔 이 미국땅에 누구나 먼저 달려가서 작은 깃발만 꽂으면 200 에이커의 땅을 무상으로 지급할 때였다. 이게 다름 아닌 미국 역사에서 골드러시 ( Gold Rush) 만큼이나 유명한 1893년 오크로 호마에서 있었던 랜드러시 ( Land Rush)였다.
나폴레옹은 자국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이걸 막기 위해 미국에 헐값에 이 루지아마 지역을 팔아버린다. 그걸 산 미국은 누구라도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시민권과 땅을 덤으로 끼워 팔기식으로 이민자들을 확보하려 했던 초창기 역사가 있었다. 그 당시 미국은 이렇게라도 들어와 살 사람들을 그 비싼 홍보지를 뿌려가며 구했었는데, 난 혹시 이때에 우리 조상들님이 아시고 들어 오셨다면…… 백 년이 지난 지금쯤엔 아마 내가 서있는 미국땅에 남북한 합친 만한 땅을 소유했었을 거란 혼자 생각이 퍽 흥미로웠다.
산 기도하는 중년 여인과 남편, 짐을 보러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한 길이 있었다. 하여간 어렵게 찾아간 짐의 집은 아마 우편 번호도 찾기 힘든 모빌 하우스였다. 그때 처음 보는 남편, 짐을 소개받았다. 그는 한 육십 정도이었는데 아주 건장한 몸을 가진 백인이었다. 배가 불쑥 나오고 한국말은 한마디밖에 못했고 미국인이었던 짐은 영어만 했다. 그는 날 무척 반갑게 맞이했다. 한참 말하다 보니 알게 되었는데, 그는 한국에서 주한 미군으로 동두천에서 근무했던 직업군인이었다. 어찌 되어 건 한국사람이랑 결혼해서 여기서 정착하게 되었다. 나는 미국에서 살면서 철칙이 하나 있었다.
한국사람을 만나면 자기가 스스로 털어놓지 않으면 절대 한국에서 무얼 했는지? 묻질 않았다. 혹시 상처가 될까? 싶어서였고, 미국 사람들에게 조차 학연, 지연을 묻질 않은 게 나의 규정이었다. 서로 말이 되고 친해지고 싶은 인간적 매력이 있으면 그게 사귀는 시작점이었고 그게 나의 클릭( Click)이 되었다. 이런 규정을 세웠던 이유가 내가 만났던 과거 자랑만 하던 한국사람들은 한국말은 천상유수인데 어찌 영어 할 땐 청산유수 같은 한국말이 무색할 정도로 영어를 못했다. 더욱이 그 몇 마디의 영어엔 엑센트가 너무 강해서 옆에 있던 미국인들은 전혀 못 알아듣는 영어해 대곤 했다. 이렇게 자기만 알아듣는 영어 하던 그들은 나에겐 무능해도 너무 무능한 보였다. 결국 미국땅에서 과거 한국의 업적은 아무런 도움이 그들에게 되질 못하고 있었고 차라리 미국정착엔 잘 나가던 과거가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음을 그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자기 자랑에 내 시간을 낭비할 이유도 물론 없었다.
짐은 이곳 산을 몇 개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군대에서 퇴역하고 여기에 정착했고, 산에서 사는 걸 좋아했다. 그들은 자식도 없었다. 이 산 저산에 인삼을 뿌리고 다녔고, 내년엔 이산에서 수확하고, 다음 핸 다른 산에서 인삼을 거두웠다. 그게 뚜렷한 수입원 아니지만 그는 모일 하우스에서 자고 일어나면 이산 저산을 다니는 거였다. 부인은 참 든든한 누나 같은 사람이었고, 우릴 위해서도 기도 많이 해 주웠다. 이 아주머니는 영어를 못했는데 남편하고 사는데 별 지장이 없었고, 특히나 맘이 아주 따스한 사람이고 많이 잘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그 둘은 그냥 있어도 없는 듯이, 또 없어도 있듯이 서로의 오랜 친구 같았고 아예 자매처럼 보였다. 집 앞은 휑하니 뚫려 있는 가운데가 이 두 부부가 자급 자족할 수 있는 과일과 채소를 심은 밭이 보였다. 그 뒤론 맹돌아 산으로 둘러쌓고 있어서 바람도 멈춘 거 같았고, 라디오 소리도, 차소리도 오다가 그냥 서 버린 것 같았다. 밤이 되면 마치 오로라가 보이듯 했고, 엄청난 별들이 찾아왔다.
내가 밭을 가로질러 갈 때, 우리는 정치얘길 했다. 아마 그때가 아마 미국 41대 대통령, 빌 크린톤 재임 선거 할 1996년쯤였다. 그와 내가 밭에 앉아서 처음 화두를 꺼내는 게, 미국 대통령 선거얘기였다. 이 만큼 미국 시민들은 선거에 관심이 많았고, 투표는 미국 시민의 첫째 의무라고 그는 알고 있었다. 짐은 처음 보는 날을 붙잡고 차근차근 땅에 지도까지 그려 가며 설명했다. 난 그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서로 친한 친구가 되어갔다. 그는 사는 건 시골 노인처럼 살아도 그가 소유한 산은 속초에 있는 내설악 산만한 지역의 대지주였다. 그렇게 넓은 산을 소유하고 있어도, 그는 그 큰 산에 자기와 같이 들어와 살아주는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고 있었다. 짐에겐 항상 곁에서 자기와 함께해 주는 아내가 내설악산이었다. 짐은 행복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