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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이모 May 28. 2021

협재의 희야에게

15년간 근속해서 받은 2주간의 휴가 평생 처음 진짜 휴가처럼 보냈구나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할 때 즈음 그대는 회사에서 걸어올 수 있는 거리의 우리 집에 점심하려고 잠깐 들렀었지.  바람이 좋은 뒤뜰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조금 걸으려고 일어나는데 내게 물었지. 언니, 50 이후에도 인생이 있는 거야?  그때는 조금 당황했어.  50 지나고 몇 년간 지내온 내가 인생이 아니고 견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나.  50 이후에도 인생이 있으니까 요래 요래 나는 살고 있고 나름 잘하고 있다고 자부할 뻔했는데, 그런 나에게...   '언니 50 이후에도 인생이 있는 거야?'


다행히 타이밍이 산책을 시작하려 자리 정리를 하는 때라 나는 손놀림 부산함을 핑계 삼아 약간의 미소로 그 질문의 답을 회피할 수 있었지.  그래 처음에는 황당했는데 그 질문, 자꾸 내 머리를 맴돌더라.  50 이후에도 인생이 있는 거야...


며칠 후 희야의 질문에 톡으로 답을 적으려 했었어.  아이고 오브 코우즈, 50 이후에도 인생이 있지. 직을 하면 그래서 시간 부자가 되면 평소에 하고 싶은 거도 해보고 가보고 싶은 곳도 가고 얼마나 좋은데, 50부터 진짜 인생이지.  그런데 막상 쓰고 보내려 하니 톡을 치는 과정에서 내가 알게 된 거지 꼭 내가 자신 있게 50 이후 인생에 대해 논할 건 아니라고.


사실 50이 되니까 일단 건강이 옛날 같지는 않아.  시간 투자해서 운동하고 관리받어도 매일 조금씩 그래 늙어가는 게 느껴져. 그래서 서럽지.  시간만 있으면 해보고 싶었던 일, 막상 시간이 생겨도 시작하기가 힘들고 또 해보면 관심이나 흥미가 기대했던 것처럼 지속되지 않아.  그래서 이전의 내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해. 그렇다고 다른 동년배 따라다니기도 싫지. 공유한 기억이 없으니 재미도 없고.  애들도 내손이 가야 할 곳인지 아닌지,  이제는 내 판단이 아닌 아이들 주문에 따르는 게 맞고 그러니 어쩌면 전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히려 줄어드는 느낌에 초라해지기도 해.


그리고 퇴직을 하니까 직장이 받쳐주던 모든 네트워크에서 분리되게 돼. 처음 1년은 불러줘도 직장 관련이라면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고, 3년 지나니까 불러주는데도 없고 정말 직장생활 중에 특별한 관계였던 열 손가락도 아닌 다섯 손가락도 남는 그 정도 인맥만 유지하게 되니, 50이 되어서 다시 인생에서 0살이 된 거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어.  그래, 그래서 50 이후에도 인생이 있냐는 그대의 질문에 답은 '그래'가 아니고 '글쎄'....


이렇게 질문만 담아놓고 정신없이 시간만 흐르는데 오랜만에 밝은 빛의 목소리로 전화를 준 희야.  그래 15년 만에 얻은 2주간의 휴가 특히 제주에서의 시간이 정말 힐링이었구나.  느낄 수 있었어.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가 그대가 경력단절을 딛고 다시 대한민국 최중심부에 직장을 잡은 지 한두 해가 지나서이지.  나도 그때 집 문제 애들 교육문제로 워킹맘으로 고민이 많았고 우리 딸들 나이도 같고 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깊어졌지.  특히 지금 그대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내가 1985년 고졸 여사원으로 12개월을 근무한 곳이라 특별히 애정이 갔어.  학교는 아니지만 회사 동문 같은 느낌이랄까.


자주는 아니지만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짧게라도 시간과 공간을 공유해왔지.  둘 다 애들이 원하던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엄청 신나 했고 애들이 중 1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던 해 12월 31일에 우리 집서 파자마 파티하고 교회에서 함께 신구영신 예배, 눈 비비며 함께 드렸던 기억이 나.   그대의 멋진 한강이 보이는 집에서 크리스마스 디너 했던 추억도 있네. 그때 큰 개가 두 마리나 되었는데,  그래서 나도 귀여운 몰티즈 거부감 없이 키우게 되었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한 일이지.  여름엔 회사에서 주는 쿠폰으로 호캉스 가서 애들 수영장에서 시원하게 놀고 맛난 거 먹는 거 보며 흐뭇해했지.


또 방학 숙제한다고 딸내미들이랑 함께 안 입는 옷으로 업싸이클 인형 만들고, 그 인형들 그대 회사에 전시된 거 구경하러 간 게 내가 1985년 12월 퇴사하고 처음 다니던 회사 건물 방문한 거였으니 내게는 꽤 의미가 있었지.  또 구내식당에서 오랬만에 식판 밥도 먹어보고.  와 진짜 너무 맛있었는데. 그때가 아마 추석 전이라 고향 갈 때 먹으라고 계란이랑 간식 꾸러미도 받고.  진짜 복지 좋은 회사라니까 부러워했지.


우리 둘 다 워킹 맘일 때 가끔 점심시간에 만나 번개팅하던 재미는 지금도 생생하다.  고양이도 잘 먹는 소시지 하나 사서 점심으로 때우고 번 시간에 남산 산책을 하고 김밥 반줄 먹고 창덕궁에 간 적도 있지.  늘 점심이 부실했던 건 아냐.  덕수궁 옆 냄비 국수가 맛난 50년도 더 된 국숫집에서 둘이 3가지 메뉴를 시켜 먹기도 하고 숲에 쌓인 듯 목멱산 근처 밥집에선 한상 근사하게 먹기도 했지.  그래.  그 짬짬이 맛본 짧은 휴가 같은 점심시간이 없었다면 어떻게 빡빡한 회사 생활을 이길 수 있었을까... 참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감사해.


창덕궁의 잡상.  어처구니라고도 불리는 잡상은 액운을 물리친다


그때 난 집 때문에 고민이 많았지. 그래 사실 내 친구들은 본인이나 배우자의 직장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한강 남쪽에 신혼집을 마련했고 이후 10년이 지나니 내가 10년 일해서 번 연봉보다 더 큰돈이 그들의 강남 집값으로 불어있더라.  그래서 늘 그 격차에 대한 상실감이 문제였는데 그대와 점심시간에 한두 마디 나누던 경험담이 내겐 참 큰 도움이 되었어.  잘 알고 있지? 내가 고마워하는 거.


그 바쁜 중에도 토요일마다 글쓰기, 독서 모임을 가는 희야를 보고, 물론 하는 일이 글과 깊은 연관이 있지만 그래도 개인 시간에도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 참 대견해 보였어.  나도 독서량도 늘리고 글도 기회 되면 써야지 해서 조금씩이나마 적게 되었지.  그리고 나는 알잖아.  그대는 꼭 써내야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지금은 물리적으로 힘들 수 있지만 풍선에 꼭지가 풀리면 핑 하고 강력한 바람이 나오듯 그대도 몇 자 적다 보면  마음속에 꼭 꺼내놓아야 하는 바람이 술술 나와서 멋진 책이 완성될 날이 곧 올 거야.  어쩜 이미 다 준비해놓고 타이밍을 보고있을수도 있겠다.


협재에서 휴가 마지막 날을 보내는 희야.  예쁜 글과 사진들 너무 고마워.  멋진 글귀가 적힌  그 카페에는 꼭 가보고싶어.  바다와 숲 한낯의 빛과 노을이 어우러진 이미지들을 보며 제주 여행을 함께 가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내가 너무 정신없이 보낸 50세를 되돌아보게 되더라.  지금이라도 누군가 '50 이후에도 인생이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오브 코우즈, 그럼요, 지금이 제일 좋은 걸요~"라고 말할 수 있을지 사실 망설여져.




협재의 희야.  이제 서울에 올라오면 제주바다에서 본 아름다운 노을 가끔 떠올리면서 편안하게 지냈으면 해.  옆에서 보는 내가 눈물이 날 정도로 최선을 다해 고결하고 성실하게 분투해왔으니까.  희야의 선한 영향력, 다시 거울처럼 비추며 눈부시게 살자.  그럴만한 자격있고 그 이상의 노력해온걸 난 다 봐왔으니까.   눈부시게 살아내자. 나도 그럴께.


벚꽃이 막 피기 시작했을 때 무심히 내게 던졌던 말, "언니 50 이후의 인생이 있는 거야?"  그 답 솔직히 잘 모르겠어. Yes 인지 No 인지.   질문을 조금 바꾸어 "50 이후의 인생 어떻게?"  라고 한다면 그 How에 대한 내 답은 당분간 희야가 제주서 보내준 사진속 글,

'넘치지 않게 적당한 것들로 조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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